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7 09:39최종 업데이트 24.04.0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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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후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후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오츠 슈이츠 지음).
 
제목과 달리 삶에 필요한 책이라기에 듣기 시작했는데 차례부터 흥미로웠다.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독특한 일본인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었는데, 호스피스 전문의로서 저자는 수많은 죽음을 앞둔 이의 마지막 후회에는 공통 분모가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정리했다고 한다.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듣는 내내 머리와 가슴에서 사소하지만 커다란 경종이 끊임없이 울려댔다. 정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것 같은 후회들이 내 귀를 통해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왔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끝까지 다 듣는 동안 마음속 울림도 그치지 않았다. 당장 뭐라도 해야 했다. 그냥 있다가는 나도 뼈저린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아내를 포함한 친구들에게 책을 소개하면서 나름의 감상을 적으려는데, 문득 내가 겪은 또 다른 후회가 떠올랐다. 
 
가장 하고 싶은 것, 가장 후회되는 것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그건 사소하다고 착각한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다. ⓒ 김미래/달리

 

몇 해 전, 극작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대본에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시각 장애인에 관해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작가는 미리 질문지까지 보내왔다. 시력을 잃게 된 이유, 시력을 잃고 난 후 가장 힘들었던 일, 힘든 일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등등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질문들이 나열돼 있었다. 

참 난감했다. 쉽게 할 수 있는 답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힘든 일이 많은 건 분명해도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그때그때 달랐기 때문이고, 어떻게 해서 극복했나 싶다가도 도돌이표처럼 그 순간이 되살아나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이런 질문도 있었다.

"만약 시력을 되찾게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망막하다 못해 사실상 답할 수가 없는 질문이었다. 시력을 되찾는다면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그런데 거기에 '가장'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답을 할 수가 없다.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면 가족들 얼굴이 가장 보고 싶다. 여전히 탱탱할 것 같은데 주름 걱정이 한참인 아내의 얼굴은? 중고생 때도 못 봤는데 이미 대학생이 돼 버린 아이들 얼굴은? 여전하실 거라 믿으면서도 언뜻언뜻 느껴지는 세월 속에 부모님은? 친척, 친구, 반가운 지인 모두 만나면 그 순간 그들의 얼굴이 가장 보고 싶다.
 
차가운 바람 속에 따뜻한 봄볕이 느껴지면 길가에 활짝 피었을 꽃들이, 폭풍우 몰아치는 여름 바다 파도 소리를 듣게 되면 그 바다가, 갑자기 서늘해진 아침 공기에 재채기가 나올 때면 눈부시게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색색의 향연들이, 눈 내린 겨울 아침, 뽀드득뽀드득 박자에 맞춰 연방 터지는 눈꽃 찬가를 듣고 있으면 그 눈꽃이 가장 보고 싶다.
 
하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다. 저녁 식사 후 여유로운 산책길에 내 옆을 스쳐 달려가는 아이들 소리가 들리면 달리고 싶고, 포장된 산책로 위에 서서 등산로로 접어드는 사람들의 발소리만 들어도 당장 그 산길을 오르고 싶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은 하나같이 사소한 일들이다. 극작가에게 '맘껏 혼자서 걷고 싶다'고 답을 했다. 왠지 그때는 낯선 골목길, 외딴 오솔길, 인적 끊긴 들판 길을 혼자서 맘껏 걷고 싶었다. 너무도 사소한 것이라 의외였는지 그 작가는 질문지에 없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 시력을 잃고 난 후에 가장 후회되는 건 어떤 걸까요?"
 
눈을 감고 생각해 봤다. 지금 내게는 불필요한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감으면 실제로 마음의 눈도 감겨서 뭔가를 깊이 생각하기에 좋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나같이 가장 하고 싶은 것과 똑같았다. 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사소하고 평범한 것 일색이었다. 딱 한 가지, 미뤘던 해외여행이 후회되긴 했는데 이상하게 다른 것들만큼 간절하진 않았다.
 
