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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이 앙증맞네.”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노란 꽃은 꼭 오이꽃을 닮아 있다. 그런데 다르다. 연못 안에서 자라고 있으니, 분명 오이는 아니다. 그런데 연꽃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낯설다.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무슨 꽃일까.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지만 공허할 뿐이다.

▲ 어리연
ⓒ 정기상
“어리연꽃이네.”

제일 연장자가 천천히 다가와서 설명해주었다. 이파리도 수련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꽃 또한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연꽃이라고 하니, 선뜻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 어린연꽃이었다. 연못에 듬성듬성 피어 있는 꽃의 노랑이 우주를 물들이고 있었다. 작은 꽃의 힘이라고 할까.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꽃은 넉넉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6월의 햇살을 받으면서 기분 좋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전북 완주군 소재의 대아수목원 연못이다. 맑다고 말할 수 없는 연못의 물에도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 인연을 생각하게 만든다.

▲ 인연
ⓒ 정기상
인연. 세상의 일이란 홀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불가의 가르침이다. 현세의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전생과 내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까닭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뿌리 없이 싹트는 새싹이 없고 꽃을 피워내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진리이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오면 사랑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오는 사랑을 거부하게 되면 인생 자체가 뒤틀리게 된다. 바른 인생을 위해서 피한다고 생각하지만, 순리를 거스르게 되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긋하기 마련이다. 미운 마음도 마찬가지다. 미워하는 마음이 삶에 있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인생
ⓒ 정기상
미워하는 마음도 분명 나의 것의 일부다. 그것을 아니라고 부정한다고 하여 증오심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일어나는 정서를 억제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으로 인해 더욱 더 아픔이 커지는 것이다. 뱀을 피하려 하다가 호랑이 만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미움이 생기면 그대로 발산하면 된다. 그 해결책은 머물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에 빠져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리는 것을 집착이라고 한다. 사랑과 미움은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그것은 지옥의 수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일 뿐이다.

▲ 사랑과 집착
ⓒ 정기상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어리연꽃은 말하고 있다. 오는 사랑 막지 말고 생기는 미움 배척하지 말라고. 일어나는 마음은 인정하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 위에서 한가롭게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꽃을 바라보면서 어리석은 집착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해본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대아수목원(전부 완주군)에서 촬영


태그:#어리연, #대아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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