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바보같은 인간입니다.”
“왜요?”
“오르는 주식값을 지켜보다가 큰 맘 먹고 베팅했거든요. 그런데 막차를 탄 거였어요. 왕창 날렸죠. ‘왜 난 이다지도 똑똑치 못한가’라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에요.”
언젠가 지인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그의 처참하지만 뒤통수를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혀를 끌끌 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의 사정을 이해하다 못해 가슴 깊이 공감했으며, 그와 나 이외에도 불로소득 또는 공짜 돈(Money for nothing)을 숭배하는 이시대의 모든 이들과 더불어 함께 위로를 나누고는 강제로라도 무릎을 꿇려놓고 속죄기도 또는 반성의 참선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던 기억은 분명하다.
나는 그의 진지한 이야기 내용에 고소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솔직히 악마의 심장으로 이식수술한 사람처럼 속으로 음흉하게 웃기도 했다. 아이작 뉴턴이 떠올랐다.
투기 앞에선 무기력했던 과학자 뉴턴
1720년 남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과 교역 독점권을 영국정부로부터 따낸 ‘남해회사’라는 기업의 앞날은 누가 봐도 창창했고, 당연히 그 회사의 주식을 놓고 런던에서는 즉각 투기열풍이 불었다. 그 때 뉴턴이라는 이 똑똑한 과학자도 실험실을 박차고 나와 남해회사 주식을 한 움큼 사고는 희희낙락했다.
그 후 적당한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뉴턴은 보유한 주식을 처분했으나, 남해회사 주식은 더욱 천정부지로 올라 이 머리 좋고 지혜가 출중한 사람을 불안케 했다. 망설임 끝에 뉴턴은 전 보다 더 많은 양의 주식을 사 들였지만 애석하게도 그 직후에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현재 통화가치로 약 200만 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날렸다. 천문학과 미적분학 등 과학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뉴턴은 그 후 평생 동안 주식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도 않았다고 한다.
돈을 향한 집착은 이토록 고결한 학자의 가슴속마저도 분탕질해 놓을진대, 더욱 발전 된 경자사회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눈먼 돈을 찾아 주식투기에 열을 올리다가 손해를 보는 것 쯤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것은 부동산 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2008년이 끝나가고 있는 현재, 미국의 부동산시장 거품붕괴에 의해 촉발 된 금융위기로 전 세계의 경제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 그 여파로 개혁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고도성장을 해오던 중국마저 기업 활성화와 실물경기 부양책으로 6천억 달러를 내 놓았을 정도다.
이 액수는 한국국민총생산량(GDP)의 60%에 달하며, 중국의 GDP로도 20%나 되는 막대한 거금이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일컫는 중국이 이 정도니 한국의 경기한파가 이 엄동설한에 더욱 추울 것은 자명하다.
우리 자신 외에 불황을 막을 장사는 없다
도대체 알 수 없다. 좀 배웠다는 사람이든 바보천치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돈벼락의 허상에 붙들려 영혼의 눈이 멀어버린 이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이런 어리석은 이들의 허덕임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우쳐 줄 영민한 경제학자의 출현은 불가능하단 말인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은 이래, 지구를 다녀간 똑똑한 경제학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중 알프레드 마셜이 19세기 말에 쓴 ‘경제학 원론’은 아직도 경제학도들이 바이블로 여긴다.
그의 애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 또한 불후의 명저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라는 책으로 기존 경제학에 반기를 드는 엄청난 혁명을 일으켰다. 1929년 10월 미국증시의 살인적인 폭락에서 시작된 대공황 이후 신음하던 미국을 살려내기 위해 정부의 공공투자를 가속화 시킨 뉴딜정책은 케인즈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후 ‘시장이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간다. 고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재앙만 초래할 뿐이다.’라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은 이제 덮어놓고 믿기 곤란한 이론이 되어버렸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 통제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이상한 이론(?)이 오히려 경제정책 실험을 통해 현실에 더욱 부합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스승의 이론에 반기를 들었던 버릇없는 케인즈라고 해서 그의 이론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케인즈 이론의 허점들은 이후 그의 똑똑한 추종자 또는 천재적인 반대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 보완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아직도 걸핏하면 출몰하는 불황이라는 괴물의 엄습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경제학 이론은 없다.
불황의 요인은 복잡하지만 무엇보다도 투기열풍에 의한 과잉공급의 책임이 크다. 그렇기에 불황을 막기 위해서는 투기를 막아야 하지만 완벽한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저 사람들에게 ‘배고프더라도 저 떡은 제발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될 말인가.
지금 이순간도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 될 수 없는 높은 가격으로 거래 되는 주식을 사지 못해 안달할 뿐만 아니라, 겨우 방 두개짜리 서울 강남의 16평 아파트가 10억원 가까운 ‘미친가격’에 거래 되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매입할 수 없는 가난한 자기 처지를 한탄한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자 살아있는 경제계 전설인 앨런 그린스펀의 말처럼 '이성을 잃은 이상과열'이 술 취하지 않은 인간사회에 보편적으로 팽배해 있다.
그 정신나간 사회의 일원 중엔 냉철한 과학적 지혜로 중무장한 뉴턴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사고자 하는 주식가격에 대한 배당이익금의 비교, 그리고 욕심나는 부동산의 가격에 비해 삶의 안락과 편리성에 대한 비교 등엔 관심조차 없다. 그들은 당장 오르는 가격만을 믿고 서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 아우성 칠 뿐이다.
일반인보다 더 사악한 사회책임자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들이 이런 현상을 노골적으로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과도한 빚을 내서라도 자사주식을 대량 매입함으로서 자기회사 주식값을 끌어올리고 부실한 장부는 분식회계(회계부정)로 처리한다. 이런 식으로 미국의 저명한 기업인 월트 디즈니社의 CEO는 개인적으로 최근 수년간 연 8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기열풍 후엔 반듯이 가격폭락이 이어지며, 주주들에게(또는 부동산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꾸만 잊어버린다. 2001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엔론社의 악명높은 부정회계 사건은 탐욕에 눈이 먼 우리네 인간이 얼마만큼 어리석은 자승자박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엔론은 그 이전 해까지 ‘포천’지에 의해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선정 된 모범적 기업으로 알려졌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불황은 과도한 탐욕이 불러일으키는 소산물
성급한 탐욕에 눈 먼 현대인들은 이토록 상식의 정원을 떠나 돈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투자회사를 경영하며 평생 부와 명성을 쌓아온 워렌 버핏은 지속적인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너무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별 거 없어요.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가진 상식, 그저 그 길로 가는 겁니다.”
이성 잃고 헤매던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어처구니없게도 성자의 가르침으로 들려온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가 돈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결코 호모 이코노믹스(합리적 경제인)다운 처사가 아니다. 돈은 곧 물질이자 생활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을 향한 과도한 집단적 탐욕이다. 그것의 한계치를 넘어서면 이 사회는 혹독한 불황에 휩싸인다.
그렇기에 불황이란 사회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전가하는 자기 자신의 탐욕에 대한 죗값일 뿐만 아니라, 투기와 동 떨어진 곳에서 모범적으로 사는 사람에게까지도 함께 지옥문을 노크하도록 강요한다. 타락한 호모 이코노믹스의 비뚤어진 얼굴은 이렇게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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