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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찬성팀은 "개인의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폐쇄가 최후수단이 되어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 발언하는 폐쇄 찬성팀 폐쇄 찬성팀은 "개인의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폐쇄가 최후수단이 되어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 홍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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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인하대학교 하이테크 대강당에서 언론정보학과의 시사토론학회인 '숭어리'의 여섯 번째 학회제가 열렸다.

학회제란 토론학회를 포함한 언론정보학과 내 광고학회, 잡지학회, 영상학회가 마련하는 자리로, 매년 이맘때쯤 타학회 선후배와 동기들에게 지난 1년간 어떻게 활동했는지 보여주는 큰 행사다.

토론학회 숭어리는 토론학회인 만큼 손님들을 모셔놓고 라이브로 토론을 진행해야 했다. 생방송이기 때문일까. 학회원 모두가 긴장한 듯했다.

학회제가 시작하기 전, 13학번 새내기 허아무개(20)씨는 "토론하는 모습을 학회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토론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하며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신아무개(20)씨는 "지금까지 공부하고 연습한 모든 것을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선보일 생각을 하니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라고 밝혔다.

토론학회에서 이번에 다룬 학회제 토론 주제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는 폐쇄되어야 하는가'였다. 지난해부터 인터넷상은 물론 언론들에도 많이 회자됐던 뜨거운 감자인 '일베'의 존폐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 전반으로 논의를 확장시켜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취지였다. 준비한 오프닝 영상이 끝나고 토론팀이 무대 위로 올라가 자리에 착석했다.

"폐쇄 찬성팀 부터 모두발언 시작해주세요."

토론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폐쇄 찬성팀과 반대팀은 각자의 주장을 서로에게, 관객들에게 피력했다.

첫 발언 기회는 폐쇄 찬성팀이 가져갔다. 찬성팀은 먼저 "일간베스트가 지난 1년간 방문자수가 4배 이상 증가, 동시접속자수는 3만 명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커뮤니티 사이트로 발전했다"면서 "규모가 커진 만큼 그 안에서 사용되는 과격한 용어나 일부 잘못된 사상들이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근거로 한국인터넷윤리위원회가 경기도 내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일베 사이트에 게재된 잘못된 역사를 사실로 믿는 청소년들이 33.71% 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폐쇄에 반대하는 상대 팀은 "일베에 퍼져있는 그들만의 사상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그들이 왜 그런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 제대로 된 원인을 분석해보지도 않은 채 무작정 폐쇄를 운운하는 것은 꼬리자르기식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베는 어떠한 '원인'이 아닌 '결과'일 수도 있으며 그 원인은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예를들어 지역감정과 같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찬성팀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마치 일베에만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다"라며 "그렇게 따지면 모든 사회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 탓으로 돌릴 위험도 있지 않느냐,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불이 왜 떨어졌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반대측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반대팀은 "만약 일베를 폐쇄한다면 정부가 하게 될 텐데, 정부가 나서서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조치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나"라며 "정부가 권력을 이용해 사이트를 폐쇄한다면 이후에도 정치인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이트는 모조리 폐쇄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필요하다"고 공격했다.

반대측의 이러한 주장에 찬성팀은 "일베라는 사이트와 타 사이트 간의 차별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베라는 사이트가 폐쇄되는 데에는 정부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닌 충분히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할 수 있다"면서 "여성비하, 역사왜곡, 외국인노동자 차별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더는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반대측이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의 판단까지 흐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폐쇄 반대팀은 "인터넷 사이트 폐쇄는 아예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정부권력에 의해 인터넷 문화가 휘둘리게 되는 효시가 될 수도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 발언하는 폐쇄 반대팀. 폐쇄 반대팀은 "인터넷 사이트 폐쇄는 아예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정부권력에 의해 인터넷 문화가 휘둘리게 되는 효시가 될 수도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 홍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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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팀의 주장이 어느 정도 오가고 난 뒤 사회자는 "이쯤에서 논객분들에게 마이크를 건네보겠다"며 논객들과 토론자들 사이의 질의응답시간을 마련했다.

마이크를 잡은 언론정보학과 학생회장 이아무개(25)씨는 폐쇄 찬성팀에게 "일베에서 문제시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일베 뿐만이 아닌 다른 사이트에서도 일어났었던 적이 많다, 그럼 다른 사이트도 다 폐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찬성팀은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 되는 사건이나 글들은 어느 사이트에나 올라올 수 있다, 하물며 인하대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문제되는 글은 충분히 올라올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 글이 올라왔을 때의 회원들 반응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그 안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지와 없는지를 보면 왜 일베만 폐쇄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한치의 양보도 없었던 토론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양측은 최종발언을 통해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먼저 최종발언을 한 폐쇄 반대팀은 "개개인의 처벌을 통해 조금씩 규제를 해나가는 것과 사이트를 폐쇄함으로써 아예 입을 막아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처사다"라며 "사이트를 폐쇄를 통해 일베 회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선례가 될 수 있으므로 폐쇄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폐쇄 찬성팀은 "일베라는 사이트와 다른 사이트의 분명한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도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들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면서 "우리는 사이트 폐쇄가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조치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 실현이라는 명목 하에 더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들의 주장을 매듭지었다.

이번 학회제에서는 토론이 끝나고 관객들의 투표를 통해 승패를 가르는 흥미진진한 이벤트도 진행됐다. 관객들은 입장할 때 받은 색이 다른 피켓을 진행자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팀의 색을 들었다. 승리의 영광은 근소한 차이로 폐쇄 찬성팀이 차지하게 됐다. 찬성팀은 승리의 기쁨과 함께 토론을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환희를 가감없이 표현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학회제가 끝나고 손에 땀을 쥐는 토론을 보여준 찬성팀 13학번 이아무개(20)씨에게 학회제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처음엔 딱딱하게만 느껴졌지만 내가 토론을 직접 해보고, 또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다는 게 정말 재밌고 뜻깊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토론을 통해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내년 일곱 번째 학회제 도 잘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개최해야겠다."

언론정보학과 시사토론학회의 여섯 번째 학회제는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잘 마무리 되었으며 학회제를 준비한 학회원들 모두 다음 학회제를 준비할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것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꼭 참여하고 싶은 재밌는 학회제였다.



태그:#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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