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1 04:50최종 업데이트 23.06.21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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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초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저장탱크 ⓒ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핵연료봉 냉각 처리에 사용되고 있는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를 둘러싼 뉴스를, 정작 일본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도쿄전력 및 일본정부가 오염수 발생량이 감소하고 있다며 현재 보관하고 있는 오염수 탱크량이 한계에 달하는 시기를 2023년 가을에서 2024년 2월-6월로 변경했지만 보도하는 언론이 드물다. 물론 일본정부는 기존 스탠스에 따라 올해 여름부터 해양방류를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선 마지막 해저터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메이저급 언론 중에서는 <도쿄신문>이 유일하게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발생량은 2015년 490만 톤에서 2016년 400만 톤, 2017년 220만 톤, 2018년 170만 톤, 2019년 180만 톤, 2020년 140만 톤, 2021년 130만 톤으로 점점 줄어들어 2022년에는 90만 톤으로 100만 톤을 밑돌았다. 도쿄전력은 시설 내에 흘러들어오는 지하수, 강수의 양을 억제하는 대책을 통해 오염수 발생량을 줄였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원래 일본정부가 내세웠던 논리, 즉 지상에선 더 이상 저장할 공간 및 탱크가 부족하다는 것이 근본부터 무너진다. 게다가 당사자들이 올해 가을이 아니라 내년 2-6월에 탱크가 한계에 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폐로 추진 컴퍼니의 오노 대표는 "(저장탱크 여유는 있지만) 오염수 처분은 미룰 수 없다"며 원안대로 여름부터 방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진보 리버럴로 분류되는 <도쿄신문>만이 보도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일본사회 및 언론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실제 일본 최대의 포털이나 구글 등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뉴스를 검색하면 대부분 한국 언론의 일본어 번역 뉴스, 그리고 후쿠시마민보 등 지역언론 뉴스가 나온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로 대표되는 3대 레거시 미디어는 오염수 관련 뉴스를 다루지 않는다. 오죽하면 방류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 뉴스를 통해 오염수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할까. 일 때문에 만나는 일본인들마다 "정말로 한국 지금 소금 사재기 하고 있냐"고 물어온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조선일보> <연합뉴스>의 이름이 반드시 나올 정도다.

[일본사회가 무관심한 이유①] '냄새가 나면 일단 뚜껑부터 덮고 본다'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초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 연합뉴스


일본사회가 이렇게 오염수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먼저 오염수를 희석시켜(ALPS, 다핵종제거설비) 처리수로 만든 후 해양에 방류한다는 게 이미 결정된 '확정 사안'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2016년 6월 제3자 전문가회의를 통해 ALPS 처리를 마친 오염수(처리수)의 처분방식을 논하는 자리에서 해양방류에 대해 "최단기간에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가능하다"는 의견을 처음으로 내놨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1년 4월 13일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오염수 해양방류를 결정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ALPS 작업을 통해 인체에 유해한 방사성 동위원소는 다 걸러내고, 삼중수소 등 일부 방사성 핵종은 WHO(세계보건기구)가 정하는 안전기준 이하로 희석시킨 후 약 30년 동안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적혀 있다. 이 때 나온 '안전기준 이하'가 바로 일본 규제 기준의 1/40, 세계보건기구의 식수 기준의 1/7이하, 즉 식수로 음용해도 안전하다는 바로 그 논리였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자신만만하게 발표했던 해양방류는 그 이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방류 초읽기 들어간 올해 6월 초순에는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근해, 즉 해양방류를 실시하기로 한 항구에서 잡은 모니터링용 생선에서 일본식품위생법 기준을 훨씬 초과하는 ㎏당 18000베크렐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돼(일본 기준은 ㎏당 100베크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전문가들은 자연농축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지만, 이 말은 결국 지금까지 오염수가 제대로 보관되지 않은 채 바다로 흘러 나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해양 방류 여부를 떠나 이미 지난 12년 동안 오염수가 새어 나갔으니 "후쿠시마 원전은 안전하게 컨트롤 되고 있다"고 항상 주장해 온 아베 신조 총리의 말은 거짓으로 판명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미 결정한 사안이고, 지난 7-8년 동안 이런저런 준비를 했겠지라며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인다. 방류가 시작될 경우 가장 많은 직접적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후쿠시마 현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한때 70%에 육박했던 방류 재고 의견은 절반 이하로 줄어 들었다. 아예 방류에 대한 찬성/반대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후쿠시마TV와 후쿠시마민보가 6월 17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현 거주민 714명, 전화조사)를 보면, '해양방류에 대한 이해도가 꽤 늘어났다'가 50%로 나왔고, '여전하다'가 44.6%로 집계됐을 뿐이다. 즉 직접적인 피해를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조차 해양방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후쿠시마 현민들은 '해양방류가 실행될 경우 풍평피해(데마고그, 거짓소문으로 인한 피해)를 걱정한다'가 90%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일본정부에 홍보에 더 힘을 기울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치보리 마사오 후쿠시마 현지사 역시 17일 기자회견에서 "IAEA 등의 국제기관과 연계해, 제3자에 대한 감시와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홍보, 발신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방류여부 보다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의 생업에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일본사회의 여러 모습들 중 하나인 '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위주의'에 기인한다. 위(上様)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결정한 사안인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포기와도 결부된다. 한번 결정내린 사안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체념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냄새가 나면 일단 뚜껑부터 덮고 본다'는 습속과도 연관되어 있다. 매뉴얼이 없는 사고일 경우 우왕좌왕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사회의 부정적 모습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사안이라 그 후속 해결책 역시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

12년 동안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오면서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보니 다들 일단 뚜껑부터 덮고 보자, 나중에 누군가가 해결하겠지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오염수 해양 방류에 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이 모든 안 좋은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결부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사회가 무관심한 이유②] 국내 이슈 폭발+한국 시찰단 긍정 사인

두 번째로 일본사회는 지금 다른 국내 이슈들로 정신이 없다. 이슈로 이슈를 덮는 격이다. 1991년 버블 붕괴 이래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 닛케이지수가 대표적이며, 수정에 수정이 가해졌지만 드디어 통과된 LGBT 법안, 아동수당 대폭 증액, 그리고 자위대원의 총기 난사 사고 등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수많은 이슈들이 언론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 모든 사안들이 '역대급'이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신경을 쓰는 일본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닛케이지수 상승은 33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 및 1달러당 140엔 언저리로 정착된 엔저 현상와 맞물리면서 일본경제의 거대한 방향 전환(터닝포인트)을 시사하는 등 긍정적인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역시 내각불신임안 제출 등 일본 국내의 정치적 사안에만 집중 중이다.

실제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반대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일본 정당은 지지율 1%대에 불과한 사회민주당밖에 없다. 무엇보다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이미 시찰단을 보내 오염수 방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 및 이해를 보였기 때문에 굳이 한국사회의 여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전문가 시찰단이 지난 5월 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현장 시찰을 하고 있다. ⓒ 도쿄전력 제공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는 일본 사회에선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다. 도쿄전력은 마지막 해저터널을 완성했고, 지난주부터 시운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염수 방류는, 예정대로 올해 여름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다. 오염수가 제대로 처리됐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하고, 설령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해도 해양에 방류시키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에 관한 근본적인 논의는 지속되어야 한다. 방사성 물질이 가득 포함된 오염수도 희석만 시키면 바다에 방류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된다면 음식쓰레기도 땅에 묻을 필요가 사라진다. 어차피 바다에 가면 자연스레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동안 지구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던 행위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허무감도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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