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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선의 주요 이슈가 경제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문제가 된 비정규직과 양극화 해법을 두고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인력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을 높여온 기업과 공공부문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이른바 '기업혁명'이라 불리는 이들의 실험과 지속가능성, 한계를 다섯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합니다. [편집자말]
주라성 경장은 탄력근무제 이전 근무에 대해 "죽을 뻔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너무 피곤해 집에 가면 기절했다, 쳇바퀴 같은 삶이었다"며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주라성 경장은 탄력근무제 이전 근무에 대해 "죽을 뻔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너무 피곤해 집에 가면 기절했다, 쳇바퀴 같은 삶이었다"며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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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4시 경기도 광명시 광명4동에 위치한 광명지구대.

한 할머니가 지구대 안으로 들어와 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는 경찰에게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경찰도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답했다. 경찰은 할아버지가 길을 잃었던 모양이라고 귀띔했다. 그 사이 한 취객이 지구대 앞에서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옷을 벗어 던지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경찰들은 그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이 지구대는 광명시 번화가의 치안을 맡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아 신경쓸 일이 많다. 해가 떨어지면 취객들 때문에 더 바빠진다. 경찰들은 "지구대의 야간 근무는 일반 회사의 야간 근무보다 강도가 세다"고 입을 모은다.

안병순 광명지구대 경사는 "몸이 피로하고 그게 쌓이다보니 시민들에게 친절하게 못하게 되는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때도 있었다'. 과거형이다. 안 경사는 이어 "'지금은' 집에서 잘 쉬고 오니까 밝게 시민들을 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지난 4일 기자와 만난 경찰청 혁신기획단의 박창지 경감의 말에 있었다. 박 경감은 말했다.

"경찰은 지난 2005년 3월 뉴패러다임을 도입했다."

경찰이 도입한 뉴패러다임 '탄력근무제'

경찰에서는 뉴패러다임을 '탄력 근무제'라고 부른다. 치안력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근무 강도를 줄이고 교육시간을 늘린  것. 지역의 주야간 치안 수요에 맞춰 인력을 다시 배치하고 근무조도 바꿨다. 현재는 경찰 전체 지구대의 절반이 교대제를 개선했다.

탄력 근무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3조 2교대 24시간 교대제였다. 9일 단위로 주간 3번, 야간 3번, 비번 3번으로 이뤄져 있었다. 경찰의 뉴패러다임 도입 1호인 광명경찰서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너무 혹사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경감 역시 "경찰 특성상 야간 근무 강도가 일반 기업보다 셌다"며 "교육은 더 멀어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범정부적으로 주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터라 경찰도 이에 대응해야 했고, 이같은 상황에서 탄력근무제가 탄생했다.

탄력근무제의 결과는 좋았다. 박 경감은 "전체적으로 직원들의 만족도가 올라갔다"며 "부작용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선택의 결과가 좋아서 경찰청 생활안전국에서 다양한 모델들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명경찰서도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직원들의 근무형태를 3조 2교대에서 4조 2교대로 바꿨다. 실제 현장을 가보기로 했다. 광명경찰서에 닿은 건 8일 오후 2시께였다. 정진만 광명경찰서 생활안정계장에게 탄력근무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지구대로 향했다.

직원들 충분한 휴식 보장하면서도 치안 공백 없어

광명경찰서는 경찰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2005년 3월 '뉴패러다임'을 도입했다. 경찰에서는 이를 '탄력 근무제'라고 부른다.
 광명경찰서는 경찰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2005년 3월 '뉴패러다임'을 도입했다. 경찰에서는 이를 '탄력 근무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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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제 개편 작업을 맞고 있는 주라성 경장과 공보담당 이득한 순경과 함께 지구대를 둘러봤다. 하안지구대로 출발할 때는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가는 도중 차 안에서 주 경장은 3조2교대였던 기존 근무에 대해 "죽을 뻔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광명지구대에서 만났던 안 경사와 같은 고충이다. 밤새 순찰을 하고 지구대를 지켜야했던 현장 경찰관의 목소리는 생생했다.

