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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토
 
  목 주위와 어깨가 왜 이리 가려운지. 빨갛게 부어올라있다. 왜 이러지?

 

 바쉬쉿 온천(Bashisht)에서 만난 영국할머니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동네. 새벽에 가야 깨끗한 온천물을 즐길 수 있다지만 이 꼭두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사방에 경계망을 치고 눈을 번뜩이며 걷는 것은 여간 곤욕이 아니다. 물어물어 가고 싶어도 당최 사람이 보여야 말이지.

 

사원 같은 입구에, 'Bath Timing 5AM To 9 PM'라 쓰여 있다. 이 이른 시각에도 열긴 여는 모양이다. 무료란다. 무료라서 더욱 유명해진 건가? 보아하니 속옷은 입고 들어가야 하는 가보다. 수도꼭지처럼 생긴 구멍에서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고 있다. 욕탕의 크기는 동네 대중목욕탕 정도? 그리 크지 않지만 천연유황온천이라는 점, 그리고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하늘로 구멍이 뚫려있어 새벽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 그런데 냄새는 삭힌 달걀냄새 비슷? 약간의 인내심 끝에 달콤한 행복감! 오랜만에 뜨끈한 물에 몸을 한껏 지지니 기분이 나릇나릇해진다. 노무 좋아!

 

 “이곳 온천 처음이세요?”
 “왠걸요… 이 근방에 일주일째 머물고 있는데, 매일 이곳을 찾습니다. 두 달째 인도 여행하고 있는데요. 사실 저만큼 나이 먹은 영국여성이 혼자 여행하기에 인도만한 곳도 없어요. 경비도 적게 들고. 하지만, 좀 지쳐가고 있을 때 마날리에 오게 되었고요, 이곳 온천을 만났지요. 주변 풍경도 마날리에서 이 근처가 가장 좋은 거 같아요.”
 
 그녀는 초로의 할머니. 대단하시다. 젊어서부터 여행을 좋아하셔서 안 다녀본 곳이 없다고. 주로 혼자 여행을 하셨다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행하는 동안만이라도 자신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였다고. 은퇴 전에 뭘 하셨냐니깐 한 자선단체의 상근 직원으로 계셨는데, 어쩌다보니 매사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자신에게 싫증이 나는 거 같아, 여행을 시작하셨단다.

 

“할머니, 등 밀어드릴까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목욕탕에서는 때를 서로 밀어준답니다.”
“아이구야… 시원타! 거~ 시원하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있는데, 누군가 노크소리. 난희씨가 사과 두 알과 빵을 꺼내놓으며, 잘 잤는지 묻는데, 저런! 그녀도 두 팔뚝과 어깨 등 부분이 온통 뻘겋게 부어올라있다. 담요와 침대를 당장 점검하란다. 손톱만한 벼룩들과 손톱속의 때만한 새끼벼룩들이 바글바글. 화들짝 뒤로 물러나 어안이 벙벙할 밖에.

 

“난희씨 고마워요. 아니였음 오늘밤에도 이 녀석들에게 완전 밥될 뻔했어….”
       
 철 지난 바닷가,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의 삐거덕거리는 계단으로 2층에 올라, 찌찌찍 나무문짝의 고리를 밖으로 잡아당긴 후 고개와 허리를 바짝 숙이고 토굴 기어들어가듯 안으로 들어갔다. 천정이 이렇게 낮고 어두침침한 식당이라니. 한 벽면엔 대형 태극기가 보란 듯이 걸려있고 방석위에 앉도록 되어있는 낡은 긴 나무테이블 두 개, 의자의 에스코트를 받는 4인용 나무 테이블. 헌데 장식용 핑크색의 초는 촛농이 엉겨붙어있고 오랫동안 켜지 않은 듯 모기 한마리가 고스란이 굳은 화석처럼 새겨져있다.

