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월 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이름 줄리 맷튜스. 영국 출신 여성가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국제 앰네스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게 됐고 여기서 느낀 분노와 슬픔, 그리고 할머니들의 당당한 증언이 주는 희망과 용기를 노래로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단순히 반일감정이나 국적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쟁 중 발생한 여성 성폭력에 대한 '인권' 문제. 이런 문제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먼 땅 푸른 눈의 여성이 보내는 관심에 동시대적 자매애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줄리 맷튜스(Julie Matthews)씨는 현재 영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Take these bones'을 포함하는 앨범을 동료인 크리스 와일(Chris While)과 함께 제작하고 있다. 줄리 맷튜스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푸른 눈의 자매들, 한국을 바라보다

 

-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와 크리스 와일은 14년간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많은 음반을 녹음했다. 나는 보컬과 피아노·기타·만돌린·아코디언 등을 담당하고 크리스는 보컬과 피아노·기타 등을 맡고 있다. 우리의 음악은 우리를 감동시키는 어떤 것, 혹은 어떤 인물에서 영감을 얻는다. 우리는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며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우리의 직업이 진정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 이번 앨범을 만들게 된 동기는?   

"우리가 금방 작업을 마친 이 앨범은 '함께 그러나 홀로(Together Alone)'라 불리는 여섯 번째 스튜디오 듀오 앨범이다. 내가 노래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작곡을 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스스로 강하게 인지하는 이슈에 대해 대중에게 상기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래들은 만약 어떤 이가 노래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그것에 대해 것에 대해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게 나에게는 상당히 값진 결과인 셈이다."

 

줄리 맷튜스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특히 길원옥씨의 이야기에 감명 받아 이번 앨범 작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길원옥씨는 1998년 자신이 피해자임을 고백한 이후 현재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초 유럽 4개국(네덜란드·벨기에·독일·영국)을 순회 방문해 각국 국회의원을 만나고 의회에서 청문회를 하는 등 유럽연방 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공로로 길씨는 7월 2일 제5회 서울시 여성상 대상을 수상했다. 아픔과 상처에 굴하지 않고 후세에 다시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여성이 없길 바라며 문제 해결의 주체로 당당히 일어선 길원옥 할머니. 이런 그녀의 모습이 맷튜스씨에게 감동을 안겨 준 것이다.

 

"처음 쓴 곡은 버렸다, 욕설이 튀어나와서"

 

- 길원옥씨와 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고 난 후 당신의 반응은 어땠나?

"이 역사를 알고 난 후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렸고, 더구나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러한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는 사실에 더욱 공포를 느꼈다. 나는 스스로도 꽤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끔찍하고 엄청난 역사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곡을 씀으로써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이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특히 길원옥씨의 말과 태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처음 곡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슬프거나 다소 적합하지 못한 욕설 등이 튀어나와 첫 작업을 모두 버려야 했다. 나는 그녀의 용감함과 끈질긴 정신을 담은 곡을 쓰고 싶었다. 수많은 비극을 겪었고 현재 나이 80세이지만 그녀의 정신을 말살하고 존엄성을 짓밟고 재판과 보상을 부정하는 일본정부의 완강함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번 우리의 노래는 정신의 승리에 관한 노래이다."

 

- 앨범의 대표곡인 'Take these bones'의 제작과정과 주요 콘셉트를 알고 싶다.

"내가 이 곡을 연주하자 나의 동지 크리스는 아주 맘에 들어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리드보컬을 맡고 싶다고 했다. 특히 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 여성합창단의 목소리가 들어가길 바랐다. 이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길원옥 여사가 자신의 지난 일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언급하여 이 비참한 역사가 잊혀지거나 부정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규모의 합창단을 우리의 작은 스튜디오로 초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크리스와 나는 영국에서 보컬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워크숍은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세 개의 하모니를 따라 부르도록 했다. 그들은 두 손까지 높이 든 채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이는 모든 여성들과 함께 노래 부르는 축제처럼 느껴졌다."

 

- 노래 제목 'Take these bone'은 어떤 뜻인가?

"'나의 자매들과 딸들이 나의 뼈를 흔들리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이 여성들이 나의 스토리에 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앨범 작업을 같이 한 40여 명의 워크숍 참가자들은 모두 이 작업으로 흥분돼 있었고 그들이 전달하는 가사의 일부가 된 (길원옥 할머니의) 스토리에 매우 감흥을 받은 상태였다.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 가수들이었지만 우리가 그들을 가르쳐 함께 레코드 작업을 했다. 나는 이 새로운 앨범이 매우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이 노래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Take these bones'

 

나는 50년간 이 침묵을 지켜왔네

고통과 수치스러움과 피와 눈물에 관해

그러나 이 침묵이 천둥소리처럼 깨어졌을 때

세상의 무게는 지금 너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리

 

이 뼈들을 가져가요, 깊은 곳에 묻어버려요

그들이 당신을 다시 괴롭혀선 안 되니까

이 뼈들을 가져가요, 깊은 곳에 묻어버려요

그들이 돌아와서 당신을 괴롭힐테니

 

나는 그들의 벽장 속에 갇힌 맨 마지막 뼛조각

표면에 쌓인 두꺼운 세월의 먼지

비밀을 담은 책과 거짓말의 장부를

내가 죽는 날, 그것들을 나와 함께 묻어버리고 싶겠지

 

포로수용소의 위안부여성

2만 명 조국의 수치

우리는 침묵하지도, 부정되지도 않으리

진실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너는 결코 그것을 숨길 수는 없어

 

우리 백만 명의 자매들과 딸들이 줄을 지어

나의 목소리가 되어주려 기다리고 있으니

마지막 위안부 여성이 눈을 감는 날

나의 자매와 딸들이 나의 뼈를 흔들리라

나의 자매와 딸들이 나의 뼈를 흔들리라

 

함께 투쟁할 역사를 위하여

 

- 이 앨범을 통해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대중이 우리의 노래 속에 담긴 메시지에 감동받고 곡에 담긴 생각들과 감정들을 인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Take these bones'를 포함한 이 앨범을 통해 나는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영감을 받고 함께 투쟁해 나가기를 바란다."

 

- 음반 발매 이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가? 음반 발매와 콘서트 등에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크리스와 나는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원한다.  아직 현지의 음반 관계자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이 곡 덕분에 프로모터와 연락이 닿아 곧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오는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영국을 방문하여 함께 프로모션 작업을 하게 된다. 그 때 나의 영감의 원천인 길원옥 여사를 만날 예정이다. 매우 기쁘고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이 모든 일이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었더라면 더욱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다)."

 

'Together Alone' 앨범은 오는 9월 29일 영국에서 발매된다.

웹 주소는 www.whileandmatthews.co.uk. 한국의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자 줄리 맷튜스씨는 "크리스와 나는 세계 속으로 점점 우리의 두 팔을 뻗어가고 있다"며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아픔을 알리고 같이 해결해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여성월간지 우먼라이프에 동시에 게재됨을 알립니다.


태그:#우먼라이프, #서상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