"우습게도 며칠 전엔 영화를 많이 안 본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맘껏 걷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되네요. 우리나라 곳곳, 정말 안 가 본 곳이 너무 많거든요. 적어도 지금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건 그렇습니다. 아마도 내일, 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다른 걸 가장 후회하고 있겠지만요."

그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혼자서 맘껏 걷는 것이었으니까, 아마도 그게 가장 후회되는 일로 떠올랐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을 사소한 것이라 착각
 

아무리 하찮아도, 아무리 사소해도 내가 즐겁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소중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리라. ⓒ 김미래/달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과 양털 같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은 많은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일이고, 나처럼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소망이다. 그런데 사소하다고?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내겐 너무 소중한 것이고,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심정이리라.
 
그럼, 혹시 내가 소중한 것을 사소한 것이라 착각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삶에 필요한 건 모두 소중한 것인데도, 더 나은 삶, 남보다 좋은 삶에 필요한 것만이 소중한 것이라 착각한 건 아닐까? 나의 몸과 마음을 사람답게 가꿔주는 정말 소중한 것인데도, 너무 흔해서, 누구나 갖고 있어서, 보이지 않아서 그리고 느낄 수 없다는 이유로 어리석게도 그 중요한 것들을 사소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이런 내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처럼 자연에서 생존 경쟁을 하고 있을 때는 물 한 방울, 반쯤 썩은 과일, 습기 차고 컴컴한 동굴, 온몸을 감싸주는 따뜻한 햇빛처럼 하찮거나 사소한 것도 모두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동물적 본능이 있다. 생존 경쟁도 해야 했지만, 흔히 남자에겐 수컷 본능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른바 서열 본능을 우리 인간은 모두 갖고 있다. '나'는 '남'보다 어떤 면에서든 조금은 우월하고 싶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이 아닌 인간끼리의 경쟁도 늘어갔다.
 
경쟁은 비교를 낳았다. '더 좋은', 혹은 '더 나은'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이 소중한 게 됐다. 우리가 새롭게 살게 된 물질문명이 점점 더 풍요로워지면서 기존의 소중한 것은 당연한 것이 됐고, 당연해서 사소한 것이 됐다.
 
안타깝게도 이 시점에서 물질적 풍요와 그 풍요를 가능케 하는 권력만이 소중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보태진 것 같다.
 
사람은 물질이 가져다주는 에너지만으로 살 수 없다. 정신 에너지도 꼭 필요하다. 비록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지만, 정신 에너지는 몸 에너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정신 에너지가 부족하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보충을 해주어도 몸 에너지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시쳇말로 '멘붕'이 오고, '번아웃'이 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좋은 집이 있어도, 아무리 멋진 몸을 가졌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슬프게도 인간끼리의 생존 경쟁에 더욱 유리한 것이 소중한 것이고, 우리를 사람답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정말 소중한 정신 에너지의 원천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버리고 만 게 아닌가 싶다.

사랑, 즐거움, 어울림, 그리움, 친절, 감사 등등, 경쟁을 가져온 풍요로운 물질문명 속에서 우리의 정신 에너지를 보충하던 그 소중한 것들을 사소한 것이라 착각해 외면하고 무시했던 것 같다.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이유를 다시 하나하나 들어봤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없게 된 후 느낀 후회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 봤다. 모두 너무도 중요한 것들인데, 우습게도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할 수 없게 되면 아무리 통곡하며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후회하는 것들은 언제나 곁에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사소하다며 나중으로 미루고 미룬 것들이었다. 나 역시 시력을 잃기 전에 그랬다.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도 그랬나 보다.
 
나도 모르게 시인 반칠환이 <한평생>에서 한 경고가 튀어 나온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은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좋은 일은 사소한 것일 수 없다.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흔해도, 내겐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날이다. 미룰 이유도 없고 미뤄서도 안 된다. '더 좋을' 필요도 없고, '더 나을' 필요도 없다. 

좋은 건 지금이어야 좋은 거고, 하고 싶은 건 지금 해야 좋은 거다. 나쁜 짓만 아니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당장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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