 

  아침햇살이 히말라야의 산등성이를 넘어와 사과과수원으로 내려앉은 지 꽤 된 시각이었는데도 손님이 없다. 앉은뱅이책상 위 컴퓨터 앞에 이곳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인 청년이 아는 체도 않는다. 어제 종이쪽지를 맡겨두면서 인사를 나눈 구면인데. 미리 사간 과자봉지 뜯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만큼 조용해서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부스럭 소리가 내 몸을 기어가는 거 같다. 크래커 몇 개를 내밀며 이곳에서 산악팀(친구 정연이는 산악팀원과 함께 이곳에 오기로 되어있었다)이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될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것으로 이 젊은이는 주인장이 아니라 지나는 여행자로서 장기 투숙하다가 주인은 인도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간 사이 운영을 부탁받아 공짜 투숙과 공짜 식사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눌러 지내고 있는 거였다.

 

  아! 참, 식당에서 일하는 인도인 일꾼. 그는 주인장으로부터 한국음식 강습을 꾸준히 받은 결과 주인장보다 더 김치찌개와 미역국을 잘 끊여 내온단다. 컴퓨터 옆 마루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는데 1층 아래로 통하는 계단으로 이곳에서 불쑥불쑥 불룩한 콧수염 달린 시커먼 얼굴이 올라올 때마다 음식이 가득담긴 식판이 올라오곤 했다. 아무튼 뭔가 열정이 쏙 빠져나가버린 마치 철 지난 바닷가 같은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지금이 여행 시즌 맞아?

 

또 다른 홀로 여행자 이영철씨

 

  점심나절이 다 되가고 네 명의 젊은이들이 테이블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명탐정 코난 만화책 삼매경에 빠질 때까지도 정연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엉엉~무슨 일일까?’


  엉덩이가 따끔거릴 무렵 새로운 젊은이가 허리를 잔뜩 접고 자신의 머리보다 머리만큼 더 올라온 배낭을 맨 체 겨우겨우 들어오는 바람에 잠시 공기가 휘윙. 지루하던 시간에 변화라면 변화. 그는 이영철씨로 레에서 내려와 오늘 오후 맥간으로 갈 거라 했다. 심심하던 차에 서로 이야기상대로 간택된 모양인데….

 

“저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여정이시네요.”
“네… 그 가운데 교차점에서 만난 거네요. 하하… 그럼, 맥간 이야기 좀 해주세요. 어떠셨어요? 헉! 벌써 과거형이 되었네요… 어쨌냐면요… 정말 보람찬 즐건 여행이었죠… 풍경과 사람들…

 

배낭 속에서 자그마한 사과를 한 가득 꺼내 먹어보라 건네준다. 이곳사람들은 가지치기를 하질 않고 생기는 데로 두기 때문에 씨알을 굵게 상등품으로 끌어올려 비싸 가격에 거래하는 장삿속이 없단다. 몰래 서리한 거라고… 단물이 제법 배어있다.

 

“어때요? 혼자 여행하기 좋아요? 한 젊은 친구는 바라나시에서 한번은 너무 외로워 방의 깨진 거울 앞에 서서 혼잣말로 떠들어 댔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몇 주 동안이나 우리말을 못하니깐 미칠 거 같더라구요. 하하….”
“하하… 근데, 인도인들은 사기를 잘 친다지만 산수 능력이 떨어져서 결국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때는 사기당한 걸 알고도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1루피의 거스름돈을 줘야할 때 1달러를 내주고 좋아서 달아나는 인도 릭샤꾼도 있었어요. 다시 계산해주려고 했지만 벌써 사라졌더군요.“
“저런! 하하….”


“지금 같은 성수기일 때는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많이 오지만, 비수기 때 한국인 장기여행자들 중에 참 특이한 사람들 무지~~ 많아요. 정말 재미있죠. 하지만 꼴불견 여행자들도 있어요. 인도여행에서 기차를 탈 줄 알면 인도여행 절반은 편히 간다잖아요? 그런데 인도기차에서 이런 한국인이 있었어요. 고스톱을 서양인에게 가르쳐주곤 판돈을 따서 용돈 벌었다고 좋아하더군요. 그걸 챙기면서 아르바이트하는 표정이라니. 참~~.”
“서양인들, 동양의 놀이문화 배운다고 엄청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네요. 하하….”

