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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와 새우깡의 만남
▲ 소주와 새우깡 소주와 새우깡의 만남
ⓒ 황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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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와 새우깡.

그 오묘한 조합의 참 맛을 고3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문제풀이, 입시 스트레스, 제로섬 같은 경쟁으로 하루하루를 전쟁하듯 보내던 시절, 나에게도 해방구는 필요했다. 어느 날 밤, 나와 같은 반 친구 P는 감옥 같은 학교를 탈출했다. 그리고 한숨에 달려간 곳은 바닷가 방파제. 언제 준비했는지 P가 '씨익' 웃으며 가방에서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꺼냈다. 소주 한 모금에 새우깡 두 개씩. 슬픔처럼 밀려오는 파도, 수평선 너머 숨넘어갈 듯 깜박거리는 낚싯배의 불빛이 아직 눈앞에 선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소주와 새우깡의 탐닉이 이어졌다. 수능만 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우선 원하지 않은 대학에 입학한 것만 하더라도 불행한 대학생활이 되기에 충분했다. 또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한마디로 당시 나의 모습은 일그러진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결정판이었다. 이런 와중에 소주와 새우깡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마지막 코스는 늘 바닷가 방파제. 소주 한잔에 자괴감과, 새우깡 하나에 방황을 곱씹곤 했다. 

가장 최근에 바닷가 방파제를 찾았을 때는 작년 추석이었다. 집에서 하릴없이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P가 전화로 나를 불렀다. P의 아버지가 장남이라 친척들이 꾸역꾸역 P의 집으로 모였고 P는 친척들의 질문공세를 미리 피할 심산으로 문을 박차고 집을 나선 것이다. 명절에 고향 못 가는 이들만 불행한 게 아닌 모양이다. 우리는 마지막 차(次)로 편의점에서 소주와 새우깡을 사서 방파제로 향했다. 병나발을 불면서 새우깡을 한 움큼 입안에 털어 넣고 입안이 텁텁해지면 다시 병나발을 불었다. 칠흑 같은 바다를 바라보다 불투명한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다음날, 집에 어떻게 왔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최근 새우깡에 쥐머리가 발견되어 매스컴에서 난리를 치고 있다. 바야흐로 춘삼월, 좀 있으면 ‘병나발의 계절’이 도래하는데 새우깡을 계속 사야만 하는지 고민이다. 이참에 안주를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우깡의 감칠맛을 무엇으로 대신하랴?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내년이면 대학도 졸업인데 소주와 새우깡을 졸업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이왕 포기할 수 없는 새우깡, 농심 관계자들은 '쥐머리' 보단 '쥐꼬리'를 서비스 안주로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최근 보도되고 있는 새우깡 파동을 보며 떠올린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태그:#소주, #새우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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