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오후 9시 전후로 잠을 잔다. 우리 부부는 그 시간만 기다린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샤워를 마친 아이는 몸을 말리며 나에게 묻는다.
"아빠! 뽀로로 다운로드 했어?"
"아니! 아빠 공부해야 돼. 밤에 다운로드 해 놓을 테니 내일 엄마하고 봐."
"싫어, 공부하지 마! 왜 공부해?"
내일 모레면 5살인 아이에게 그동안 벽면을 까맣게 장식했던 TV는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엊그제부터 하루 한 편씩, <한글이 야호>와 <뽀롱뽀롱 뽀로로>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아이는 또 보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이제 재워야 할 시간. 우리의 소중한 자유 시간을 위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왜 다운로드 안 했냐는 물음에 난 공부해야 한다는 말로 얼버무렸고, 아이는 보고 싶은 마음에 공부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왜 공부하냐고 물었다.
아직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아이가 공부가 뭔지 알기나 할까? 하고 웃으며 내 방으로 향하던 중 '왜 공부해?'라고 물었던 아이의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공부라기보다 쓰고 있는 글을 정리하거나 개인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그렇게 묻는 말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부! 사실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그리고 '지겹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학교(옛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울고불고 매달렸던 쓰라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 당시, 쉬는 시간 10분도 아까워 공부만 했던 나의 모습은 전교, 아니 전국 일등감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애절하게 잘 하고 싶었던 공부라는 놈은 끝내 나를 외면하였고, 고3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나서는 화장실로 향해 몰래 눈물까지 흘려야만 했다. 그만큼 나는 공부를 잘하고, 또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턱걸이로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간의 고초로 상한 내 마음을 위로하고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놀 거리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현실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입학 때부터 학점관리를 해야만 했고 자격증 취득하기 위해 먼지 쌓일 틈 없이 책을 펼쳐야 했다.
졸업 후 백수기간을 거쳐 원하는 곳에 취업하게 된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공부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그런 면에서 회사는 나에게 구세주였다.
물론 회사에서도 진급을 위해 공부를 해야 했지만, 난 그런 공부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일하고 번 돈으로 사고 싶었던 물건도 사고,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젊은 인생을 즐기기에 바빴다.
그렇게 공부는 학생 때나 열심히 하면 되는 거라 생각했던 철없는 내가 어느덧 중년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의 결혼과 아이도 생기며 세상을 어렴풋이 알게 될 때쯤, 불현듯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철학자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두려웠다.
고민 끝에 다시 책을 펼쳤다.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학생 때 봤던 영어나 자격증 책이 아닌 오로지 내 인생. 내 인생을 위한 책.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책으로만 인생을 배울 수는 없다. 많은 사람과 부딪혀 고뇌하고 갈등하는 그 속에서 '세상은 이렇고 인생은 이렇구나'라는 걸 체감할 수 있고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사회, 직장,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무시하고 뛰어넘기엔 너무나 벅찬 상대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도 괜찮을 만큼의 용기가 있다면 모를까?
우리는 타인의 생각과 경험이 녹아든 책을 읽고,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삶의 한 단면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다가올 자신의 삶에 대해 가만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세상엔 배워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공부 또한 잊지 말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손 아프도록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