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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한국지엠 부평공장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포진해 있는 생산공장 곳곳엔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는 곳이 있다. 불법파견이라는 경계선을 넘나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외로운 섬에서 노동하는 이들은 원청인 한국지엠의 직원도 아니다. 이들은 1차 하도급업체의 정규직 직원도 아니다. 1차 도급업체의 하청을 받아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2차 도급업체 노동자들이다.
 
프럼트 범퍼를 손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 김정식 조합원 프럼트 범퍼를 손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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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한국지엠 부평 조립공장 프런트범퍼 서열 작업장에서 노동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인천지부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 김정식(46) 조합원과 직원들을 만났다.

한국지엠 그 곳엔 원청, 1차, 2차, 3차 다단계 도급업체가 존재한다

"이곳은 프런트범퍼를 처음으로 조립해서 조립공장으로 보내는 작업장입니다. 조립 속도는 생산공장의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1분에 한 대 분량을 조립하고 있습니다. 프런트범퍼 서열 작업장은 1차 도급업체인 남선알루미늄과 크레아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 후반조 교대로 일하는 노동자 160여 명은 2차 도급업체인 더원텍(주) 소속입니다. 1차 도급업체 직원들은 제품의 불량이 나거나 장비의 이상이 있을 때 현장을 찾아와서 점검하곤 합니다."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바닥에 범퍼를 놓고 조립하고 있다.
▲ 김정식 조합원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바닥에 범퍼를 놓고 조립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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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업장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가 일하는 작업장은 공간이 많이 협소합니다. 어쩔 땐 범퍼를 바닥에 놓고 조립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한국지엠 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같이 설비 자동화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요. 비좁은 공간에서 부품이동이나 작업할 때 손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늘 작업자끼리 부딪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바짝 써야 합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범퍼 이동용 대차를 작업장 밖으로 이동할 때는 스크린도어를 일일이 수동으로 개폐하고 있었다.

열악한 작업 환경과 근무 조건에서 일하는 2차 도급업체 노동자들
 
수동으로 출입문 도어를 열고 있다.
▲ 김정식 조합원 수동으로 출입문 도어를 열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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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여기는 크게 뚫린 작업장 출입구가 다섯 군데나 있어요. 천정을 보시면, 공장 내 조립공장과 다르게 중앙냉방시스템도 없습니다. 아마도 2012년경 불법파견 문제가 공론화되자 정규직 노동자와 도급노동자의 혼재 작업을 분리하기 위해서 그 당시 작업장과 연결된 콘베어벨트 라인을 철거하면서 아예 함께 분리된 것 같아요."
 
작업장은 다섯 군데 개방된 문이 존재한다.
▲ 프런트범퍼 서열 작업장 작업장은 다섯 군데 개방된 문이 존재한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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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현장에는 5월의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곳은 다섯 군데 대형 출입문으로 인해 작업장 안과 밖이 근본적으로 차단될 수 없는 구조였다. 곳곳에 설치된 선풍기와 스탠드형 에어컨 2대로 다가올 한여름을 더위를 이겨내며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선풍기로 냉방시스템을 대신하고 있다.
▲ 프런트범퍼 서열 작업장 선풍기로 냉방시스템을 대신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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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작업하면서 한겨울의 추위도, 한여름의 더위도 힘들지만, 봄철이 다가오면 더 힘듭니다. 작업장 밖에 있는 범퍼를 들여오면 꽃가루와 먼지들이 많이 쌓여 있어요. 범퍼 작업의 특수성 상 손으로 툭툭 치면서 조립하고 손을 들어서 옮겨야 하는데, 업체는 마스크 한 장 지급하지도 않습니다."

그에 말에는 인간적인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한국지엠과 인생을 함께 해온 사내 도급업체 노동자들

"제가요. 라노스와 씨에로 차량을 생산할 때 신성패커드라는 업체에서 스티어링기어를 군대 가기 전까지 조립했습니다. 2005년에는 대일실업 업체에 입사해서 8년 동안 도어라인 직도급으로 일했습니다. 2012년부터는 2차 도급업체인 더원텍(주)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림잡아 17년 이상을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잔업 특근을 최대한 많이 해도 실수령액이 약 370만 원 밖에 안됩니다. 아내와 다섯 명의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게 정말 힘듭니다"

한탄 섞인 그의 말이 끝나자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계기를 넌지시 물었다.

"2015년 8월에 지회에 직접 찾아가서 가입했습니다. 그 당시 조합원이 60여 명 정도 됐습니다. 조합에 가입하기 전에는 조장까지 달고 열심히 일했어요. 어느 날부터 간 회사가 감독자들을 자주 바꾸고 직원들 간의 문제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2016년에 혼자서 처음으로 인원 충원, 성과급, 명절휴가비를 요구하며 머리띠 두르고 등 벽보를 부착하고 투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업체 책임자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너희는 싼 부품을 만드니 임금을 적게 받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용납이 안 됐습니다"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에서 조직부장과 부지회장까지 맡았던 그의 풍채와 말에서 한국지엠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요.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저출산 대책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해야 하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다자녀 가족들에게 맘 편히 살 수 있도록 현실적인 주거 안정과 복지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다자녀는 말로만 애국자입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다자녀 대책 없어요."

놀이공원에 온 가족이 같이 갔는데 입장료가 50만 원이 나와서 되돌아 왔다는 그의 말에 자식 키우는 같은 부모 입장에서 마음이 짠했다.

못다한 정규직의 꿈을 위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것
 
범퍼를 조립하고 있다.
▲ 김정식 조합원 범퍼를 조립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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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의 정규직 노동자는 아니지만, 그는 한국지엠의 아픔과 성장의 과정에서 함께 해 왔다. 최근에 1차 도급업체 직원이었던 500여 명 정도가 한국지엠을 상대로 한 불법파견 소송을 개별적으로 취하하고 한국지엠의 정규직 직원이 됐다. 하지만 김정식 조합원은 2차 도급업체라는 이유로, 불법파견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이유로 한국지엠 측으로부터 입사서류를 내라는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도 1차 도급업체 직원이었던 일부 조합원들은 소 취하 입사에 반대하며 여전히 불법파견 인정과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서 보령을 거쳐 부모님과 함께 인천에 정착한 김정식 조합원. 요즘 자녀들의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첫째인 고3 아들, 둘째인 중2 딸, 막내아들까지. 다섯 명의 자녀가 말 못 할 아픔 하나씩을 가지고 앞으로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 아내와 다섯 자녀가 옹기종기 모여 살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에 그는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보란 듯이 비정규직지회의 깃발을 지키며, 정규직 노동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지엠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한국지엠 공장 안엔 저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을 비롯한 2차, 3차 도급업체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기본적으로 먹는 것, 입는 것, 쉬는 것, 근무환경만이라도 차별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우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한국지엠의 성장을 위해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한국지엠은 2023년도 영업이익만 1조3506억 원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이러한 성과는 2013년 이후 최대 영업이익 실적이며, 2022년도 영업이익 대비 4.88배에 달한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은 올 한해 생산 계획인 26만6천대 생산을 위해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쉴 틈 없이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내년에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태그:#한국지엠, #김정식, #비정규직, #불법파견, #도급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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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대외정책부장 김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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