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3 13:23최종 업데이트 23.08.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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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프레드릭 카운트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3국 정상회담에서 참석해 있다. ⓒ EPA=연합뉴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앞으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해양 방류에 관해 어떤 문제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모두 내 책임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21일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전일어협조합) 사카모토 마사노부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일본에선 '처리수'라고 호칭) 방류 대책을 논의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최소 30년은 지속될 오염수 해양 방류다. 나중에라도 무슨 문제가 생겨 책임 소재를 묻게 된다면 나에게 물으라고 말한 셈이다. 


기시다 총리의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에 사카모토 이사장은 면담이 끝난 후 "기본적으로 우리들은 방류에 반대한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이왕 이렇게 됐다면 풍평(괴담, 가짜뉴스) 피해를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써 달라"라고 짧게 언급했다.

일본 정부는 어업종사자들에게 합계 800억 엔(한화 7천 2백억 원)에 달하는 보상금 및 위로금을 예정하고 있다. 풍평 피해 대책예산이 300억 엔, 어업 및 어민 관련 지원 조성금이 500억 엔이다.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고, 책임소재까지 명확하게 밝힌 이 면담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급물살을 탔다. 

애초에 기시다 총리는 여름쯤에 실질적인 검토작업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대 반대세력이라 할 수 있는 전일어협조합 간부진을 만난 이후 22일 각의결정, 24일 방류로 최종결정됐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태스크포스팀은 2년 6개월 전에 만들어졌지만, 실질적인 결정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사흘이었던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24일로 정해놓고 마지막 퍼포먼스를 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가장 큰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전일어협조합이 사실상 백기항복을 한 것에 강한 추진력을 얻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미국 정부는 가만히 있고, 일본인은 '어쩔 수 없다'
 

왼쪽부터 윤석열 한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3자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도착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사실 기시다 총리는 주변국들, 특히 한국과 중국의 반응에 개의치 않는다. 그는 주변국들이 반대하는 것을 외교적 사안이라 보고 있다. 그래서 주변국 반발에는 국제기구, 즉 IAEA(국제원자력기구) 조사단의 보고서로 대응한다. 심지어 현 윤석열 정권은 일본친화적 자세를 띠고 있다. 당연히 한국 정부 차원의 공식 반발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아사히신문은 지난 16일 서울 특파원 발로 "윤석열 정권이나 여당 내에서 '오염수 방류가 불가피하다면 총선에 악영향이 적도록 방류를 빨리하라'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이 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정황만 놓고 본다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관광업 통계도 영향을 미쳤다. 후쿠시마 방류를 반대하는 여론과는 별개로 2023년 현재 일본을 찾는 전체 해외 관광객 중 약 40%는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선 한국 내 후쿠시마 방류 반대 여론이 사실상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미국이 가타부타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이 크다. 오히려 한미일 정상은 역대 그 어느 정상들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언론에선 크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미국과 이란의 외교 대리전을 기시다 총리가 담당할 정도다. 이런 국제적 분위기를 '외교통'인 기시다 총리가 읽지 못했을 리 없다.

일본 국내 여론도 '방류는 어쩔 수 없다'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많은 40~60%대를 유지하고 있다. 방류에 반대하거나 미뤄야 한다는 의견은 30~40%로 꾸준히 집계된다. 물론 '방류에 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의견이 항상 60~70% 언저리를 기록하고는 있지만('설명이 충분했다'는 10~20%) 이러한 부정적 여론이 거대한 사회적 움직임으로 구현되진 않는다. 

방류로 가닥이 잡힌 지난 3년여 동안 전국단위의 집회는 한 번도 없었다. 100여 명 단위의 환경단체 반대 퍼포먼스가 나가타초 수상관저 앞에서 행해지거나, 후쿠시마현민들이 소규모 집회를 열어왔을 뿐이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현장 정치 동력을 아예 상실해 버렸고 야당 역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즉 비판을 위한 비판이란 소리를 들을까 봐 오염수 방류 문제는 후순위로 밀렸다.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 내가 만난 일본인들은 거의 모두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일본사회 특유의 습속 중 하나인 '쇼가나이(어쩔 수 없다, しょうが無い)' 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렇기에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 방일 당시 50%대를 반짝 회복했던 이래, 4개월 연속으로 지지율 하락을 갱신하고 있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선 '결단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 결단력이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신속하게 발휘된 것이다.

