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무 얘기라도 좋으니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서서 5분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논리적 전개, 어휘력, 표현력, 시사, 상식 등의 지적 수준은 물론 자신감, 적극성, 설득력, 배려심 까지 평가될 것이라고 하면 나설 엄두 조차도 못 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어려운 조건이 더해진다. 사형제 폐지, 영어공교육 정책, 양심적 병역거부, 수도권 규제 완화, 인터넷 실명제, 안락사 허용, 최근 경제위기 분석과 향후 전망 등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즉석연설이나 답변을 해야 하는 채용면접의 상황은 난감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결국에는 말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나, 연인에게 하는 사랑고백이나, 투자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하는 것이나, 회사업무에 관한 결재를 얻는 것, 휴가를 다녀와야겠다는 것까지도 결국 모두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부여 받는 주제를 갖고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면접위원의 맘을 자기편으로 설득 시키는가'야 말로 중요한 기술이자 능력이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높은 영어점수가 적힌 이력서를 제출한들 이를 말로 증명할 표현력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탈락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 되고 만다.

 

영어자기소개는 준비하지 않았는데요?

 

올해도 어김없이 이런 지원자를 만났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요청했더니 대뜸 "그건 준비하지 않았는데요?"라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소위 최고 학교와 좋은 전공 성적이 있고, 어차피 영어로 업무를 할 일이 별로 없는 엔지니어에 지원했으니 영어 자기소개는 못 하겠다는 식이었다.

 

그 당당함에 놀랐다. 다음 순번의 지원자가 준비하는 시간을 벌어놔야 했기에, 영어 자기 소개대신 노래라도 해보라고 했더니 그것 또한 "노래는 잘 못합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 잘 하겠다는 태도야말로 채용결격사유로 충분하다.

 

북한에 퍼주기는 절대 안됩니다

 

‘사형제 폐지, 영어공교육 강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 허용, 안락사 허용’ 등 사회적으로 찬반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질문을 받았더라도, 면접위원이 질문을 통해서 평가하는 부분은 찬반의견 중 정답을 고르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근거와 논리로 조목조목 설득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다. 평소 준비했던 질문에 대해 발표를 잘했더라도, 반대의견이나 엉뚱한 질문을 맞이했을 때에도 어떻게 반응을 보이는 지로 더 많이 평가가 된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떤 경우에든 북한에 퍼주기는 절대 안 됩니다"고 시종일관 같은 말로 열을 올리는 지원자도 기억난다. "나는 절대로 타협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는 듯 보였다. 그런 확신과 자신감을 높이 살만한 담당자는 별로 없을 거라고 본다.

 

제 아버님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거의 모든 남자지원자는 자신의 군 생활을 예로 든다. 현역으로 제대했다면 예외 없이 반대를 한다. 반대를 하더라도 찬성하는 이들의 논거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대체복무를 허용했을 때의 문제점은 어떤 점이 있어서 반대를 한다고 논리를 전개하는 편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또한, 이런 경우도 있었다. '안락사 허용'에 대해 의견을 물었더니, '자신의 아버지가 말기 암 환자로 몇 년간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하지 않았고, 따라서 생명을 경시하는 무책임한 풍토를 조장하는 안락사에 명백히 반대한다'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면접장은 잠시 숙연해졌지만, 그 발표자를 보면서, 그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아버님 병수발을 정성스레 몇 년간이나 해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경험만을 근거로 삼는다거나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

 

발표 중간에 말 끊지 마세요

 

주어진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청산유수로 말 잘하는 지원자는 면접위원들에게 집중 관찰대상이 된다. 평소에 그런 주제에 대해 흥미가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답변을 잘 할 수 있었던 건지, 예상문제를 준비해서 모범답안을 외운 것인지 구별해내고자 할 것이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답변 중간에 흐름을 한번 끊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앵무새처럼 답안을 달달 외운 지원자들은 다시 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솜씨가 미치는 영향은 7%에 불과하다고 한다. 55%는 몸짓, 38%는 목소리 톤이라는 것이고, 몸짓 안에는 마음의 창이라고도 하는 눈빛이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몇 글자 적혀있지도 않은 화이트보드만 쳐다보거나 땅이나 천장을 응시하면서, 면접위원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소용이 없다.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고객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는 연인을 쳐다보지 않으면서 설득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전 어학연수 안 다녀오고도 영어 잘 합니다

 

'회사가 당신을 채용하지 않는 44가지 이유'(서돌)의 저자 신시아 샤피로는 "이력서를 내기 전 친구에게 3초 동안 읽히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 세 개를 들게 하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당신이 내세운 핵심 키워드가 아니라면 다시 써야한다"는 것이다.

 

자기소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몇 년간 인턴사원, 어학연수, 봉사활동 경험을 얘기하지 않은 지원자를 만나본 기억이 거의 없다. 오히려 기억이 나는 지원자는 "전 어학연수로 외국에서 공부하진 않았지만, 영어실력은 자신 있습니다"라고 당당히 얘기했던 사람은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실제 영어면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확인하면서는 나도 모르게 그 지원자를 마음속으로나마 응원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태그:#채용면접, #신입사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