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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들어 딸아이가 부쩍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일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유치원에 다녀와서도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으면 칭얼대지 않고 조용히 색종이, 풀 따위를 가지고 만들기 작업에 열중합니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작업에 몰입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심취한 것이 병원 놀이입니다. 같이 놀아줄 형제가 없는 탓에 재미가 덜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노는 법을 찾은 듯합니다. 놀이의 파트너는 항상 커다란 곰인형이 담당하지요.

▲ 환자는 아파 죽어간다는데 그 옆에서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며 함박웃음을 웃는 참 별난 의사입니다.
ⓒ 이효연
대개 아이들이 의사놀이나 소꿉놀이를 한다고 하면 너나 없이 서로 의사나 엄마를 하겠다고 다투기 마련인데 안나와 보곰이 사이에서는 싸움이 필요 없이 역할 분담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백이면 백, 안나는 의사나 엄마 역할이고 말없이 누워 있는 환자나 아기 역할은 언제나 저 곰인형(이름:보곰이) 몫입니다.

드라마 <하얀거탑>을 보면서부터 의사놀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이후 "그렇게 하면 장준혁 선생님한테 가서 수술 받아야 한다"라고 하면 떼를 쓰다가도 고분고분 이를 닦으러 간다거나, 그 좋아하는 초콜릿도 먹지 않을 정도이니 드라마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긴 합니다.

▲ '쯧쯧, 너도 참 독특한 주인 만나서 여러가지로 고생이 많구나.'
ⓒ 이효연
며칠 전 딸아이가 색종이와 테이프를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저렇게 곰인형을 가지고 입원실을 꾸며 놓아 저를 웃기더군요. 해 놓은 폼으로 보아 입원실보다는 '중환자실'에 더 가까운 듯합니다.

산소마스크에 링거줄이 주렁주렁…. 배트맨 놀이를 할 때 망또로 둘렀던 보자기는 이번에 환자의 이불로 변신했습니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누워있는 곰인형 표정도 어딘가 힘이 없고 아픈 듯 보이는 것도 같구요.

병원놀이가 시들해지면 이번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합니다. 안나가 한글을 깨치는데 있어서 일등공신 역할을 한 화이트 보드입니다. 만 오천원짜리 화이트 보드와 시장 문구점에서 3천원에 구입한 '가나다 판' 한 장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안나는 한글을 마스터 했습니다. '싸게 먹혔다(?)'며 안나 아빠와 제가 쾌재를 불렀다는 것 아닙니까?

글자에 관심을 가질 때까지 마냥 내버려두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간판이며 책을 보고 하나씩 묻기 시작하면서 흥미를 느끼더니 이후 속도가 붙어 3-4개월만에 저 혼자 한글을 깨치더군요. 아이 교육에 있어서 정말이지 '아이의 관심과 흥미'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늙은 개와 힘이 센 개>
ⓒ 이효연
위 사진은 약 6개월 전, 작년 12월 크리스마스경에 그린 것인데 그 당시는 한글 쓰기가 많이 미숙했지요? 지금은 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안나의 설명으로는 위에 그린 늙은 개는 '짐을 많이 지고 있어서(?)' 늙었답니다. 그리고 너무 짐이 무거워서 발이 아플까봐 검정 신발을 신겨주었다는군요.

▲ May I have this dance?
ⓒ 이효연
역시 같은 시기에 그린 공주와 왕자님입니다. 신데렐라 영어판 DVD를 즐겨보더니만 특히나 저 장면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한동안 저 위 사진의 곰이 덮고 있는 분홍색 보자기를 둘러쓰고 '왕자 놀이'에 얼마나 심취했던지…(안나는 이상하게도 공주보다 '왕자' 역할을 즐겨합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 < 내 뼈다귀 돌리도!>
ⓒ 이효연
이것은 최근에 그린 그림입니다. 연을 띄우는 토끼의 눈과 강아지의 혓바닥, 그리고 뼈다귀의 움직임(?)을 주목해주십시오. 안나의 설명에 따르면 높이 나는 연을 보느라 토끼의 눈동자가 하늘을 향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강아지는 목줄에 묶인 까닭에 뼈다귀에 닿을 듯 말 듯한 위치에서 혀를 날름대며 군침을 삼키고 있대요. 강아지가 앞 발로 뼈다귀를 건드려서 뼈다귀는 데굴데굴….

▲ <각종 동화의 주인공이 다 등장하는 모둠 동화 그림>
ⓒ 이효연
맨 앞 줄에 걸어가는 닭의 얼굴을 보아주세요. "병아리들은 다 앞을 보고 있는데 왜 엄마 닭은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니?" 하고 물어보니 "아기 병아리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서 뒤 돌아본 거야"라고 대답합니다.

아이들과 일상을 같이 하며 그들의 작은 마음을 들여다 보면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무척이나 자주 느낍니다. 아이들은 신이 주신 참 귀한 선물이란 생각도 정말 많이 하게 되구요.

이미 많은 때가 묻어 혼탁해진 눈과 마음을 아이들의 것마냥 깨끗한 것으로 되돌릴 순 없겠지만 '천사들의 놀이터'를 가끔씩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잃었던 순수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푸른 5월 하늘을 쳐다보며 제 딸을 비롯해, 천사의 마음을 가진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저 하얀 도화지와 같은 때묻지 않은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길 기도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효연의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하얀거탑, #이효연, #어린이날, #가정의달, #병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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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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