이 역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지지율 하락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 내각 지지율 하락의 주된 원인은, 인플레이션과 세수부담으로 인한 서민경제 타격, 마이넘버카드와 의료보험증을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각종 불상사,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통일교와 각료들의 관계성, 마지막으로 기시다 총리 측근과 자민당 간부들의 스캔들이다.

기시다의 '위험한 결단'...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일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방류를 앞둔 20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방문, 방류시설을 시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산케이 리서치 데이터'가 지난 8월 7일 발표한, 응답자 개인의 지지/비지지와 상관없이 기시다 내각 하락 원인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란 특별여론조사(복수응답 가능, 전국 성인남녀1628명)에 따르면 '마이넘버카드를 둘러싼 혼란'이 66.5%로 하락 원인 1위를 차지했다. '세금이 늘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49.6%, '인플레이션 대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가 47.6%, '자민당 의원 등 총리 주변 인사들을 신용할 수 없다'가 41.3%, 'LGBT 법안의 성립'이 38.3%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하락 원인들을, 현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으론 쉽게 타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플레 대책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체감 인플레를 상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해결책은 실질임금의 상승이지만, 올해 8월 일본의 실질임금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6%p 감소했고, 이로써 15개월 연속으로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폭등하는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일반 가정의 공과금 지출을 줄이고자 정부가 올해 1월부터 실시 중인 '격변완화대책사업'은 9월부터 소비전력 1kW당 7엔 지원이 3.5엔으로, 도시가스 입방미터당 30엔이 15엔으로 각각 줄어들었으며 이마저 10월 이후에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엔저 현상도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엔이 약하기 때문에 수입에 의존하는 생필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일본은행은 달러당 144엔에 도달할 경우, 보유 달러성 자산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통화시장에 개입해 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볼 수 없다. 결국 8월부터는 손을 놔 버렸고, 다른 방안을 찾는 사이에 23일 현재 달러당 145~146엔을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기시다 총리가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주변 인사 스캔들에 대해 성실히 대응하고, 때에 따라선 경질, 해임 등 적절한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부분에 관해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기하라 세이지 내각부 부장관의 아내를 둘러싼 미제 살인사건 스캔들이다. 특종제조기 <주간문춘>이 근 한 달여 동안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뤄 사건의 개요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특히 7월 13일호에선 기하라 부장관의 "내가 없었으면 와이프는 벌써 연행됐지"라는 음성파일까지 등장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17년 전 발생했던 미제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란 사실을 그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물론 기하라 부장관은 철저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모리 마사코 참의원의 '브라이덜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총리 보좌관으로서 '여성 활약 담당'을 맡고 있는 그가 최근 '결혼식 보조금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개진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SNS는 난리가 났다. 저출산을 결혼식과 관계짓는 그 단편적인 사고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뤘다. 모리 의원은 "정책 의도가 곡해됐다"며 "외국인들의 결혼식을 일본에 유치하자는 뜻이었고, 그럴 경우 일정 정도 지원을 하자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리 의원이 결혼식 식장 업체로부터 후원금 100만 엔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결국 지금도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하지만 기하라 부장관 때와 마찬가지로 기시다 총리는 묵묵부답이다.

기시다 총리는 어쩌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통해, 12년간 그 어느 누구도 아무도 못했던 '결단'을 내렸다는 어필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방류를 계기로 지지율이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로 지지율이 반짝 상승했던 경험도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차피 일본 국내적 상황은 비슷하니까 말이다.

기시다 총리가 내린 이번 '결단'이 몇 십년, 몇 백년 후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 그리고 미래 세대의 삶과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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