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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공해①] 인공조명에 가려진 별을 찾아서이미경(50·부산 수영구 망미동)씨는 지금 살고 있는 건물 1층에 살던 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꺼도 창문으로 밝은 빛이 들어와 대낮처럼 집안을 비췄다. 길 건너편 집의 대문 옆 가로등이 문제였다.
두꺼운 블라인드나 커튼도 설치해봤지만 빛을 완전히 차단하진 못했다. 무려 11년 동안이나 이씨 가족들은 편안한 수면을 방해받아야 했다. 같은 건물 2층으로 이사하면서 빛이 도달하는 강도는 약해졌지만 아직도 '깜깜한 밤'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주변에서 민원을 넣어보라고도 했지만 어디에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고 말했다.
인공조명 피해가 유독 심각한 한국우리나라의 빛 공해는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6월 과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스(Science Advances)는 이탈리아 독일 등 6개국 공동연구팀이 분석한 '세계 빛 공해 실태'를 실었다. 연구팀은 지구관측 위성이 밤 시간동안 촬영한 지구사진을 토대로 빛 공해 실태를 분석했는데, 한국의 경우 빛 공해 때문에 맨눈으로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수 없는 지역이 전 국토의 89.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요20개국(G20) 중 이탈리아(90.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외에 싱가포르, 카타르 등이 빛 공해에 노출된 면적이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좁은 국토 면적에 비해 많은 인구와 빠른 산업화 속도를 기록한 나라들이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도심 속 빛 공해는 가로등이나 간판 같은 인공조명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실시한 빛 공해 환경영향조사 결과 주거지역에 설치된 인공조명 중 40% 이상이 허용기준인 10룩스(lx)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광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광주광역시의 한 주택가에 사는 박모(56) 씨의 빛 공해 피해도 현재진행형이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빛이 수년째 숙면을 방해하고 있다.
창문 바로 옆에 떡하니 서있는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이 내뿜는 빛이 너무 강해 커튼을 쳐도 무용지물이다. 박씨는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인데 불이 너무 밝아 한번 깨면 잠이 잘 안 온다"며 "여름밤에 바람까지 막아버리는 두꺼운 암막커튼을 살 생각까지는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빛 공해 피해 민원은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수면에 방해가 된다거나 빛으로 인한 눈부심으로 생활에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2012년 전국적으로 2859건, 2013년 3210건, 2014년 3850건으로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는 서울지역에서만 2014년 1571건, 지난해에는 1216건의 민원이 제기돼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식물 생장과 생태계 변화에도 나쁜 영향도시뿐 아니라 농촌도 빛 공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들깨 농사를 짓는 최모(52·전북 순창군 복흥면)씨는 지난해 농사에서 큰 피해를 봤다. 순창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들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라 수확의 기대를 높였지만 막상 9월 중순이 됐을 때 그가 키운 들깨는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했다.
가로등이 있는 마을 길 바로 옆 밭에 모종을 심은 게 화근이었다. 밤에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작물들은 인공조명 때문에 야간에까지 빛에 노출될 경우 밤낮 없는 광합성 작용의 영향으로 열매가 늦게, 부실하게 여문다. 그는 얼마 못 가 밭을 갈아엎었다.
빛 공해는 대표적으로 농작물 수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2011년 5월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6~10lx 밝기의 빛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벼는 보통 16%, 가장 심한 들깨는 94%까지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로등 바로 아래서 측정한 밝기가 30~50lx인 것을 감안하면 인공조명으로 인한 작물 피해는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 빛 공해 피해가 늘어나면서 지난해에는 인공조명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보상 사례가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의왕역 부근인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에서 콩과 들깨를 재배하는 농민이 '철도역 야간조명 때문에 농작물의 수확량이 감소했다'며 피해배상을 요구했고, 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배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생태계 교란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도 빛 공해가 지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간에 우는 매미다. 매미 울음소리는 도로변 자동차 주행소음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할 정도로 심한 생활소음원이다. 주로 낮 시간에 활동하는 매미가 한밤중에도 우는 이유는 빛 공해 때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야간에 매미가 우는 지점(조도 153~212lx)은 가로등과 같은 인공조명으로 인해 매미가 울지 않는 지점(52.7~123lx)에 비해 지나치게 밝은 것으로 나타났다.
곤충생태교육연구소 한영식 소장은 "주광성 곤충인 매미는 원래는 밤에 울지 않아야 정상"이라며 "빛 공해가 소음 공해로까지 이어지고 결국 인간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암 등 질병으로도 이어지는 야간 조명사람이 지속적으로 빛에 노출되면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 2014년 고려대 의과대 빛공해 연구팀이 발표한 '빛 공해에 의한 건강 영향 연구결과'에 따르면, 빛 공해는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에 직접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빛이 있는 방에서 수면을 취한 경우 상대적으로 얕은 수면 상태인 '렘수면'이 길게 이어졌다.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눈 피로도 검사에서도 충혈 및 안구건조 증상이 나타났다.
이은일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빛 공해에 노출되는 경우 잠을 자는 동안 분비돼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억제된다"며 "전체적인 신체 피로도가 쌓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암 발병률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야간에 교대로 근무하는 작업자들의 경우 암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다. 이스라엘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서는 야간에 과도한 빛에 노출된 지역의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유방암 발생 비율이 73% 높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노르웨이 간호사 4만9402명을 17년 동안 추적 조사한 미국 학회지의 연구 결과, 야간근무를 연속으로 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유방암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 5년 이상 근무자 중에서 야간근무를 4일 연달아 한 사람은 유방암 발생 위험이 다른 사람보다 1.4배 높았는데, 6일 연달아 야간근무를 한 경우엔 1.8배로 치솟았다.
빛 공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조명을 관리하는 주체들이 인공조명을 적절한 수준으로 줄이거나, 행정기관이 조도 기준을 명시한 관련법의 집행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2013년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이 제정돼 일정 수준 이상의 인공조명 설치를 금지하는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하도록 했다. 이를 어길 때 최고 1천만 원의 과태료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 관리구역을 지정하고 관련 조례를 만들어야 할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법이 유명무실화한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관리구역을 지정한 서울 외에 다른 지자체들은 인력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행을 미루고 있다.
한국환경공단 생활환경팀 소현수 연구원은 "빛 공해는 24시간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조명을 부적절하거나 과도하게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라며 "색온도가 높아 더 많은 피로감을 주는 LED 가로등이 늘어나는 만큼, 설치 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다른 인공조명들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