3조 2교대 시절, 주 경장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이튿날 오전 9시에 퇴근했다. 온전한 하루를 쉬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피곤은 풀리지 않았다. 주 경장은 "너무 피곤해 집에 가면 기절했다, 쳇바퀴 같은 삶이었다"며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안 경사는 "집에 가서 잔 다음에 저녁 먹고 또 잠을 잤다"고 말하기도 했다.

광명경찰서는 2005년 3월 뉴패러다임 도입 이후 5조 2교대를 시행하다가 그해 9월 4조 2교대로 변경돼 지금까지 오고 있다. 현재 근무는 주간-야간-비번-휴무 형태다. 보통 55명인 지구대원 중 지구대장과 관리반 3명을 제외한 50여명이 12~13명씩 4개조로 나눠져 일한다.

안 경사는 "야간 근무 뒤 이틀의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기 때문에 직원들은 당연히 찬성했다"며 탄력근무제 도입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치안 공백이 염려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조당 인원이 기존 17~18명에서 12~13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야간 근무가 힘들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탄력근무제'라는 제도 이름에 담겨있었다. 정진만 광명경찰서 생활안정계장은 "5번 출동하던 게 6~7번 출동하는 수준으로 일의 강도가 세졌다"면서도 "4조 2교대 탄력근무제로 운영의 묘미를 살려냈다"고 밝혔다.

광명경찰서는 주간 또는 야간팀 중 일부(1/5)를 치안수요가 많은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까지의 취약시간대에서 지원 근무하도록 배치했다. 탄력근무제 전에는 치안수요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주간조는 오전 9시, 야간조는 밤 9시에 출근해 비효율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조당 인원이 줄었지만 치안 공백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욕하던 교육'에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교육'으로...

광명경찰서 하안지구대의 모습.
 광명경찰서 하안지구대의 모습.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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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20분, 하안지구대에 도착하니 지구대 앞에는 순찰차가 잔뜩 몰려있었다. 지구대 안에서는 도박·폭력 사건 가담자들과 경찰들이 뒤엉켜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최아무개 하안지구대 경사는 "바쁘긴 하지만 (탄력근무제 때문에) 치안 공백이 없다"며 기자에게 커피를 권했다.

최 경사 역시 탄력근무제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최 경사는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좋다"고 말했다. 등산·낚시 등의 취미 생활도 탄력 근무제 이후에 시작하게 됐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

최 경사는 탄력근무제를 통한 교육에도 만족했다. 교육은 현재 1달에 4시간씩 이뤄지고 있다. 탄력근무제 전에는 20일에 1번 6시간 교육을 했지만 직원들이 조는 시간에 불과했다. 정 계장은 "직원들이 욕만 하다 갔다"고 밝혔다.

최 경사는 "팀끼리 모여 실무교육을 하거나 사회체육센터 등의 외래강사를 초청한다"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 계장은 교육에 대해 "다들 순찰차 타고 나가버리니까 얘기할 시간이 없었는데, 정보교류나 업무하는 데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 시간이 적은 것에 대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정 계장은 "유명무실했던 교육이 의미를 갖게 됐다"며 "경찰관들의 질이 향상됐다"고 밝혔다. "치안공백을 메우고 대국민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맞게 진화하고 있는 뉴패러다임

광명경찰서의 탄력 근무제는 통계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지난 2005년 탄력 근무제 도입이후, 직원들의 94%가 "피로감이 감소했다"고 밝혔고, 99%가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 계장은 또한 "통계수치상 치안여건이나 범죄발생률에 커다란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혁신기획단에 따르면 탄력근무제에 대한 주민 만족도 지수가 100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시행 전보다 3.6점이 상승했다. 2007년 2월 경기 광명서, 서울 송파서 등 당시 11곳의 탄력 근무제 시범지역의 친절도, 신속성 등을 평가한 주민만족도는 81.9점이었고, 시범지역에 탄력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인 2006년 9월 이전에는 78.3점이었다.

탄력근무제의 성공은 과제도 안겨주었다. 정 계장은 "인원이 많고 치안수요가 적당해야 탄력근무제가 도입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인력을 많이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탄력 근무제를 도입한 지구대는 여건에 맞게 탄력근무제가 시행되고 있다. 주 경장이 기자와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뉴패러다임은 경찰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태그:#뉴패러다임, #탄력근무제, #경찰, #광명경찰서, #4조 2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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