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는 분명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훼방꾼이다.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지니, 당연히 사실도 아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가짜뉴스는 민주주의 덕에 없어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버팀목이고, 언론자유가 자양분이다.
시민의 입장에서 가짜뉴스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고민했다(
관련기사: 가짜뉴스 잡겠다던 정부․국회…바뀐 것이 없다 http://omn.kr/1jjml) 그러다가 문득 원조로 불리는 사설 정보지, 이른바 '지라시'의 오늘이 궁금했다. 숱한 세월동안 경찰이 나서고, 검찰이 나서고, 심지어 국가정보원까지 나섰는데 '지라시'는 영화 속 괴수 '고질라' 만큼 불사신이다.
오늘도 '열일' 하는 사설 정보지
우선, 어떤 종류가 있는지 수집해봤다. 사회관계망 단체 대화방에 도움을 부탁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정말 '쏟아졌다'. 사설 정보지는 오늘도 성업 중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내준 사설 정보지는 N정보지였다. 일주일에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세 번 만들어 뿌려진다니 역시 회전율도 최고였다.
그 다음으로는 I정보지, W정보지, J정보지 등이 있었다. 제호 없이 텍스트로만 도는 정보지도 있었고, 한 지인은 C정보지라는 부동산 전문 정보지도 보내줬다.
일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는 지인들에게는 몇 개의 정보지를 보는지 물었다.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4~5개를 받아보는 이도 있었다. 구독료를 내느냐는 질문도 해봤다. 회사 차원에서 매월 정보지 당 30~50만 원 사이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회관계망에 누군가 올려주면 공유하는 수준이었다.
취재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정보지에도 '급'이 있었다. 제호 없이 그냥 주간동향 정도로 불리며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두 번 발행되는 한 정보지는 이 업계의 '바이블'로 불렸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다른 정보지들이 그대로 베낀다고 했다. 돈 안 내고 유통하면 문제 삼기 위해 이 업체가 추적한다는 귀띔도 있었다.
정보지는 가짜뉴스 온상(?)
정보지가 모진 탄압(?)에도 오랜 기간 살아남은 경쟁력은 재미다. 재미라고 썼지만 사실 범죄였다. 정부 차원에서 가장 대규모로 오랫동안 단속을 벌였던 지난 2005년의 첫 시작은 '연예계 X파일' 사건이었다. 확인되지도, 확인할 수도 없는 고위 관료, 정치인,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얽히고설켜 '막장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정부가 워낙 강하게 나오니 한동안 잠잠해졌다가 2008년 배우 최진실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또 다시 못된 습성이 튀어나와 철퇴를 맞았다. 그 뒤 시민들의 정보지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졌다.
그렇다면 정보지는 지금도 가짜뉴스의 온상일까.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교묘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구속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잇따라 재판을 받게 되자 정보지를 통해 확산된 음모론이 있다. 이른바 '안-이-박-김'론이다.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김경수(또는 김부겸) 등 여권의 잠재적 대선후보자들이 차례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누군가는 술자리의 수다거리일지 모르지만 본인들에게는 심각한 이미지 훼손이 될 수 있다.
정보지들은 이재명 지사에게 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자 이제는 "음모론에 제동이 걸렸다"고 떠든다. 이래저래 무책임하다.
정보지 검증하다 얻은 단서
이런 정보지는 누가 만들어 유통하는 것일까. 이번에 정보지를 모으면서 예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을 발견했다. 일부는 정기간행물로 등록했다는 것을 강조한 부분이다.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부는 2005년 집중 단속 때 정책적으로 '합법화 작전'을 썼다.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N정보지를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 등록 현황과 대조해 봤다. 서울에 등록돼 있는 이름이 꽤 알려진 인터넷신문이었다. 청와대는 물론 국회와 정부부처에 소속 기자들이 출입하고 있으니 어떻게 정보가 수집됐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불법은 어찌 피하겠지만 엄밀히 말해 정보지 자체가 등록돼 있는 것은 아니다. 맨 앞에 정기간행물 등록 사실을 공지하는데 제호와 편집 발행인 모두 인터넷신문이지 정보지 자체가 아니다. 일종의 눈가리고 아웅식의 편법이다.
또 다른 I정보지 역시 똑같았다. 서울에 등록돼 있는 한 인터넷신문이었다. 이 회사 조직도를 들여다보니 취재팀과 별도로 아예 가십팀이 있었다.
그렇다면 제호가 없는 정보지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앞서 정보지 업계의 '바이블'로 불린다는 정보지를 찬찬히 검증해 봤다. 단서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유통된 다른 정보지와 달리 이 정보지에만 실린 인사 관련 꼭지가 있었다. 한 경제신문이 단독 보도했던 내용이다. 부처 관련 꼭지에서도 출입기자가 아니라면 들을 수 없는 공무원들 얘기가 포함돼 있었다. 해당 경제신문이 정보지의 배후 내지 정보지를 발행한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무늬만 언론사' 난립 상황, 시스템 개선 필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매년 연말 언론산업 전 분야를 조사한 뒤 <언론연감>을 발행한다. 가장 최근 조사된 2017년도 인터넷신문사 현황에 따르면 모두 2796개사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에 정기간행물로 등록된 인터넷신문은 2017년 기준 6885개사로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와 큰 차이가 있다.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수 천 개의 언론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부 허가가 필요했던 정기간행물은 참여정부에서 등록제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언론자유는 분명 넓어지고, 커졌다. 그러나 올바른 정책도 점검이 필요하고, 느슨한 틈이 발견되면 빨리 보완해야 한다. 이건 정부의 몫이다.
언론계 또한 언론산업 전반이 어렵다고 이처럼 취재로 얻은 정보를 재가공해 유가 정보지 형태로 팔고, 아울러 정식 기사로 쓰지 못하는 '카더라식' 얘기를 시중에 유포하는 행위를 계속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행정부와 입법부 등에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