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보수정당 광주 광역의원 배출"
지난 6·1지방선거 결과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바로 광주광역시의회에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이 보수정당 깃발을 꽂았다는 뉴스였습니다. 27년이라는 시간은 보수정당이 다시 광주 정치에 들어오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광주시민 중에는 선거 과정에서 과거를 사죄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좀 다를까'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주는 또다시 과거 논란으로 분노하고 있습니다. 연이어 도래하는 색깔론과 이념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대관절 지금이 몇 년도인지 달력을 다시 들춰보게 됩니다. 보수정부 집권 후 반년이 지나 1년을 향하는 지금, 기대는 벌써 실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김광동 신임 위원장은 2년 전 논문에서 "광주 사건에서 2000명이 학살됐다는 허위 주장은 용납되고, 광주사건에 북한이 개입돼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의혹에 대해서는 역사왜곡이거나 관련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5·18북한군 개입설을 "가능성 있는 의혹"으로 보고 있는 것인데, 그야말로 황당한 인식입니다.
진화위는 아픈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갈등의 기억을 역사적 진실규명을 통해 통합된 나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취지를 가진 기구입니다. 그런데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을 왜곡하는 인사가 그 기구의 수장으로 임명되다니요. 광주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뜨거워지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이 취소됐습니다. 우리 정부가 제동을 걸어 취소된 겁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심사해 추천한 인사가 취소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조치는 일본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는 광주의 큰 어른입니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30여 년에 걸친 소송전을 해오셨고, 피해자 권리회복 문제에도 앞장선 활동가이십니다. 광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활동의 구심점이기도 합니다.
정부의 외면을 받은 할머니를 시민들이 앞장서 위로합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할머니께 '우리들의 인권상'을 드렸습니다. 정부가 취소한 훈장을 대신한 시민들의 뜨거운 마음입니다. 지난해 인권위로부터 받았던 훈장을 반납하겠다는 단체까지 등장합니다. 광주는 다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절망'이 피어오르고
대통령의 "종북 주사파와 협치 불가" 발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색깔론, 양금덕 할머니 서훈 논란, 진화위 위원장의 5·18 역사 인식 논란으로 이어지는 현 정부 상황을 두고 언론은 '신색깔론', '우경화' 등의 우려를 나타냅니다.
광주는 진실 왜곡과 역사 탄압에 민감합니다.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시민, 그리고 그 경험을 가진 지역이라는 이유로 한 데 묶여 이념의 희생양이 돼야 했던 지난날의 트라우마 영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북한군 개입설의 숙주인 지만원씨를 국회에 초청해 공청회를 갖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온 국회의원들의 '5·18 망언'이 광주시민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이후 보수정당은 정권 창출을 위해 5·18묘역 참배 등으로 대표되는 '서진 정책', '좌클릭'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새 정부 출범 반년 만에 다시 색깔론으로 산산조각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 인식을 드러낼 때마다 '미래로 향하자'고 말합니다. 일당 일색이었던 광주 정치가 27년 만에 보수정당을 소환한 것도 이제는 과거사를 잘 정리하고 민생을 챙겨달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광주 정치에 또다시 역사, 이념, 분노, 투쟁 등의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변화는 없고, 미래로 향하긴커녕 도돌이표만 반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부의 '약속'과 광주시민의 '열망'이 한 때 '희망'이라는 단어로 수렴됐지만, 이제 그사이에 '절망'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광주시민들은 속지 않을 것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얻기 위한 '클릭'을 다시 한다 해도,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로 달라진 모습을 '당장' 보여주지 않는다면, 공허한 말들의 반복 속에 광주는 또 힘들었던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