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12일간의 2008 베이징 올림픽. 그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마지막 금메달을 목에 건 종목은 '의외로'(?) 야구였다. 사실 대한민국 야구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볼 때,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이야기는,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망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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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야구에서 '2류'로 취급받았고, 올림픽을 기준으로 동메달이 가장 큰 기록(2000 시드니 올림픽)이었던 대한민국 야구. 하지만 대한민국 야구는, '9전 9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적어도 8년 간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게 될) 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야구를 지켜본 야구 팬이다. 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유년기를 보낸 인천에서 야구를 처음 보기 시작한 인연으로 인해,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줄곧 인천 연고의 팀을 응원했고 현재도 와이번스를 응원한다. 그렇기에, (주 : 결국 어떤 경우여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총 24명의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 중 와이번스 선수로서 김광현 선수, 이진영 선수, 정근우 선수, 정대현 선수 이렇게 네 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야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볼만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 또한 8월 20일 이후에 야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4강에 오를지조차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이 들면 곧바로 이렇게 생각했다. '8월 24일에 8월 토익시험이 있으니 공부하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자' 라고 말이다. 편하게 생각하자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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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한민구 야구 국가대표팀이 한 경기 한 경기 이길 때마다 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급기야 7전 전승으로 예선을 통과한 순간, '우승할 것이다'라는 느낌이 오며 기쁜 마음이 드는 한편, '토익공부 더 해야 하는데'라는 걱정으로 갈등했다.  급기야 결승전에 오르며 그런 걱정은 절정에 달했고, 나는 경기관람과 공부를 둘 다 잘 하고자 노력했다.

식사는 야구경기에 맞춰서

8월 24일의 토익시험은 적어도 내게는 중요했다. 물론 9월, 10월의 기회도 있지만, 졸업 전 합격을 목표로 삼는 한 시험에 높은 수준의 토익 점수가 필요했고, 그 시험이 아니더도 (2년의 유효기간이 있는 토익시험이기에) 빨리 고득점을 이룰수록 졸업과 그 이후 계획에 있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지긋지긋한 토익을 방학 때에 끝내는 것은, 내 최대의 과제'였다. 그랬기에 난, 최대한 시간을 아끼려 했다. 속칭 '비굴해보여도', 최대한 야구경기 시각에 맞춰 식사와 휴식 그리고 공부 외 업무를 유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다행히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 야구 경기는 식사 시각과 연동할 수 있을 시각에 경기 시각이 짜여졌다. 14일(목, 중국), 18일(월, 대만), 19일(화, 쿠바), 20일(수, 네덜란드) 경기가 12시 30분(한국 시각)에 진행되었고, 13일(수, 미국), 15일(금, 캐나다) 경기는 19시에 시작, 16일(토, 일본) 경기는 20시에 시작하는 형태였다. 일본전의 경우 식사 시각과 조금 어긋나긴 하지만, 당일이 토요일이라는 핑계로, 적당히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지난 두 주의 내 식사 시각은 올림픽 야구 경기에 좌우되게 된다. 식사량을 줄여 체중조절을 한다는 명분을 붙여(주 : 평소 늦게 취침하기에 약간의 야식을 먹고 있었음), 14일·18일·19일·20일의 경우 14시 30분에 점심식사를 하고, 13일·15일의 경우 16시에 간단한 간식을 먹은 후 21시 경에 저녁을 먹도록(주 : 대신 야식을 생략함) 식사계획(?)을 잡았다.

16일의 한일전 때에는 19일에 진행된 학교 수강신청일에 맞춰 학교 수업시간표를 짜는 것과 병행하여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TV가 있는 곳에서 경기 전체를 보기로 결정한다.

야구장에서도 공부를?

야구장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 하지만 내 처지가 그러했다. 야구장은 가고 싶었지만 일상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승전은 23일(토)에 열리고 8월 토익시험은 24일(일)에 있기 때문이었다.'예선전 뒤 일정은, 예선전 윤곽이 나오고 정해야지'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준결승전에 결승전까지 가니, 기쁘면서도 촉박함이 생겼다.

결승진출 소식에 야구장에서 다함께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싶었고, 이에 당초 문학야구장 개방을 예상했고 그걸 희망했다.  '결승진출 시 야구장을 응원장소로 개방한다'며 미리 개방을 공표한 잠실을 시작으로 결승진출 확정 후 사직·대구·대전 등도 개방을 확정했고, 잠실야구장이 집(양천구)에서 50분(버스, 전철 병행)이 넘는 거리인 데 반해 문학야구장은 평소 공부장소였던 학교(인하대)에서 9분거리(버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이번스 자유게시판(용틀임마당) 등 각종 게시판에는 문학야구장 개방 언급은 없었다. 오히려, 문학야구장 관리 주체인 인천시설관리공단 측이 중계료문제로 야구장을 열지 않겠다는 소식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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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토익시험의 포기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난 토요일 개관시각에 공공도서관에서 공부 후, 잠실야구장 개관 시각인 17시에 맞춰 잠실야구장에 가서, 간단히 요기 후 경기 시작 전까지의 시각에 책을 펴는 절충안을 택한다. 평소의 약점을 정리한 요약노트를 들고 간 것은 그 때문. 누군가에 의해 엽기사이트에 내 사진이 올라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야구장에서는 좋은 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애시당초 포기상태였다. 전광판이 보이고 응원열기가 죽지 않을법한 자리면 족했다. 도서관은 종합운동장역이 서울지하철 2호선 역이기에, 대림역 도보 5분 거리인 구로도서관으로 잡았다. 공부와 응원 모두 최대한으로 열심히 하고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실야구장 입장은, '지성이면 감천' 속담 그대로였다. 16시 50분 도착 후 접한 어마어마한 줄에 결국 돌아가야하나 했지만, 1루쪽 문(1-6문, 2-3문)개방 소식을 웅성웅성하던 인파 속에서 들었고, 그 문으로 전력질주한 끝에 1루응원단상 인근이면서 전광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게 됐다. 경기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던 거다.

