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나의 작은돌은 쓰임이 적지만, 이들이 모이면 거대한 벽이 된다. 한줄기 억새의 흔들림은 연약하지만, 군집의 억새밭은 큰 파도를 만들어 낸다. 한 줌의 물은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지만, 이들이 모이면 넓은 하늘도 담는다."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설계한 박노욱, 박현정 건축가 글 가운데

지난 4월 15일,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새로 문을 연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아래 기념관)에 지난 9일 다녀왔다.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제암리 주민 23명과 고주리 독립운동가 일가 6명을 제암리교회당 안으로 집결하게 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총을 쏴 학살한 뒤 교회당을 불태운 악명 높은 학살사건의 현장 근처에 세워졌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입구는 작은돌들을 깔고 또한 이 돌들로 벽을 쌓아 놓았다. 돌멩이 하나는 미천하지만, 이들이 모이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개념으로 건축가들은 작은돌들을 곳곳에 이용했다고 한다.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입구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입구는 작은돌들을 깔고 또한 이 돌들로 벽을 쌓아 놓았다. 돌멩이 하나는 미천하지만, 이들이 모이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개념으로 건축가들은 작은돌들을 곳곳에 이용했다고 한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입구에서 들어오면 바로 이 골목이 나오는데 이 길은 들어가고 나갈 때 걸어가야 하는 길이며, 바로 앞에 학살현장이었던 제암리교회 첨탑이 보인다.
▲ 제암리교회 첨탑이 보이는 입구 입구에서 들어오면 바로 이 골목이 나오는데 이 길은 들어가고 나갈 때 걸어가야 하는 길이며, 바로 앞에 학살현장이었던 제암리교회 첨탑이 보인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독립기념관이라고 하면 흔히 육중한 건물이 먼저 떠오르지만,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건물 자체가 지역의 자연과 어우러진 형태로 설계되어 있고 지하에 있어 외관상 위압적이지 않아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장은 지상이 아니라 모두 지하에 설계되어 있었고 입구에서부터 전시장에 이르는 긴 통로는 작은돌들을 모아 벽을 이루게 설계되어 있었다.

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들이 말한 '하나의 작은돌들이 거대한 벽'을 이룬 통로를 따라 전시장으로 향하면서 나는 순간, 전동례 할머니가 생각났다. 전동례 할머니는 일제가 저지른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때 남편 안진순(1896.1.4.~1919.4.15, 1991년 애국장 추서) 지사를 잃었는데 할머니 나이 겨우 스물세 살이었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교회 학살 만행을 목격한 전동례 할머니는 '살 타는 냄새가 밤새 바람에 실려 왔던 그날'의 처절하고도 참혹했던 상황을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1991년, 뿌리깊은나무)이라는 책에 남기고 94살 되던 1992년 11월 8일, 영면에 들었다. 여기서 '두렁바위'란 한자 지명인 제암리(堤岩里) 의 우리말 '두렁바위'를 말한다.
 
전시장 모습 1. 사진은 제암리교회 학살 뒤 불탄 동네 모습과 망연자실한 유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 불탄 제암리 모습 전시장 모습 1. 사진은 제암리교회 학살 뒤 불탄 동네 모습과 망연자실한 유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관련사진보기

 
남편들을 제암리교회 학살로 잃은 김순이(남편 안상용 지사), 전동례 할머니(남편 안진순 지사)(왼쪽부터) 1978년 제암리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순국탑 앞에서
▲ 김순이와 전동례 남편들을 제암리교회 학살로 잃은 김순이(남편 안상용 지사), 전동례 할머니(남편 안진순 지사)(왼쪽부터) 1978년 제암리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순국탑 앞에서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관련사진보기

"일본 중위가 4월 15일 오후에 제암리 마을에 들어와 유시와 훈계를 한다고 기독교도들을 모두 교회에 집합시켰다. 교인 32명이 교회당에 모였으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때 그 중위의 명령이 내려지자, 병사들이 예배당을 포위하고 창문과 출입문을 닫고는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예배당에 있던 한 부인은 갓난아이를 창밖으로 밀어내고 병사들에게 '나는 죽여도 좋지만, 이 아이만은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했으나 병사들은 내민 어린아이의 머리를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교회 안에서 모두 죽거나 다쳐 쓰러지자, 병사들은 교회에 불을 질렀다."

전동례 할머니 남편 안진순 지사도 교회당 안에서 처참히 숨졌다. 

