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곳에 왔는가? 연어떼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올해의 첫 연어떼가 강물로 거슬로 올라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어떼가 햇살에 반짝이며 춤추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이 우리를 찾아올 것을 짐작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따사로움을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류시화 엮음)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중에서 -
두 해 전, 강원도 홍천 생동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금강을 찾아가 아픈 현장을 직접 목도했다. 4대강 공사 마무리 후, 빠르게 훼손되어 버린 강 생태계를 확인하고 그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많은 생명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강물이 멈추고 나니 녹조가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녹조라떼라는 말까지 붙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공사 과정과 이후 변화를 생생하게 알리고 전하며 금강을 지키기 위해 애써오신 김종술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도 듣고 함께 마음 모으는 시간을 가졌었다.
올해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를 함께 하며 많은 길벗들과 전국을 다니며 아픔을 어루만지고 새로운 소망을 키우고 있다. 이번 6월에는 다시 금강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땅 생명들의 원통함을 풀어주소서' 해원(解冤) 기도에 사람과 자연, 말 못하는 생명들 사이 경중이 있을 수 없다.
금강에는 3개의 보가 설치되었는데 그 중, 세종보와 공주보는 작년 11월, 올해 3월부터 수문을 완전 개방했고, 환경부에서는 이 상태로 올해 말까지 수질 개선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종술 기자를 만나기에 앞서 상류 쪽 세종보를 먼저 들렀다. 언론에서도 수문 개방에 따른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보았던 터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강 중앙에 제법 큰 모래톱이 드러났고, 찰랑찰랑한 물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멀리 철새 몇 마리가 먹이를 찾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문 개방에 따른 지역민들의 민원과, 모래톱을 조금만 파 내려가도 뻘층이 드러나고 그 안에는 여전히 실지렁이가 나오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금강의 진짜 모습, 지금 금강의 상황을 더 알고 싶었고, 앞으로 바뀔 금강의 모습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을지 이런 저런 질문 품고 서둘러 공주보로 갔다.
공주보 다리 밑에서 오랜만에 김종술 기자를 만났다. 이전보다 더 그을린 얼굴이지만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진솔한 말솜씨는 그대로이다. 한 해에 300일 넘게 강에 나오고 100일은 강에서 야영한다는 '금강 지킴이'. 수문이 열리고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는 공주보를 배경으로 서 계시니 더욱 반가웠다. "늘 한결 같이 금강 곁에 있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가 절로 나왔다.
먼저 그 동안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김 기자도 사실 다른 지역 출신에 서울에서 살다가 지인이 공주의 신문사를 추천해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내려온 공주에서의 첫날, 금강변에 펼쳐진 반짝이는 모래사장과 멀리 뛰어가는 고라니 뒷모습을 보며 금강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 비단강에 보가 생긴 뒤, 2012년에 물고기 떼죽음이 일어났다. 하루 종일 자루에 쓸어 담으면 다음 날 또 그만큼 죽은 물고기가 떠올랐고, 심지어 130cm가 넘는 메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지역 어르신들은 씨메기가 죽은 거라며 금강 메기가 모두 마르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고 들었다. 모두 60만 마리 이상이 죽었지만, 정부에서는 5만 마리 정도로 축소 발표했다. 원인도 불명이지만 4대강 사업과 관련 없다는 단서만 달았다고 했다.
"금강은 폭이 300m 정도로 넓기는 하지만, 강폭이 150m 라면 양쪽 모래톱이 150m인, 찰랑이는 여울이 많은 얕은 강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보를 쌓고 준설로 바닥을 파서 7m 수심을 만들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갑자기 해발 6~7000m 고지에 데려다 놓고 살라고 한 셈입니다. 물고기들에게도 적응하기 어려운 급격한 환경 변화였을 것입니다."금강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2013년에는 녹조가 강을 뒤덮고 2014년에는 큰빗이끼벌레가 등장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수질 4급수 지표종인 붉은 깔따구, 실지렁이가 확인되었다. 작년 수문 개방 직전까지 실지렁이 개체수는 계속 상승하였고, 유기물이 바닥에 침전하면서 뻘층이 두꺼워지고, 부패로 인한 메탄 가스가 기포 방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물 속에 산소가 계속 줄어들어 작년 여름에도 물고기들이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수문 개방을 하고 금강은 위급한 상황을 넘긴 상태이다. 전에는 아예 유속 측정 불가였는데, 이제는 그래도 약하지만 조금씩 물살이 흐르는 것으로 나오고 있고, 강가에 모래들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하지만 안심하며 낙관하기에도, 지금 상황을 가지고 개방의 효과 여부를 평가하기에도 이르다. 물이 빠지면서 시궁창 같은 뻘이 드러났고, 여기저기 사체들과 쓰레기들도 많이 보였다.
김 기자는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피해로 강 생태계 파괴보다도 지역 공동체가 깨진 것이라고 꼽았다. 형님, 아우 하던 사이의 마을 주민들은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보상금을 받아 갑자가 큰 돈을 쥔 사람들, 터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엉키면서 폭언과 주먹다짐이 일상인 마을도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수문 개방에 따른 주민 항의가 있어서 정부가 보상 방침을 세운다는 소문에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즉, 목소리를 내면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지역 공동체 뿐이 아니다. 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뭇생명들을 외면하고 자기 잇속만 채운 결과이다.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돈벌이와 자기 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이 만든 4대강 사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 감수성 부재'를 상징하는 듯 하다.