결승전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던 경기진행 하나하나

누가 보면, '독한 사람'(?)으로 인식될 정도로, 야구와 공부를 치열하게 함께 추구했던 나였다. 하지만, 결승전이 벌어지는 순간에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결승전 뿐이었다. 이는, 전날 일본전 때에 투런홈런을 쳤던 이승엽 선수가, 1회초에 투런홈런을 또 치면서 극에 달했다. 그 뒤로도 비록 점수는 잘 나지 않았지만 진땀나는 승부가 이어졌고, 한 시도 경기에서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경기는 박진감있게 펼쳐졌다.

2:1이던 7회 초에 박진만(상대실책으로 인한 출로)-이종욱(볼넷으로 인한 출루)-이용규(2루타, 박진만 선수 홈인)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쳐 3:1로 점수 차이를 더 벌여 놓자, 7회 말에 쿠바의 벨 선수가 솔로홈런을 쳐서 3:2로 따라왔다. 9회말에는 심판의 판정오류까지 겹치며 1사 만루의 상황이 됐다. 도저히 다른 데에 관심 갖기 힘들 정도로 결승전은 한치앞을 내다 보기 힘든 명승부였다. 역시 '8전 8승'(당시)을 하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대한민국 대표팀다웠고, 역시 '아마야구 최강국'의 평을 받는 쿠바다웠으며, 역시 '올림픽 결승전'다운 짜릿한 경기였다. 투수, 수비, 공격 모두 결승전에서 보여질만한 멋진 모습이었다.

9회말에 포수 강민호 선수가 퇴장당하며 투수 교체까지 이뤄진 상황. 정대현 선수와 진갑용 선수가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는 국내 프로야구 응원팀의 믿음직한 마무리투수가 나왔기에 뭔가 해낼 것 같은 기대가 들었다. 1사 만루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진갑용 선수를 내보낼 수밖에 없던 상황. 쿠바로서는 잘 빠지는 안타 하나로 경기를 뒤집고 '우승세리머니'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감독으로서는 배수진을 친 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정대현 선수는 한국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병살타를 유도하며, 공 세 개만으로 초대형위기를 모면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이끌었다. 6-4-3(유격수-2루수-1루수)으로 이어지는 송구로, 쿠바 두 선수가 아웃되며 대한민국이 우승을 차지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되는 명장면이다. 단 하나의 실투도 허용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해 나온 낮은 싱커. 타자가 친 공은 박진만-고영민-이승엽의 글러브로 차례차례 옮겨가며 기적과 감동의 순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우승이 확정된 순간 잠실운동장에 있던 모두는 함성과 박수로 기쁨을 즐겼다. '대~ 한민국'과 선수들의 이름을 소리높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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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을 3만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지켜봤다는 그 추억에, 모두는 감동에 젖어 있었다. 이는 급기야, 그라운드 난입으로 이어졌고, 나 또한 '오늘 하루만이다'라는 생각으로 '잔디가 밟히면 복구가 어렵다'라는 이성을 잠시 누르고 그라운드를 향했다. 족히 5천여 명이 들어온 잠실운동장 그라운드. 야구장 중앙의 거대한 태극기를 들고 함께 경기장을 누비고, 기념 사진을 찍고, 환희의 시간을 보냈다. 그 날이기에 가능했던 자축이었다.

2008년 8월 23일 밤 10시 15분, 2008년 8월 24일 낮 10시 15분

2008년 8월 23일 밤 10시 15분. 이 때는 대한민국 야구가 드디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순간이다. 잠실야구장이 기쁨의 함성으로 인해 떠나갈 듯 기뻤던 것 처럼, 우커송 야구장, 사직·대구·대전야구장, TV가 있고 중계를 해 줬던 수많은 식당과 술집, 그리고 많은 가정에서도 함성이 울려퍼졌다고 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간절히 바라고 소리질렀기에 우리의 간절한 염원은 이뤄진 것이다. 난 그 날의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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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결국 8월 토익시험은 어찌되었나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나도 모른다. 절대평가가 아닌 문제별 난이도에 따라 배점이 달라지는 토익에 있어 최종 점수란 성적표를 받아봐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만약 야구를 안 봤다면 2008년 8월 24일 낮 10시 15분에, 무수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을 것 같이 문제가 쉽게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헤깔렸다는 것.

그래도 조금이라도 공부를 더하지 못했던 것에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인 야구 국가대표팀이 그랬던 것처럼, 센스있게 행동하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다음 번에는 생각대로 다 이뤄질 거니까.

덧붙이는 글 '그 경기, 난 이렇게 봤다 응모글'입니다.
야구 올림픽 응원 잠실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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