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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판사'의 판결 "어른들이 잘못했습니다"
[희망의 한판승 8화] 만사소년(萬事少年) 천종호 부장판사
2018년7월17일 (화) 조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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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대전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강연 중인 천종호 판사. ⓒ 여행문화학교산책

   
사법부가 법과 정의를 스스로 훼손시키면서 법의 권위를 추락시켰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법치를 짓밟다가 들킨 것입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폐해입니다.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법과 법조인을 불신합니다. 헌법이 제정된 지 70주년 되는 제헌절에 한 판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두운 사법부에 희망의 등불을 켠 판사 이야기입니다.
   
희망에 후원한 판사... "대회 출전만 해도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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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강원도 동해에서 열린 유도대회. ⓒ 조호진

지난 1월 18일~21일까지 강원도 동해에서 '2018 전국 생활체육 유도대회'가 열렸습니다. 인천남동경찰서 <사랑의 유도교실> 소년들은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겨우내 훈련을 했지만 출전비용이 없어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15명가량의 출전 선수와 지도자가 대회에 출전하려면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데 가난한 소년들과 부모들은 그 비용을 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천종호(54)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가 출전비 전액을 지원하면서 대회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실의에 빠진 소년들의 소식을 알게 된 천 부장판사가 자신의 별칭을 따서 만든 '(사)만사소년'을 통해 출전비를 후원한 것입니다. 유도대회 사흘 앞두고 급히 출전하면서 소년들은 몸무게와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고 대회 성적은 저조했습니다. 성원에 보답하지 못한 소년들이 고개를 숙이자 천 부장판사는 "대회에 출전한 것만으로 승리한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우수한 성적에 후원한 게 아니라 소년들의 희망에게 후원했기에 이런 격려가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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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소년원인 '안양소년원'에서 강연하고 있는 천종호 판사. ⓒ 조호진

천종호 부장판사와는 2014년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가 창원지법 판사로 재직하면서 만든 '사법형그룹홈'(현 청소년회복센터)을 경기도 의왕시에 만들겠다고 하자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 판사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보호소년들을 위탁받아 함께 살았지만 소년들이 달아나면서 제가 만든 '어게인그룹홈'은 1년도 못돼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천 판사는 실의에 빠진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는 법복의 권위에 갇힌 판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비행청소년들에게 비난의 돌팔매질을 할 때, 그는 소년들에게 "아니야, 너희들의 잘못만은 아니야. 우리 어른이 잘못했어. 아이들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국회, 대학, 교회 등 부르는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소년들을 살려야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부산으로 돌아가는 그를 배웅하면서 사람의 길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외롭고 힘든 길 택한 '소년범의 아버지'
   
'아, 사람들은 이익이 생기지 않으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판사인 저 사람은 왜 도움도 되지 않는 비행청소년들의 눈물을 닦아줄까. 왜 이런 일에 자기 인생을 거는 걸까. 자기 자식이 아니면 외면하기 일쑤인 사람들에게 비행청소년의 손을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걸까. 저지른 짓을 보면 돌을 맞아도 싼 비행청소년을 왜 변명해주는 걸까. 그러다 돌 맞을지도 모르는데 왜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소년범의 아버지 역할을 할까?'
 
판사는 판결로 말하면 됩니다. 판사의 권위를 적당히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면 됩니다. 판사로서 출세하지 못할 것 같으면 법복을 벗고 전관예우를 누리는 변호사가 되어 고액 수임료를 챙기면 됩니다. 돈만 있으면 죄가 있어도 죄가 없도록 만들어주는 유전무죄와 돈이 없으면 큰 죄가 아니어도 엄벌에 처해지는 무전유죄의 혜택을 누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는 판사들이 잘 가지 않는 외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택한 길은 외롭고 힘든 길입니다. 판사 사회에서 이런 판사로 살면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년 살리는 일을 한다고 칭찬받을까요? 모난 돌 취급을 받으며 정 맞을까요? 이뿐이 아닙니다. 그는 부산, 경남, 대전 등지에 20곳의 '청소년회복센터'를 만들고 지원하면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저는 그가 외롭고 힘들 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비와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 천종호 부장판사가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사건, 인천 여고생 집단폭행사건, 관악산 여고생 집단폭행사건 등 잔혹한 청소년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이 거셉니다. 정부는 소년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12일 관계 장관 회의를 열어 소년법 개정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소년법이 개정되면 문제가 해소될까요? 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난 13일 천종호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엄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소년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엄벌에 있지 않습니다. 비행청소년 사건의 배후는 불우한 청소년들의 작은 희망마저 박탈하는 사회 구조입니다. 재판에서 만난 소년범들과 청소년회복센터에서 보호 중인 소년 가운데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회의 책임은 외면한 채 엄벌로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면 비행청소년들은 더 극단적이고 잔혹한 사건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저는 천종호 부장판사의 진단에 동의합니다. 비행청소년 문제는 우리 사회가 만든 문제입니다. 엄벌의 돌덩이로 쳐서 피투성이로 만들려고 하는 비행청소년들은 비인간화 된 사회가 만든 괴물입니다. 괴물로 변해버린 비행청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천 부장판사는 제3의 문화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사회가 낙오시킨 소년들에게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괴물이 된 아이들... 외면말고 희망의 공간 만들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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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대전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소년법에 대해 강연 중인 천종호 판사. ⓒ 여행문화학교산책

