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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나 지속가능성에 관한 한 나는 비관적 낙관주의자를 자처해 왔다. 위기의 기후변화, 파괴 일로의 생태계, 시한폭탄만 같은 핵발전소,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 등을 생각하면 사태는 매우 비관적으로 다가오지만,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낙관성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는 마음에서다.

문제는 갈수록 내 마음이 '낙관'보다는 '비관'으로, '사과나무'를 심는 행동보다는 냉소적 관망 쪽으로 흘러가곤 한다는 사실이다.

환경경제학자(경성대)이자 소셜 디자이너인 김해창의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는 이 같은 문제적 나를 잠에서 깨우는 기상나팔과도 같았다는 걸 먼저 고백해 두자. 저자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한 자신의 비관적 사태 인식이 오히려 '대안'과 실천적 방도를 모색·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2050년, 아니 빠르면 2030년까지 우리 사회의 대전환이 없으면 지구호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지구환경과 도시의 삶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반생명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도시 만들기'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4쪽)

이 '어떻게'와 '무엇을'에 대한 상상력이자 해답이며 저자의 '대안'의 핵심 개념은 어메니티(Amenity)다. 어메니티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그의 다양한 방식의 설명부터 들어보자.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종합적인 쾌적함'.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경제발전, 지역공동체발전, 생태발전 등 3개 과정의 최적 균형을 찾는 지표'. '살맛나는 세상'의 기반이 되는 정신적·물질적 환경'. (5쪽)

언뜻 들으면 일종의 만병통치약 같은 것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바로 그러하기에 어메니티는 저자가 주장하는 바,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 정책전략이자 개인적 삶의 대안'이 된다. 

세계의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운동의 여러 모습들
 

'대안'이 어떤 이상적인 상을 제시하는데만 머문다면 대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 터다. 저자는 '대안'의 모델로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었고 또 되고 있는, '어메니티 도시'들을 소개하는 데 먼저 공력을 들인다. (제2장 : 선례에 의한 발전-국내외 어메니티운동)

이 장에서 저자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하여 구미 각국(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미국, 브라질)의 도시에서 일어난 어메니티 운동, 즉 녹색-생태 도시 만들기, 슬로시티 등을 두루 둘러본 다음 특히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상당히 긴 분량 (제2절, 제3절)을 할애해 다루고 있다.
 
독일 뮌헨의 엥리셔가르텐 백만평 공원. 그린시티의 한 상징이다.
 독일 뮌헨의 엥리셔가르텐 백만평 공원. 그린시티의 한 상징이다.
ⓒ 김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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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몇 도시의 경우를 일별해 보자.

"프랑스의 어메니티는 기후위기시대 도시경영자를 통해 도시계획에 반영되고 있다. (…) 2014년 파리 시장에 취임한 이달고는 도시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 2015부터 2020년까지 '자전거수도 파리'를 만들겠다고 선언, 시의회의 만장일치를 얻어냈다. 2016년부터 '숨 쉬는 파리(Paris Respire)'를 제안(…) 특정 지역에는 모든 자동차의 진입을 금지하고 대신 그날은 대중교통 및 자전거 무료 제공 계획을 도입했다 (…) 그 뒤 파리 시내에 디젤모터 운행 금지를 제안했으며 자전거도로 2,020km 확보를 목표로 제시했다."(64-65쪽)

"40% 이상의 녹지 또는 개방 수역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 중 하나'인 런던에는 2000여 종의 꽃피는 현화 식물이 자라고 템스강에 120여 종의 물고기가 발견되며, 60종 이상의 새 둥지와 47종의 나비, 1,173종의 나방 및 270종 이상의 거미 (....) 런던에는 38개의 특별과학관심지역(SSSI), 76개의 국립자연보호구역 및 186개의 지역자연보호구역이 있다. 런던 시민들은 새와 여우와 같은 야생동물이 도시를 공유하는 데도 익숙하다고 한다." (66-67쪽)

"독일의 도시 가운데 뮌헨은 푸르름이 가득한 녹색도시를 자랑한다. 그중 100만평공원인 엥리셔가르텐은 그린시티의 상징이기도 하다. (71쪽) 독일 환경수도이자 '태양의 도시'로 잘 알려진 프라이부르크는 또한 대표적인 녹색도시이다." (75쪽)


미국은 펜실베이니아주 남서부의 피츠버그시를 어메니티 도시의 한 모델로 제시된다. 피츠버그시는 '민관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수십년에 걸친 '도시 르네상스' 운동을 벌여 녹색문화도시 재창조에 성공한 사례로 높이 평가받는 도시'로서 '공해도시에서 창조도시·바이오도시로 거듭난 대표적 도시 중 하나'인 것이다. (89쪽)

또 저자가 브라질의 '창조도시' 쿠리치바를 소개한 것은 이 도시가 '지속가능한 도시교통시스템'을 구축하고 '하천의 친환경적 관리와 공원·녹지'를 놀라운 방식으로 창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공동체형 문화도시의 전형'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95쪽)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어메니티에 대한 활발한 교육과 지자체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다.

