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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국 대륙을 달군 베이징올림픽의 성화가 꺼진 뒤, 중국 미래에 대한 적신호가 하나둘씩 켜지고 있다. 위구르인을 위시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은 갈수록 거세지고, 욱일승천하던 경제도 자산시장 급락과 고인플레이션으로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올림픽 후 중국을 뜨겁게 하는 네 가지 이슈의 실상과 전망을 모종혁 통신원이 현지에서 전한다. [편집자말]
폐허가 된 집 앞에서 간신히 건진 식기로 식사를 하는 쓰촨성의 한 피해지 이재민 부부.
 폐허가 된 집 앞에서 간신히 건진 식기로 식사를 하는 쓰촨성의 한 피해지 이재민 부부.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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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四川)성 베이촨(北川)강족자치현. 지난 5월 원촨(汶川)현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베이촨에서는 1만5000여명이 숨지고 4400여명이 실종됐다. 지진으로 건물 전체의 70% 이상이 파괴된 베이촨은 현정부 관공서 전체를 주변 시현으로 옮겼다.

원촨과 더불어 중국 내에서 유일한 강(羌)족자치현인 베이촨에는 죽음과 같은 적막이 감돌고 있다. 베이촨 현정부가 있던 곳은 붕괴된 건물 속에서 썩어가는 사람과 동물 시체로 인한 전염병 위험 때문에 지금도 진입이 통제된 상태다.

기자는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10일 전 베이촨현 중심지에서 7㎞ 떨어진 레이구(擂鼓)진을 다녀왔다. 레이구는 지진 후 한때 베이촨 현정부 지진 지휘부가 있었던 곳이다.

주민의 2/3 이상이 지진 피해자인 레이구를 찾은 날은 산둥(山東)성에 대피해 있던 마을 청소년들이 되돌아온 날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준홍(16·여)은 한 달 반 만에 가족들과 재회했다. 준홍을 마중 나온 이는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와 고모였다. 지진이 발생하던 날 준홍의 어머니는 산사태에 깔려 시체조차 찾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진이 일어나던 날 산비탈 텃밭에서 일하던 준홍 부모님은 갑자기 닥친 산사태에 매몰 당했다. 산 아래에서 일하던 준홍 아버지 주청리씨는 머리에 중상을 입고 간신히 흙더미를 헤쳐 살아나왔다. 그는 "갑자기 땅이 거세게 진동하더니 산 위에서 돌과 흙이 쏟아졌다"면서 당시의 지옥 같은 상황을 회고했다. 준홍 어머니 뿐만 아니라 작은 아버지도 지진으로 목숨을 잃었다. 준홍 가족과 함께 살던 할머니는 가벼운 경상을 당하여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따뜻한 가족 품으로 돌아온 준홍이 묶는 곳은 지진 이재민들이 묶는 간이 천막이었다. 준홍 가족 8명을 비롯해 마을 이웃까지 15명이 한 천막 안에서 살고 있었다. 준홍네 천막 안은 선풍기는커녕 간단한 주방기기 외에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이 초라했다.

준홍은 "산둥에서는 좋은 기숙사에, 따뜻이 맞아준 현지 선생님과 주민 덕분에 잠시나마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며 "산둥을 떠날 때 친구들끼리 다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한다며 서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어 행복하다는 준홍은 "이재민들에게 베이징올림픽은 시간 때우는 좋은 볼거리가 될 듯싶다"고 말했다.

임시 병동에서 지진 부상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수많은 부상자들은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임시 병동에서 지진 부상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수많은 부상자들은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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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역 간 발전격차 및 분위계층 소득유형별 격차.
 중국 지역 간 발전격차 및 분위계층 소득유형별 격차.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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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대지진으로 드러난 '유전무해, 무전유해'

5월 13일 일어났던 리히터 규모 8.0의 원촨 대지진은 직접적 경제손실이 8451억 위안(한화 약 135조2160억여 원)에 달한다. 지진으로 쓰촨성 일대를 중심으로 약 1만2000여건의 지질학적 재난이 발생했고, 지금도 8700여 곳이 위험하며 30개 이상의 호수가 붕괴 위험에 놓여 있다.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만 사망자 6만9000여 명에 실종자 1만8000여 명으로, 전체 사망자수는 8만7000여 명을 넘는다. 특히 지진 당시 학교 수천 채가 무너져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쓰촨성에서는 지진의 악몽이 계속되고 있다. 올림픽이 갓 끝난 지난달 30일 쓰촨 남부 판즈화(攀枝花)시에서는 규모 6.1의 지진이 일어났다. 현재까지 발굴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38명이 죽고 12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판즈화 지진은 원촨 대지진의 여진이 아닌 새로운 지진이다.