 

 서로 그간의 여행 총정리를 한 듯 오랜만에 긴 수다였고, 뜻밖에 유쾌했다. 여행 중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 “왜 혼자 여행하지요?” 지금이라면, 조금은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답하고 싶다.

 

왜 혼자 여행하지요?

 

“홀로 여행이요? 일단 자유롭죠. 옆에 사람이 없으니 앞만 보고 룰룰랄랄 갑니다. 그러나 옆자리를 늘 비워두죠. 누구나 올 수 있도록요.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에 조금씩 익숙해져요. 예를 들면 오늘 같은 날, ‘어떻게 할까? 오늘 정연이와 만나지 못하면 내일까지 기다려?’ ‘먼저, 그 팀에 합류할 건지, 혼자 여행하고 싶은지 부터 정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그래! 만일 덥썩 오늘 만났으면 이런 고민은 하지도 않았을 테지. 하지만 덕분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생각할 시간을 주었어’라는 식이죠. 


 나 홀로 여행자는 항상 외로움을 달고 다녀야하는 숙명을 갖고 출발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 숙명이 결코 사탕처럼 늘상 단 것만은 아닐 테지요. 옆구리가 허전하니까요. 그래서 때로 막막하고 많이 외롭습니다. 화려한 싱글일까요? 아닙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거 같아요. 개별적인 우연한 만남조차도 귀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요, 만남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게 되더군요. 그런데, 그러다보면 어느새 제 자신에게서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는 거예요. 네, 그 맛에 혼자 여행을 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마치 아주 오래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보물섬으로 떠나는 항해와도 같지 않을까요? 앞을 점칠 수 없는. 보물섬 지도는 손에 있지만 과정은 알 수없으니까요. 네, 그 과정을 즐겨보자 맘  먹는 순간, 나 홀로 여행이란 숙명은 이제 나의 것이 되더군요.“

 

 “와웅… 돼게 마딪네용… 오이구야. 김치맛! 비슷해! 비슷해! 호박무침까지… 이게 얼마만이더냐…”
“이곳 음식도 나쁘지 않았는데도… 역쉬 우리 혀, 맛의 본질은 김치에 있었어요. 우물 으음.. 내 삶의 본질의 맛. 맛 너머로 느껴지는 맛..움음..짭짭!!”

 

 싹싹 남김없이 국물까지 설거지 하듯 깨끗이 비웠다. 김치찌개백반 1인분과 공기밥을 추가로 주문, 찌개백반150루피+공기추가50루피 합 200루피를 반띵해서 각각 100루피씩 지불. 대만족. 이곳 메뉴의 음식재료는 거의 다 주인장이 델리까지 가서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을 받아온단다. 그러니 비쌀밖에. 쌀은 인도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는데 우리의 밥맛에 비할 순 없지만 생각보다 찰졌다. 암튼 오랜만에 몸과 맘이 기분 좋게 해체되는 듯한 포만감을 주는 식사였다.

 

실내의 어둔 조명에서 밖으로 나와 문 앞 통로에 편히 주저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늘을 바라보니 비가 그치고 맑고 파란 하늘이 곱게 그려져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예요.. 우리나라 가을 하늘을 옮겨놓은 거 같네요..“
“그렇군요…….”

 

때때로 만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여행자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위로인지… 길을 떠나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날리 산림보호구역(Forest Reserve)

 

 그도 결국 길을 찾아 떠났다. 그의 빈 자리가 덩그래하다. 더 있다가는 나도 이곳의 귀신이 될 거 같아 덩달아 일어나 아무데로나 걷기로 했다. 사과밭을 지나고, Airtel이라고 쓰여  있는 인터넷숍에 들어가 메일 체크하고, 물소리가 가깝게 들리는 다리를 건너니 삼림보호구역 앞이다.