강을 따라 걸으며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더 들었다. 풀이 자란 곳은 작년까지 물이 차 있다가 빠진 곳이다. 유기물을 잔뜩 품은 뻘층은 풀들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라 여기저기 풀이 무성한 곳이 많았다. 강가에는 녹조류 사체들도 보였고,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은 조개, 게들도 있었다. 그나마 올 봄에 비가 자주 내려서 많이 깨끗해진 편이라고 했다. 모래가 있는 곳도 있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뻘층이 있고 조금만 바닥을 퍼내면 이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강바닥을 한 움큼 떠올렸을 뿐이지만, 시궁창 냄새와 함께 꿈틀대는 실지렁이를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돌멩이를 던지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뻘에 박혀 버렸다. 자칫 발이 빠져 나오지 못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저 앞쪽에, 꼬마물떼새 어미가 '삑, 삑'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나타난 많은 사람들에 적잖이 놀랐으리라. 보가 열리고 나니 새들이 돌아왔고, 갈대밭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 김 기자가 먼저 발견하고, 혹 사람들에게 상할 까봐 알을 13일간 지켰다고 한다. 며칠 전 부화했는데, 이름이 '희망이' 이다. 금강이 살아나는 희망, 강이 다시 시민들 품으로 돌아오는 희망, 금강을 둥지 삼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회복하는 희망을 담았다.
새는 가장 먼저 환경 변화를 알리는 상징이다. 날갯짓으로 자유롭게 더 좋은 잠잘 곳, 먹이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기에 새가 돌아온다는 것은 자연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당장 글감이 되기에는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의 발견이 더 반갑겠지만, 살펴본 금강은 그런 거창한 사건을 마주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강이 가진 본래의 생명력대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차근차근 회복해가기를, 긴 호흡으로 기다려 주어야 함을 깨달았다.
누구보다 금강에 애정을 갖고 있는 분이기에,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강은 모두의 것이지만, 무엇보다 금강에서 살고 있는 지역민들의 뜻을 존중해야 합니다. 수문을 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동안 줄기차게 강조해 온 것이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좋다고 하더라도, 공사할 때처럼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면 안됩니다. 수문 개방이나 보 철거 문제도 최소한 공청회나 주민 설명회를 거치면서 지역의 뜻을 물어야 하고, 생각이 다르다면 설득하며 풀어 나가야 합니다.""저는 어젯밤, 잠을 설쳤습니다. 강을 찾아 온다는 것에 마음이 너무 설렜습니다. 돌아가셔서 주변 분들에게 강의 모습을 알려 주고 계속 관심과 사랑을 가져 주세요. 지금 비록 더럽고 냄새 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찾아 주지 않으면 강은 다시 개발되고 파괴될 지 모릅니다. 제2의 4대강 사업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함께 마음 모아 알려주세요. "김 기자가 처음 금강을 보았다는 고마나루 앞 모래밭에는 이미 풀들이 많이 자라나 있었다. 과연 강은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준설하느라 너무 많은 모래를 빼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깊은 상처를 입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세종보 상류 합강을 보면 모래가 조금씩 유입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에 치유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보는 뻘도 바로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뻘 위에 모래가 쌓이고 자갈이 쌓이고 하는데 강이 스스로 자정 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4대강 공사는 빠르게 밀어붙이지 않았습니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강이 회복하기를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희망하기로는 3~4년이면 강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잔잔한 금강 강물에 인간의 욕심과 오만이 겹쳐 보였다. 강을 끼고 사는 사람들의 신음과는 무관하게 무작정 대규모 사업을 주도한 당사자들은 물론, 강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그저 집값 떨어질까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 강에 사는 생명들의 신음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자비한 모습들까지.
과연 강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을까? 그렇게 지켜내기에는 너무 작고 약한 것은 아닐까? 4대강 공사는 한마디로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그렇다면 그 강을 회복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한 인내와 기다림이다. 자연은 스스로를 살리는 힘을 가졌지만, 가쁜 호흡이 아니라, 없는 듯, 보이지 않는 우직한 걸음이다.
이번 순례에 참여한 밝은누리움터 학생들 중에는 금강을 두 번째 찾은 이들도 있었다. 김 기자도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격려도 해주었다.
"꾸준히 다시 보러 찾아오는 것 자체가 관심이고 그게 사랑입니다. 더 자라서 비슷한 문제들이 벌어졌을 때, 단 하나라도 주체적으로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게 최고의 교육이고 진짜 운동입니다. 운동은 잠깐 반짝 하는 것이 아니고 짧은 눈으로 승패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 세대에는 더 큰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수상공연장 앞에 모여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들고 함께 손을 맞잡았다. 인간의 죄와 오만 때문에 스러져간 많은 생명들을 기리고, 하루빨리 모랫빛 반짝이는 비단강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은 생명평화의 마음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로 퍼져 가기를 꿈꾸게 된다. 흐린 물줄기 만나도 피하지 않고 뒤엉켜 바다로 흘러가는 맑은 강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