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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입이 방정인 것 같다. 나는 늘 일복이 많다고 투덜거렸다. "일복 많은 년은 어딜 가도 일할 거리만 생겨"라고 투덜거렸고 하물며 장사가 잘 되지도 않던 식당에 취직했더니 나 출근하는 날부터 배달을 시작해서 할 일이 해도 해도 끊이지 않았다.

남편이 막내라서 일을 많이 하지 않을 줄 알았다. 남편이 막내이니 당연히 나도 여자들 중에 막내라 형님들 하시는 일만 거들어 주면 될 줄 알았는데 결혼 12년만에 시댁 제사상은 내가 다 차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제사 음식을 다 만든 건 아니었다. 남편은 3남 1녀 중의 막내인데 남편과 내가 살림을 차릴 당시, 큰 아주버님은 평화로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었지만 작은 아주버님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을 하신 상태라서 제사 음식을 만들 사람은 큰형님과 나 둘뿐이었다.

그래도 형님과 둘이라서 힘들지 않았고 둘이라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음식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큰 아주버님과 형님이 삐걱거리기 시작하시더니 끝내는 헤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 제삿날이면 결국 나 홀로 외롭게 전을 부치고 홀로 긴 시간 생선을 굽고 탕을 끓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제는 얼굴도 뵙지 못한 시아버지 기일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떡볶이 장사를 나가기 전에 장을 봐서 가게로 가지고 배달을 시킨 후 떡볶이 장사를 하는 사이사이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도라지와 고사리나물도 무친 후, 바로 튀길 수 있게 생선을 손질해 두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떡볶이랑 제사 음식을 같이 만드는 며느리는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니 힘든 것도 잠시 잊은 채 피식 웃음까지 나왔다. 잠시 말도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해 봤다. '시아버님께 내가 만든 떡볶이도 좀 드셔보시라고 상에 올려볼까.'

날씨는 덥고 어제따라 떡볶이를 사가는 손님이 많아 힘들었지만 귀신이 있다면 얼굴도 못 뵌 시아버님 귀신이 보우하사 나를 복 받게 하리라 주문을 외며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가게에서 채 만들지 못한 음식은 장사를 끝낸 후 큰 아주버님댁에 가서 부랴부랴 만들어 제사상을 차렸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다 보니 동태포가 빠진 걸 깜빡했다. 아주버님께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며 그냥 지내자고 하셨다. 돌아가신 시아버님도 아주버님처럼 웃어주실 거라 믿고 그냥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며 절을 하는데 남자만 7명(큰 아주머님과 작은 아주버님은 다 아들만 있다)에 우리 딸 하나가 끼었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데 남자들 바지가 하나같이 엉덩이에 끼어서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오셔서 보셨다면 철없는 며느리를 꾸짖으실까, 아니면 혼자 음식 만드느라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실까?

상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오니 하염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자리에 누워서 주문을 외웠다.

'일복 많아도 좋으니 돈복도 좀 하늘에서 쿵하고 떨어져라.'

어제, 38살의 떡볶이 아줌마의 하루는 그렇게 파김치가 되어 막을 내렸다.

태그:#떡볶이, #제사상, #시아버님기일, #제사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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