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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만든 세월호 다큐, 침몰 장면 뺀 이유는..."

[현장]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 언론 시사회

24.03.26 17:58최종업데이트24.03.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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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든 아버지의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 이야기 김일란 프로듀서, (사)4.16세월호참가사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 문종택 감독, 김환태 감독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바람의 세월>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동분서주해 온 세월을 담고 있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로, 단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인 문종택 감독이 10년 동안 4.16TV를 운영하며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됐다. 4월 3일 개봉. ⓒ 이정민

 
한 손으로 경찰의 방패를 잡거나, 흔들리는 이웃을 위로하면서도 아빠는 다른 손의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유독 흔들릴 수밖에 없던 카메라엔 떠나간 아이들의 흔적과 남은 이들의 흔적, 그리고 연대했거나 혹은 상처를 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치밀하게 담겨 있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가운데 유가족이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다큐멘터리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 26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언론에 공개된 <바람의 세월>은 지성 아빠로 알려진 문종택, 참사 직후부터 미디어 활동으로 연대해 온 김환태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시사회엔 두 감독과 김일란 총괄 프로듀서,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침몰 장면이 빠진 이유
 

103분의 분량의 영화엔 참사 발생 직후부터 10주기를 맞은 현재까지의 주요 사건이 연대기적으로 담겨 있다. 그간 언론 및 여러 미디어에 공개됐던 모습도 일부 있지만 두 감독, 특히 문종택 감독이 직접 담아낸 영상이 중심이 됐다.
 
그렇기에 <바람의 세월>은 유가족 등 남아 있는 자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간 극영화 및 다큐멘터리로 참사를 다룬 여러 작품이 존재했지만, 유가족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작품이 없었다는 점에서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문종택 감독은 "애초에 영화를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기록을 남기는 것도 사실 싸우는 게 우선이었기에 그 이후 문제였다"며 "근데 언론 보도를 보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길 다는 못해도 처한 상황을 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연출 계기를 밝혔다.
 
물론 처음부터 본인이 찍은 영상을 돌아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문 감독은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고,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고 한다. "각 1년마다 2시간씩 추려내고, 그중에서 또 추려내는 등 가편집을 여섯, 일곱 번은 한 것 같다"며 "다른 분들은 제가 찍은 영상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겠지만, 첫 프레임 10초 정도만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기억이 나더라. 편집한 영상에 제가 소리를 내서 설명을 뱉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 카메라를 든 아버지,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 이야기 문종택 감독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 시사회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바람의 세월>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동분서주해 온 세월을 담고 있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로, 단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인 문종택 감독이 10년 동안 4.16TV를 운영하며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됐다. 4월 3일 개봉. ⓒ 이정민

 
"내레이션을 하는데 김환태 감독님이 제게 국어책 읽듯 담담하게 하라고 계속 주문하셨다. 영상만 봐도 힘든데 말도 그렇게 하시면 사람들이 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억누르며 했던 기억이 있다. 꼭 한 군데만 실어달라고 한 부분이 있는데 나중에라도 감독님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결국 영화적 측면에선 무엇을 말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무작위로 10년 기록을 잘라 붙일 수 없다. 제가 원한 건 다음 세대에 대한 부분이었다. 말대로 사회적 참사라 많이들 아신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졌을 때 국가는 무엇을 했는지, 현재 우리는 어느 지점에 있는지 고민을 안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문종택 감독)

 
이 지점에서 문 감독은 세월호 참사 관련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침몰 장면을 애써 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하면 다 그 장면을 떠올리고 10년 지나도 노출되는 상황에서 굳이 그걸 써야 하나, 다음 세대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며 말을 이었다.
 
"정부에서 발표한 세월호 침몰은 내부 문제일 수도 외부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두 가지인 건데,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를 보면 세월호 참사를 과적한 채 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침몰했다고 설명돼있다. 공식적인 것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에 차이가 있는 셈이다. 나마저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나.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 장면을 뺐다. 나중에 진실규명이 제대로 되면 응당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종택 감독)
 
"함께 해 온 과정 여전히 의미가 커"

 
김환태 감독은 "10년을 연대기적으로 펼치면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마주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했는지 흐름을 보는 게 중요하다"며 "회상하고 구성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바라보는 마음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김환태 감독은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영화에 5.18 민주화항쟁 유가족 어머니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장면을 들며 그는 "세월호 가족 분들은 이태원 참사 가족을 위로하는데 이렇게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는 게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며 "이 영화는 좌절하면서도 끊임없이 걸어온 과정의 기록이다. 함께 외쳤던 바람들이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가 피해자를 제대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회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김일란 총괄 프로듀서는 "영화 홍보 문구를 보면 10년의 간절한 바람이라는 내용이 있다"며 "가족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상규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동시에 지성 아버님의 흔들리는 카메라를 기억해달라. 그게 결국 유가족분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흔들리면서도 카메라를 잡고 있는 그 마음, 함께 연대했던 시민들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이 광장이 되는 경험을 우린 기억한다." (김일란 프로듀서)
  

▲ (사)4.16세월호참가사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 (사)4.16세월호참가사족협의회 김순길 사무처장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 시사회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바람의 세월>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동분서주해 온 세월을 담고 있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로, 단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인 문종택 감독이 10년 동안 4.16TV를 운영하며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됐다. 4월 3일 개봉. ⓒ 이정민

 
김순길 사무처장 또한 "정말 우리가 10년간 엄청난 일을 했구나. 이 기록이 중요했구나. 다 모아서 다큐 영화를 만든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진상규명 외치는 가족에게 얼마나 국가의 폭력 심했는지 알려야 한다. 그리고 10년의 감정, 그 행동들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보시면 알게 될 것"이라 말했다.
 
"어른들 잘못으로 재난과 참사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확히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참사를 소환해 공부하는 걸 보며 한창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꿈을 찾아가야 할 친구들에게 행동하게끔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여기서 멈출 수 없는 건 이런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고 규명해야만 안전한 사회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이 영화에 담겨 있다." (김순길 사무처장)

 
행사 말미 문종택 감독은 조용히 자리에 일어서서 영화에 차마 담지 못한 마지막 내레이션을 읊으며 복받친 감정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돌아보면 찰나 같은 10년의 세월.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하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하고.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지난날의 해양수산부 해경처럼 최선을 다했다는데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그런 최선이 아니고, 엄마 아빠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을 다 했노라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10년이 다 된 날 못난 아빠가 이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
 

▲ 카메라를 든 아버지의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 이야기 문종택 감독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 시사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바람의 세월>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동분서주해 온 세월을 담고 있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로, 단원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인 문종택 감독이 10년 동안 4.16TV를 운영하며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됐다. 4월 3일 개봉.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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