기념관 전시장은 전동례 할머니가 겪었던 아픔이 뚝뚝 묻어나는 학살 현장 사진과 동영상으로 꾸민 대형화면 등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는 구성으로 상설전시실·기획전시실·어린이전시실 등 세 개의 공간으로 이뤄졌다. 이를 통해 화성시 독립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장 모습 3. 당시 교회 위치와 주재소 등을 디지털영상으로 알기 쉽게 꾸며놓았다.
▲ 전시장 모습 3 전시장 모습 3. 당시 교회 위치와 주재소 등을 디지털영상으로 알기 쉽게 꾸며놓았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전시장 모습 3. 당시 교회 위치와 주재소 등을 디지털영상으로 알기 쉽게 꾸며놓았다.
▲ 전시장 모습 3 전시장 모습 3. 당시 교회 위치와 주재소 등을 디지털영상으로 알기 쉽게 꾸며놓았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전시장 모습 4. 화성시 출신으로 홋카이도(북해도) 등 비행장 건설, 탄광, 도로건설 현장 등에 강제징용된 분들의 증언과 사진들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상 갈무리. 사진은 김용학(1924년 송산면 출신) 씨 제공
▲ 전시장 모습 4.  전시장 모습 4. 화성시 출신으로 홋카이도(북해도) 등 비행장 건설, 탄광, 도로건설 현장 등에 강제징용된 분들의 증언과 사진들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상 갈무리. 사진은 김용학(1924년 송산면 출신) 씨 제공
ⓒ 김용학

관련사진보기

  
기념관의 주요 전시장인 상설전시장에는 국권 침탈과 화성 사람들, 3·1만세운동과 화성 사람들의 저항, 3·1만세운동 이후 화성의 독립운동, 민족말살정책과 강제동원의 현실, 화성의 독립운동가 등을 알리는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기획전시실에서는 '어느 독립운동가의 삶과 일상'이란 주제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기증해 준 유물들을 전시 중이다.

"상상할 수 없는 잔학한 일을 저지른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분이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한국명 석호필) 박사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당시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유골을 수습하면서 학살 현장의 증거들을 사진으로 찍어 《꺼지지 않는 불꽃(Unquenchable Fire)》이라는 보고서를 써서 전 세계에 타전하여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던 분이지요."

방한 중에 기념관을 찾은 배국희(미국 LA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 이사장의 말이다. 배 이사장은 기념관 바로 앞에 있는 제암리 교회 경내에 있는 스코필드 박사 동상을 보고 감격해 마지않았다. 바로 자신이 중학생일 무렵 선교사였던 스코필드 박사에게 영어공부를 했다면서 동상으로 만나니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고 동상 곁을 떠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스코필드 박사에게 영어를 배웠다는 배국희(미국 LA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 이사장이 이날 화성시독립기념관을 함께 방문했으며 경내에는 제암리학살을 전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동상이 있다.
▲ 배국희와 스코필드 중학교 때 스코필드 박사에게 영어를 배웠다는 배국희(미국 LA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 이사장이 이날 화성시독립기념관을 함께 방문했으며 경내에는 제암리학살을 전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동상이 있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스코필드 동상 뒤 벽면에는 당시 참상 소식을 듣고 달려온 스코필드 박사와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일제 순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스코필드 박사와 순사 스코필드 동상 뒤 벽면에는 당시 참상 소식을 듣고 달려온 스코필드 박사와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일제 순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관련사진보기

  
제암리 3·1만세운동 순국유적지 시설인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었던 곳에 들어서 있으며 대지 2만 1322㎡(6,450평)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1층 기념관과 건축 연면적 5310㎡(1606평), 경기도 내 가장 큰 규모로 역사문화공원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아울러 인근에는 제암리교회와 학살로 순국한 선열들의 무덤, 스코필드 동상 등이 있어 가족 단위로 찾아가길 권할 만한 3·1만세운동 순국유적지다.

한편, 2018년 6월, 기자는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도쿄 한복판에서 <3·1만세운동 100주년 전시>를 위해 자료 수집차 방한한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인 일본고려박물관 회원들을 제암리교회 현장에 안내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아직 화성시독립기념관 설립 소식을 듣지 못하던 때로 교회 안에 작은 전시 공간밖에 없어 매우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기자는 2018년 6월 18일, 일본 고려박물관 회원들을 화성시 제암리교회 안에 있는 작은 규모의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을 안내했다.
▲ 고려박물관 회원 기자는 2018년 6월 18일, 일본 고려박물관 회원들을 화성시 제암리교회 안에 있는 작은 규모의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을 안내했다.
ⓒ 이윤옥

관련사진보기

  
이제 제암리 학살 현장에 번듯한 기념관이 들어섰으니, 앞으로 이곳이 화성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또 하나의 독립운동 성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기념관을 나왔다.

화성시독립기념관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고주로 34
* 031-5189-1950
* 휴관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일 때에는 그다음 날)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제암리, #스코필드, #독립운동, #배국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