"만사소년 축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30명의 선수 중 대다수인 보육원 출신과 비행청소년들은 부모가 없습니다. 이들은 축구선수가 꿈이었는데 회비 낼 돈이 없어 중도 탈락했습니다. 이 소년들이 꿈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면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비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주면서 일등뿐 아니라 꼴찌도 박수 받게 했더니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청소년회복센터'에서 보호받던 소년들이 가정과 사회로 복귀해 뭔가 해보려고 하지만 사회의 진입 장벽에 막혀 절망합니다. 그리고 다시 비행청소년으로 돌아갑니다. 비행청소년 문제의 해결 포인트는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나쁜 놈으로 낙인찍고, 사회 진입을 막고, 낙오시키기보다는 소년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문화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런 곳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절망을 분출시킨다면 소년들은 버림받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사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일등 청소년에게 주로 투자합니다. 그들은 부모와 사회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정부가 희망이 넘치는 청소년 위주로 지원하고 있는데 이제는 희망을 박탈당한 청소년들도 지원해야 합니다. 비행청소년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은 소년법을 개정하고 엄벌에 처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이들 청소년에게도 기회와 희망을 주는데 있습니다."


천종호 부장판사는 소년범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방식을 우려합니다. 사회적 복수인 엄벌주의가 더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을 불러올 위험성 때문입니다. 진정한 법과 정의는 비행청소년들을 회복시키는 것 즉,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도우면서 공동선을 구축하는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범죄의 유혹을 이겨낸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고무탁 신세가 되어 공원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가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어려울 때 연락하라던 제 말이 생각나서 밤새 걸어 법원으로 찾아온 소년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침밥은 먹었는지 물어보니,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흘을 굶었지만 절도는 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가난한 목수 아들의 맹세 "소년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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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대전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강연 중인 천종호 판사. ⓒ 여행문화학교산책

그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가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판사가 됐습니다. 가난 때문에 수치를 당했던 그는 돈 많이 버는 변호사를 꿈꾸었습니다. 형제들이 줄줄이 가난한데 왜 안 그러겠습니까. 하지만 "양심을 팔아 돈 버는 길로 가려고 판사가 됐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 돌이켰습니다. 그리고는 비행청소년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면서 소년범의 대부 혹은 호통판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유명한 판사가 됐습니다. 그를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 언론을 통해 유명해진 사람들, 인기와 명예에 취해 변질되고 끝내 망하는 이들을 여럿 봤기 때문입니다. 저러다, 정치하는 것 아냐? 무슨 속셈이 있는 것 아냐? 세상 사람들처럼 저도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이젠 믿기로 했습니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공표하면서 소년들 곁에만 있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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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12회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한 천종호 판사가 그의 아내와 늦둥이 막내딸(7)과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조호진

그의 곁에는 가난한 고시생의 애인이었던 아내가 있습니다. 교사인 그의 아내는 파수꾼입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한 눈 팔면 경계경보를 발동합니다. 그가 펴낸 첫 번째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의 인세(3500만원) 일부를 가난한 형제들 돕는데 쓰고 싶었지만 그의 아내는 "아이들의 아픔을 알리려고 쓴 책이므로 우리에겐 그 돈을 사용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당신이 뭐가 잘났다고 국민들이 성원하겠나. 명예와 인기에 취하지 말고 아이들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질책처럼 '내가 뭐가 잘나서 이 일을 하겠나'하고 수시로 저를 점검합니다. 국민들이 베풀어주신 성원과 후원을 불우한 소년들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칭찬을 받을 때도 있는데 아내에게는 늘 혼납니다. (웃음)"

지난 2월, 8년간의 소년 재판부 생활을 마치고 부산지방법원으로 발령 받은 천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인사로 인해 소년 곁을 떠난 그는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법원 업무가 끝나면 소년들에게 달려가 돼지국밥을 같이 먹고, 영화를 같이 보고, 축구를 같이 합니다. 지난 7월 7일 대전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만난 소년의 상한 치아를 본 그는 친구 치과의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치료비용을 보내고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이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비행청소년이 된 소년들이 울지 않고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년들을 떠날 수도 없고, 떠날 생각도 없습니다. 언젠가 소년 곁으로 돌아가 다시 소년재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은 비행청소년들에게도 희망을 나눠주는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년들도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어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에필로그, "국민들은 만사소년 판사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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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판사가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에 이어 세 번째 책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Apologia)>을 최근 펴냈다. 천 판사는 두 권의 인세 전액을 '청소년회복센터'에 기부한데 이어 세 번째 책의 첫 인세로 '꿈이레청소년센터'에 승합차를 사주었다. ⓒ 우리학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법비'와 '적폐판사'란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국민을 배신한 사법부는 청산되어야 합니다. 사법부 개혁을 위해 촛불을 들어야한다면 촛불 들겠습니다. 천종호 부장판사 때문에 사법 희망을 품습니다. 법조인으로서뿐 아니라 어른의 책임을 다하려는 한 판사의 사랑과 행동으로 인해 소년들이 희망을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권세 높은 판사보다는 '만사소년'(萬事少年)으로 살길 원합니다. 그의 별칭처럼 자나 깨나 소년들을 생각하며 삽니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소년들에게 울타리를 계속 쳐주면 좋겠습니다. 천종호 부장판사가 먼 훗날에도 '외롭고 힘든 소년들을 희망으로 일으켜준 만사소년 천종호 판사'로 기억되고 '국민들이 천종호 판사를 사랑했다'라고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가난과 고난의 시대를 걸어온 국민들은 국민의 가슴에 대못박는 사법부가 아닌 희망의 등불을 켜주는 사법부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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