"어메니티 수업은 요코하마시 시모노가야 초등학교의 '운동장 논농사'에서도 볼 수 있다. 시모노가야초등학교는 운동장 한쪽에 논이 있다. 학교 곳곳에 작은 연못을 조성하고 산책로를 만들고, 교내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느끼게 하는 학교이다. (…) 일반 학교가 아닌 폐교를 활용해 환경교육을 하는 곳도 있다. 바로 도교 스미다구의 빗물자료관(雨水資料館)이다. 빗물이용조례를 제정한 스미다구가 2001년 폐교를 수리해 만든 환경교육관이다." (107-108쪽)

"도쿄도 도시마구는 일본 최초로(1993) 어메니티조례를 지닌 구이다. '도시마구 지구별 정비방침'에서 '도시마구 어메니티 형성기본계획'을 거쳐 어메니티 형성조례로 발전됐다. (110쪽) (…)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의 기본이 녹음이 우거진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 사례를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녹화협정'제도가 돋보인다." (115쪽)


부산 수영강과 온천천의 생태 변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내심 가장 놀란 것은 우리나라 어메니티 운동의 역사와 실천 사례가 조목조목 소개된 제2장 제3절에서다. 내가 사는 부산의, 옛적 '똥물' 흐르던 수영강과 온천천이 언제부턴가 맑아지고 철새들이 찾아오는 강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이 어메니티 사상과 운동의 열매라는 사실을 나는 여태 생각지 못한 것이다.

"부산은 1994년 우리나라 최초로 〈부산어메니티플랜〉을 수립했다. 1995년에는 〈수영강어메니티플랜〉으로 수영강변 지하차도화 시민제안이 나왔다. 1998년에는 '온천천어메니티'로 한수 이남 최초의 자연형 하천 만들기가 추진돼 콘크리트를 걷어냈다. 1999년부터는 '어메니티 100만평공원'이 범시민운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144쪽)
 
우리나라 슬로시티 중 하나인 하동의 차밭 풍경
 우리나라 슬로시티 중 하나인 하동의 차밭 풍경
ⓒ 김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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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부산을 시작으로 충남 서천군, '창의도시' 진주, 대구 삼덕동, 통영 동피랑, 하동 등에서 이루어진 어메니티 운동의 결과물을 두루 소개한 다음 어메니티 운동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자연·문화유산의 '사회적 소유'를 지향하는 운동)과 한국 '슬로시티' 운동(멀리 오래갈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역화, 지역문화와 지역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 운동)의 현황과 그 성과도 빼놓지 않는다(180쪽~).

이쯤하면 사람들이 어메니티 운동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적극 동참할 것도 같기도 한데 저자에겐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다. 그는 도시 어메니티 운동이 우리에게 정신적-물질적 혜택도 주는 것임을, 그것의 '경제적 가치 평가'를 통해 입증까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20개 국립공원의 경제적 가치는 약 103조 4천억원이고 낙동강 하구가 가진 순수한 자연환경의 가치만 해도 연간 총 4조4,500억 원이며 우리나라 산림의 연간 공익기능가치는 2003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8.2%인 58조 8,813억 원이라는 것(제3장 어메니티 가치 평가), 한마디로 개발을 내세워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지만 않아도 그 경제적 가치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늘상 이야기하는 경제는 무엇인가? 이제는 경제라고 하면 '녹색경제'를 머리에 넣어야 할 때이다. 경제의 녹색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무엇보다 친환경적 인식, 즉 녹색마인드가 중요하다. 성장지상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인식 말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크게 인식과 생활양식, 그리고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283쪽)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 심는 마음 

즉 우리에겐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이제부터라도 우리나라의 모든 대도시는 '축소지향의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에 민관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근대의 상징이다. 영광인 동시에 재앙이라는 뜻도 된다. 근대의 영광은 기후위기로 대변되는 지구의 임박한 종말이라는 재앙을 예고하는 데까지 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첫머리부터 힘주어 밝힌 '자연과 공생을 도모하면서 인간이 존중되고 공동체가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실천적 방안으로서 '살맛나는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제안은 자본주의적 개발 논리에 익숙한 정책 당국자와 보통 시민들을 과연 설득해 낼 수 있을까? 새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덮으며 분명해진 건 하나 있다. 환경운동가이자 핵발전소 문제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 김해창은 오늘의 현실에 대해 비관도 낙관도 하지않는다는 것, 그러면서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누구보다도 힘써 심을 줄 아는 지식인이자 실천인이라는 사실이다. 

오늘 위기의 지구를 살아가야 하는 동시대인으로서 그의 간절한 호소인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리기를 기대해 본다.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김해창, 미세움, 2014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김해창, 미세움, 2014
ⓒ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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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김해창 (지은이), 미세움(2024)


태그:#낙동강하구, #슬로시티, #생태도시, #어메니티운동, #습지와새들의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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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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