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씨는 인천의 한 직장에서 20년 동안 근무했다. 그렇게 정년이 되었고 은퇴를 할 때가 다가왔다. 그녀는 조리사로,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축구팀에서 근무했다. 이곳에서 선수와 구단 스태프들을 먹이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20년 간 근무한 그녀에게 구단은 마음을 다했다. 헌신한 선수들에게 그러하듯 그녀를 피치 위에 세워 그 공로를 치하한 것이다. 당당히 인천 유나이티드 사람으로 은퇴식을 가진 조리사 권정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천 선수들의 건강을 당부했다.
 
그녀의 곁에는 6년 동안 선수단을 수송해온 버스기사 박주석씨도 있었다. 그 또한 정년이 되어 자리를 물러날 때가 된 것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직원이었던 두 사람은 당당히 인천 홈구장에서 은퇴식을 갖고 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구단이 스타선수며 감독이 아닌 여느 평범한 직원을 귀히 대하는 모습이 남다른 인상을 남긴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관련한 수많은 의문점들에도 불구하고, 팀에 최소한의 희망이 있다고 믿는 건 이처럼 사람을 지향하는 모습들 때문이다.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포스터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포스터 ⓒ 쿠팡플레이

 
인천UTD 2023시즌의 기록
 
<2023 피치 위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자체 제작 콘텐츠로 쿠팡플레이에서 서비스되는 시리즈 다큐멘터리다. 경기당 한 회씩 제작되어 모두 42화에 이르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시리즈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치른 경기들은 물론, 그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 감독과 선수, 스태프들의 이야기까지를 포괄적으로 담아낸다. 개중에선 위에 언급한 것처럼 직원들의 은퇴 같은 축구 외적인 이야기부터, 팬들의 기대와 이에 따르지 못하는 성적과 관련한 내용이 두루 포함된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한국 K리그의 주요한 축 중 하나인 시민구단을 상징하는 팀이다. 시민구단의 반대편엔 기업구단이 있는데, K리그1의 FC서울(GS),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HD FC(현대), 포항 스틸러스(포스코), 대전 하나 시티즌(하나금융그룹) 등을 비롯해, 한때 K리그1 소속이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삼성) 같은 구단이 모두 기업 소유다. 반면 시민구단은 시민의 출자금 모집을 통해서, 또는 지자체의 인수를 통해 세워진 구단으로 기업구단에 비해 지원이 열악할 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서도 인천 유나이티드는 시민구단의 성공례로 꼽히며 K리그1에 오래 잔류해왔다. K리그의 여러 시민구단 가운데 그 성취를 인천과 견줄 만한 팀은 대구FC 정도가 고작일 테다. 그 뒤엔 인천을 지지하는 시민들, 곧 팬들의 힘이 있다. 특히 인천은 홈뿐 아니라 원정경기를 찾는 팬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구단, 그 관심과 열정은 팀이 저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나가는 데 있어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스틸 이미지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스틸 이미지 ⓒ 쿠팡플레이

   
인천의 전폭적 지원, 일류 구단으로 거듭날까
 
인천 지역의 지원 또한 결정적 조력이 되어주었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등 지자체 기반 지원이 다른 곳에 비해 많고 꾸준해 팀 운영에 커다란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다만 쓰기만 하고 얻는 건 적다는 비판이 거듭 터져 나오며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원을 바탕으로 인천은 다른 시민구단에서 언감생심 꿈꾸지 못할 선수단을 꾸리고 K리그 상위권에서 경쟁하는 팀으로 거듭났다. <2023 피치 위에서>에 등장하는 무고사, 에르난데스, 제르소, 신진호, 이명주 등이 모두 그 같은 선수들이다. 인천은 이를 통하여 2022년도 당당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냈고, 시민구단으로서 아시아 무대에 그 존재감을 알렸던 것이다.
 
누구도 먼저 가본 적 없는 길이기에 그 외로움과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다른 시민구단처럼 선수를 길러 팔기만 하는 셀링클럽으로 살아가야 할까, 우승권을 향해 경쟁하며 유력선수를 영입하는 덩치 큰 구단으로 성장하는 것도 가능할까, 인천을 향한 시선에서 기대와 우려가 늘 공존했던 이유다.
 
<2023 피치 위에서>는 조성환 감독의 지도 아래 인천이 리그와 FA컵,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해 경쟁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담아낸다. 그 과정은 기대만큼 순조롭지 않다. 매 순간이 위기라 해도 좋을 정도다. 끝내 운까지 따르지 않아 절망하는 순간까지 있다. 감독이 팬들 앞에 소환되고 또 사과하는 장면이 카메라 앞에 담긴다. 그 모든 순간은 시즌을 앞두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장면이었을 테다.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스틸 이미지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스틸 이미지 ⓒ 쿠팡플레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딱 잘라 무어라 말하긴 어렵다. 90분 간 살아 움직이는 축구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선수의 실력과 몸 상태, 기분과 각오, 감독의 전술이며 전략, 상대팀과의 상성, 날씨 등 외부요소가 모두 작용하게 마련이다. 팀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여러 노력을 거듭한다. 감독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하고, 코치와 고참 선수들도 진심이 담긴 말을 서로에게 건네며 동기를 부여한다. 다큐는 클럽하우스와 라커룸, 훈련장, 호텔 등 다양한 장소에서 선수들에게 다가서 그들의 상태와 생각을 묻고 담는다. 그것이 이 다큐가 지닌 제일의 미덕이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쿠팡플레이가 스포츠, 특히 K리그 콘텐츠를 확장하는 정책기조 아래 <2023 피치 위에서>를 편성하긴 하였으나 이 다큐가 대중 일반에게 호소하기엔 여러모로 적절치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전의 이야기를 담은 <승격>, 광주의 2023 시즌을 그린 <옐로 스피릿>과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으로, 매회 한 경기씩을 다루다 보니 다분히 거친 편집이며 정돈되지 않은 구성이 눈에 띄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K리그, 또 인천 유나이티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는 쉬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다큐엔 다른 작품에선 만나보기 어려운 날 것들이 얼마쯤 담겨 있다. 통상 마케팅을 위해 제작되는 다큐가 팀의 불미스런 부분을 담아내지 않고 좋은 모습만 그려내는데 집중하는데 비하여 상대적으로 정제된 인상이 덜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2023 피치 위에서>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K리그 팀의 일상을 담은 다큐가 OTT서비스를 통해 대중과 만나고, 그들에게 경기로만 전할 수 없는 다채로운 부분을 알려준다는 점이 그렇다. 제 일터에서 최선을 경주하는 사람들이 그에 합당한 응답을 받지 못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이 다큐도 조금은 그렇다.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스틸 이미지

쿠팡플레이 다큐멘터리 <2023 피치 위에서> 스틸 이미지 ⓒ 쿠팡플레이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3피치위에서 인천유나이티드 K리그 조성환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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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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