지진으로 부모를 모두 잃은 지진 고아는 532명에 달한다. 그중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아이들만 88명. 지진 후 수만 개의 가정이 지진 고아 입양 의사를 밝혔지만, 입양된 아이는 단 두 명에 그쳤다. 대부분 6살 미만의 비장애 아동을 선호해, 연령대가 10~13살이고 장애를 안고 있는 지진 고아를 외면했던 것.

8월 내내 중국 전역은 베이징올림픽으로 떠들썩했지만, 지진 이재민은 열악한 환경의 천막 속에서 찌는 듯한 더위와 싸워야 했다. 살아남은 이재민이 겪어야 할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생활이다. 중국정부는 이재민들을 위해 임시 도시를 건설, 이들을 수용하고 있다. 전기와 상수도 시설을 갖춘 임시 막사는 주거 환경이 훨씬 개선됐다. 이재민 중 사망자 가족에게는 5000위안(약 80만원)의 위로금과 보조금이 전달됐고, 부상자에게는 일정 기간 동안 무료 치료의 혜택이 주어졌다.

겉으로 봐서는 사는 데 문제가 없을 듯싶지만, 지진 피해 지역은 먹고 살아갈 경제적 기반이 철저히 붕괴됐다. 특히 이번 쓰촨성 지진에서는 '유전무해(有錢無害), 무전유해(無錢有害)'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빈부격차가 생사를 판가름했다. 강도가 센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대도시 건물은 지진 피해가 적었지만, 날림 건물이 많은 농촌 지역은 인명 피해가 막대했기 때문이다.

원촨 대지진 진앙지의 건물은 80% 무너졌고, 원촨에서 160㎞ 떨어진 베이촨도 건물의 70% 이상이 파괴됐다. 반면에 진앙지에서 90㎞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쓰촨성 수도 청두(成都)시 건물은 대부분 온전했다. 원촨 대지진은 소득수준과 주거조건이 지진 피해의 차이를 낳게 한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로 일하러 나가기 위해 열차를 타는 농민들. 중국에서는 극심한 도농격차로 이농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도시로 일하러 나가기 위해 열차를 타는 농민들. 중국에서는 극심한 도농격차로 이농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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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회를 짓누르는 소득·도농·지역격차의 그림자

중국의 소득격차, 도농격차, 지역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강남 주민 못지않은 소비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7500만 명을 넘는가 하면,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 못하는 절대빈곤 인구만도 2007년 현재 2148만 명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발전보고 2006'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계수가 개혁개방 이전 0.16에서 지금은 0.47로 올라갔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고 0.4를 경계선으로 이 선을 넘어서면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 중국보다 지니계수가 낮은 국가는 94개에 달한 반면 높은 국가는 29개에 그쳤다. 이 중 27개 국가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국가들이고 아시아 국가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뿐이다.

도농격차는 도시와 농촌 간 소득차이로 더욱 벌어지고 있다. 작년 현재 도시 거주자의 평균 소득은 농촌 거주자에 비해 3.33배나 많았다. 도농 간 소득격차는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8년 농촌 지역의 2.37배였으나, 1984년 1.71배로 잠시 감소한 뒤 2000년 2.79배를 기록했다.

극심한 도농격차는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을 낳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국가통계국은 1996년 이래 2006년 말까지 농촌 인구가 8000만 명 이상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1980년대 이후 농촌을 떠난 이주 노동자 수는 1억3000만 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6000만 명 늘어나는 등 농촌 인구가 10년 전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소득이 낮고 농촌과 내륙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올림픽 기간 중 베이징에서 일하던 농민공 일부는 추방당했고 대다수는 멈춰진 건설 공사로 일자리를 잃었다. 도시민들은 날마다 터지는 중국 선수단의 금메달 획득 소식에 술자리를 즐겼지만, 농촌민들은 뙤약볕 속에서 고단한 삶을 영위하기 바빴다.