 

  이른 아침엔 관리인이 없어 그냥 입장하지만, 낮에는 입장료 5루피를 받는다. 그래서 이른 아침 산책코스로 인기란다. 이 삼림보호구역 역시 전나무숲으로 울창한데 길게 뻗어있는 산책로 따라 올드마날리에서 네루공원 안쪽까지 왕복하려면 족히 1시간 이상 걸리는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환상적인 숲길이란다. 마날리에 한번 발을 디딘 여행자들이 제일 ‘그 후로 오랫동안’ 기억하는 명물 중 하나라고.   
 

역시 숲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숲! 숲! 숲! 발음 속에 숲이 느껴진다. 숲에 들면 입안에 휘파람이 일고 귀전에 바람소리도 다르고, 얼굴에 생기가 돈다. 하다못해 바위 이끼류들까지 산뜻한데, 마치 초록의 털실을 바위에 씌여 놓은 거 같다. 나무 둥치에도 지의류가 물기에 닿아 초록으로 빛을 발한다. 덩굴들이 나무와 바위를 타고 넘어 물결무늬를 이루고 바위틈과 밝은 햇살이 닿는 곳에는 어김없이 들풀과 들꽃들이 생글거린다. 어디선가 새소리.

 

  모든 것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 때문일까? 오늘 하루 갇힌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거 같다. 숲길이 굴곡져 있어 비스듬히 이리저리 끼웃뚱 몸을 기울여가며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두 팔을 벌려 날개를 삼으니 바람이 가까이 파고들어 더욱 상쾌하다. 길의 끝이 보이지 않으니 당분간 돌아갈 고민 없이 앞만 보고 걸으면 된다. 끝이 보이는 길은 재미없다. 너무 짧게 끝나는 길도 재미없다.


 그렇게 숲 속 길 따라 정신없이 한참 걷고 있노라니 가슴이 부풀었다 꺼졌다 하면서 새로운 에너지 수혈을 받고 있었다.

 

새로운 다짐


 한 농가의 할아버지와 손주와 잠시 환담.


“모자가 예쁘네요. 할아버지는 여행자들 보면 어떠세요?”
“글쎄요. 난 이 나이 먹도록 이곳을 떠나본 적 없다우. 이런 외지까지 사람들이 들어오는 게 신기해. 구경거리는 되지만, 왠지 뜨네기들 같아서. 뭐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허허...어디에서나 살기 마련 아니겠쑤.”


 게스트하우스의 한국인 식구들과 한 젊은 외국여행자들이 모두 모여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다고… 어서 이리 와보란다. 한 친구가 내일 이곳을 떠나는데 기념촬영한다고. 훈과 인창씨의 장난끼가 도진 희한한 포즈로 사진이 한껏 재밌어졌다. 서로 멜 주소 적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남은 여정에 힘을 보태주느라 시끌벅쩍! 폴라로이드 사진의 모습들이 조금씩 선명하게 윤곽이 들어났다. 다들 고개를 들이밀고 달려들어 한 장씩 차지하느라 난리법석….

 

 ‘이 친구들 웃는 모습, 참 좋아! 생판 남남이었는데 이렇게 다들 어우러질 수 있다니. 아름다운 풍경이고말고. 그래… 내일 무조건 레로 가는 거야. 정연이를 만난다 해도 혼자 다닐래. 정연이도 이런 날 이해해줄 거야. 친구니까.’

 

 나무는 혼자서는 숲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비록 함께 하진 않지만 정연이도 나의 나무가 되고, 나 역시 그녀의 나무이고 싶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숲이 되고 싶다.
 
‘그리고 돌아보니 결코 혼자가 아니었어.’
 
  그랬다. 여행을 맘먹은 그 때부터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나무들을 만난 거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숲으로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작은 숲이 되었다. 이제 막 태어난 작은 숲이라도 좋았다.


  이번 여행 끝까지 내 힘으로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뭔가 다시 처음 여행 떠나는 사람만이 갖는 생기와 설레임이 되살아나는 거 같았다. 분명해졌다. 이제야 길이 열렸다. 내일 무얼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태그:#인도여행, #마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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