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간 <시사저널> 기자들이 직장폐쇄에 맞서 농성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 뒤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였고, 최근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연이어 나오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고 있다. 조상기 기자는 <매일노동뉴스> 기자이며 전국언론노조 <매일노동뉴스> 분회장이다. <편집자주>
▲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기 전,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솔직히 말해 나는 <시사저널> 애독자가 아니다. 정기구독을 한 적도 없고, 가판대에서 사 본 적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지나가다가 눈에 띄면 들고 쓰윽 훑어보는 정도다. 물론 관심 있는 기사는 가끔 정독하기도 하지만 '독자'라고 불리기에는 낯부끄럽다.

그런 <시사저널>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보다.

열린우리당이 <시사저널> 진상조사위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한나라당은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느냐고 다그치는 민주노동당의 논평도 봤다. 한 학자가 얼떨결에 '짝퉁' <시사저널>과 인터뷰했다가 곤란을 겪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런저런 소식들이 들리면서, 나도 차츰 <시사저널> 사태를 어느 정도 알아갔다. <시사저널> 노조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자본으로부터 편집권을 지키겠다며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가 불법성이 짙은 '대체인력'까지 투입해서 '짝퉁' <시사저널>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그러던 지난 26일 아침이었다.

회의 참석을 위해 바쁘게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던 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는 '<중앙일보> 사람'이라고 했던 것도 같고, '중앙 뭐시기 관계자'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대뜸 내 신원을 묻더니 누구누구의 소개로 전화했다며 <시사저널>에 싣고자 하니 글을 하나 써 달라고 말했다. 계단을 정신없이 오르다 전화를 받은 나는 그가 내뱉은 <시사저널>이라는 말이 그냥 평범한 주간지 <00저널>로 들렸다. 잠시 다른 주간지들과 혼동했던 것이다.

불량 독자도 '진짜' <시사저널>을 보고 싶다

@BRI@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지금 글, 그러니까 원고를 써 달라고 청탁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민주노총이 선거를 한다는데요, 선거 결과와 향후 전망에 대해 좀 써주셨으면 해서 전화했습니다."

뭐 그다지 어려운 주제도 아니었다. 내가 거의 매일 밥 먹고 사는 이야기를 써 달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였다.

'잠시만…, 그러니까 이 사람이 방금 무슨 저널이라고 했는데. 아, <시사저널>이라고 했지.' 후다닥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시사저널>에 제 글을 싣겠다고 하셨죠?" 그는 답했다. "예, <시사저널> 이번 호에 실으려 합니다." 나는 대뜸 말했다. "그건 곤란합니다. 안 되겠네요."

그 사람은 "왜요?"라고 다시 물었고, 난 "<시사저널>이라면서요? 뻔히 알면서 뭘 '왜요'하고 물어요?"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는 끈질겼다. "정 그러시면 가명으로 쓰시면 안 될까요? 가명으로 내보낼게요."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나는 <매일노동뉴스>는 물론 그 어느 매체에 글을 쓸 때에도 단 한 번도 '가명'을 쓴 적이 없다. 또 아무리 외부 청탁 기고라고 하지만 사실을 전하는 기사인데 거기에다 '가명'을 쓰겠다니…. 아무리 급해도 정말 이건 아니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말 하지 마세요. 저는 안 씁니다."

그래도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뭔가 궁금하거나 불만이 많은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매일노동뉴스>와 그 사건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항의인지, 궁금증 표출인지 모를 목소리 톤으로 그는 물었다.

"어허, 왜 상관이 없어요?" 이 말을 하면서 내 머리는 복잡했다. '불량 독자'인 내가 과연 이 상황에서 <매일노동뉴스>와 <시사저널> 사이에 어떤 '상관'을 맺어줄까.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은 이랬다.

"우리 <매일노동뉴스>에도 노조가 있는데요, 민주노총 언론노조 소속입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

결국 그는 의외로 쉽게 단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지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언론노조'라는 말을 듣고 단념한 것일까? 아니면 "절대 안 쓰겠다"고 우기니까, 결국 체념할 것일까. 아무튼 그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해방감'을 맛봤다.

그가 날 이상한 놈으로 취급했는지, 아니면 혼자서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는지 알 길도 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 기사를 다른 기사로 때웠는지, 다른 사람에게 청탁해서 성공했는지 어떤지도 관심 없다.

다만 이건 분명하게 안다. 지금 나오는 <시사저널>은 가짜다. 그리고 진짜는, 그래서는 안 될 이들이 덜컥 삼켜버렸다. 비록 불량 독자이지만 나는 가끔 진짜 <시사저널>을 보고 싶다. 건투를 빈다.

▲ 사측 주도로 제작된 일명 '짝퉁 <시사저널>'이 발행된 후, 잡지 표지를 내걸어 놓던 회사 앞 게시판이 텅 비어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태그:#시사저널, #짝퉁 시사저널, #시사저널 진상조사위, #불량 독자, #매일노동뉴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