올림픽 기간 기자가 서부지역 윈난(雲南)성과 쓰촨성에서 만난 농민들은 "살기 바빠 올림픽에 별 관심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판즈화의 한 농민은 "입에 풀칠은 하지만 과다한 세금 부담에다 자녀를 상급학교에 보내기에는 수입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면서 "편히 앉아 올림픽 경기를 볼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소득 불평등도 크지만 중하류계층의 조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많다. 지난 2월 중국 주간지 <요망>은 "중간계층 이하가 내는 세금이 전체의 65%이고 고소득계층의 세금은 30%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요망>은 "미국은 10%의 고소득계층이 전체 세금의 80% 이상을 납부한다"면서 "중국 세제는 소득격차 해소와 재분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극심한 계층별 지역 간 격차는 중국인들의 행복지수를 낮추고 있다. 1월 중국사회조사소는 전국 18개 성시 주민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물질생활수준 만족도는 38.1%, 정신생활수준 만족도는 38.8%에 그쳤고 사회분위기에 대해서는 80%가 불만을 표시했다.

중국 노동쟁의 안건 증가 추세(단위: 만 건).
 중국 노동쟁의 안건 증가 추세(단위: 만 건).
ⓒ KO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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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사회주의' 국가의 민중, 들고 일어서다

도시 재개발로 정든 집이 헐리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도시 빈민들. 도시 빈민의 삶의 질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도시 재개발로 정든 집이 헐리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도시 빈민들. 도시 빈민의 삶의 질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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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중국 농민, 이주노동자, 도시빈민의 반발과 분노는 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여러 차례 집단행동으로 나타났다.

6월 28일 구이저우(貴州)성 웡안(甕安)현에서는 여중생이 공안국 간부의 아들에게 강간당한 뒤 살해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농민 3만여 명이 정부 청사와 차량에 방화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7월 10일부터 사흘간 저장성(浙江省) 위환(玉環)현에서는 동료에 대한 구타에 분노한 100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공안 파출소를 둘러싸고 시위를 벌이면서 공안 차량과 오토바이 등을 부수기도 했다. 같은 달 19일 윈난성 멍롄(孟連)현에서는 고무 제조업체의 불법 행위에 항의 시위한 고무나무 재배 농민들에게 공안이 총격을 가해 2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파괴력이 큰 도시 노동자의 노동쟁의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에서 노동쟁의 건수는 1992년 8만2000건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13만5000건, 2003년에는 22만6000건, 2006년에는 44만7000건 등 급속히 증가해왔다.

지난 3월 장밍치(張鳴起) 전국총공회 부주석은 "최근 몇 년 동안 노사 간 노동쟁의 건수가 해마다 20%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속속 도입되면서 앞으로 노동쟁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부터 중국에서는 10년 근속 노동자의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계약법이 시행됐다.

중국정부는 민중 시위가 빈발하자 강압적인 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위 건수가 급증하면서 사회불안 요인이 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시위 양상도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

작년 12월 21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심한 경우 공무원을 인질로 잡는 등 시위가 극단으로 치달아 공산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민중 시위는 정부의 강제적인 행정 집행과 관리의 부정부패가 주된 원인"이라며 "2006년 12월 3명의 사망자를 낸 광둥(廣東)성 산웨이(汕尾)시 둥저우(東洲) 농민시위에서는 관리를 인질로 잡고 칼, 몽둥이, 화염병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시위 도구로 사용했다"고 전했다.

사회적 약자 계층의 불만은 날로 커지지만, 중국 부자들은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다. 지난 3월 중국 양회에서 벌어진 부자와 빈자의 논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때 중국 최대 부호로 이름을 올렸던 장인(張茵·여) 주룽(玖龍)제지 회장이 부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낮춰 달라고 했다가 누리꾼의 몰매를 맞은 것.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인 장 회장은 노동계약법 상의 종신고용 조항을 없앨 것과 월 급여 10만 위안(약 1600만원) 이상 소득층의 소득세를 45%에서 30%로 낮춰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누리꾼은 장 회장이 부자계급을 대변하고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고소득 20%와 최저소득 20%의 소득격차가 33배나 나는 불평등한 '사회주의' 국가 중국. 올림픽 이후 중국이 경제적·사회적 불균형을 뿌리 뽑고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으며 발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가난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이 찾을 수 있는 일거리란 그리 많지 않다. 맨손으로 위험한 전자쓰레기를 해체하면서 살아가는 한 허난(河南)성 출신 이주노동자.
 가난한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이 찾을 수 있는 일거리란 그리 많지 않다. 맨손으로 위험한 전자쓰레기를 해체하면서 살아가는 한 허난(河南)성 출신 이주노동자.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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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빈부격차, #쓰촨대지진, #베이징올림픽, #도농격차,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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