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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놀이터'꿈.동네.넷'의 자연속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있는 모습.
소문 나서 주변의 동네 아이들도 놀아올 정도 인기가 있는 놀이터다.
▲ 일본,시즈오카현 후지시의 모험놀이터'꿈.동네.넷' 모험놀이터'꿈.동네.넷'의 자연속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있는 모습. 소문 나서 주변의 동네 아이들도 놀아올 정도 인기가 있는 놀이터다.
ⓒ 와타나베 타츠야(渡部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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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말경에 우광환 기자님의 메일을 통해서 2007년의 '한일 친구 만들기'에서 일본측의 시민기자로서 참가 하신 아오야기 시게오씨로 부터 그가 그전에 '오마이뉴스 재팬'에 기고 했던 '연수입 700만이 180만이 되어도 꿈을 쫓는 가족' 라는 기사를 본 어떤 방송국의 제작 관계자가 이 기사의 지역의 아이들 위한 자유 스러운 모험 놀이터 등을 운영하고 있는 NPO법인 「ゆめ・まち・ねっと」 '꿈.동네.넷'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하게 되었고 방송된 후에 전국에서 수많은 관심이 모였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이 직접 불 태우면서 일본 전통 엿도 만들어 본다.
▲ 모험놀이터'꿈.동네.넷'의 체험코너? 아이들이 직접 불 태우면서 일본 전통 엿도 만들어 본다.
ⓒ 와타나베 타츠야(渡部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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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에 직접 시게오씨랑 메일을 주고 받고 하며 그리고 그가 취재했던 NPO법인 '꿈.동네.넷'의 사이트 등 보면서 이런 내용들을 기사로 소개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때 '한일 친구 만들기'에 참가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게오씨는 전신 마비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라서 항상 부인의 노리꼬씨가 그의 손이 되고 다리 되면서 취재에 다닌다.

자세한 내용 우광환 기자님의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사람" 라는 기사에 기재 되고 있지만 그는 스물다섯 때 스키를 타다가 사고 당했고 2년 반을 식물인간으로 살았던 후,기적적으로 의식이 회복 했지만 전신이 마비되어 평생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그 현실에 절망감을 느꼈고 죽는 생각까지 한 후에 만났던 주치의 선생 말씀에 감동해서 이런 모습의 내 자신이라도 소중하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결국 하게 되었던 분이고 그 내용을 기재 했던 기사는 우리에게 감동을 줬다. 이하는 시게오씨에게 직접 메일 인터뷰 했던 내용이다.

장애자의 시선으로 보며 생각할 기사를 쓰고 싶다!

-우선, 전'오마이뉴스 재팬'에 시민 기자로서 참가 하게 된 계기를 알려 주세요.

"이런 이유는 대단히 불순입니다만 나는 꽤 전부터 토리고에 슌타로 씨의 발언이나 생각에 공감을 가지고 있었고, 대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밑에서 무엇인가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부터입니다. "

"다음에, 사람은 누구라도 사회에 대한 의문, 불만, 제안, 기쁨등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하는 기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이면, 이야기하는 사람 들어 주는 사람은 자신의 몸의 주위에 있는 몇사람이나 수십의 사람에게 한정되겠지요. 그런데  인터넷의 사이트에 게재되면 오버일지도 모릅니다만 온 일본 온 세상의 누군가가 봐 주지 않을까 라는 큰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오마이 라이프' 외 시민 뉴스 사이트에는 투고하십니까?
또, 시민 뉴스 사이트의 문제점 등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지금의 나는 '오마이 라이프' 에는 일절 투고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타이틀의 분야가 한정되어 있고 활동 범위가 좁기 때문입니다."

"시민 미디어를 운영 경영하는 분은 사원의 급료 등 최저한의 이익을 올리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영자가 큰 돈을 벌자 등이라고 생각하면 경영자나 편집부는 일부에 치우친 기사를 많이 게재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시민 기자도 경영자나 편집부의 안색을 보며 그러한 사람에게 마음에 드는 기사를 쓰려고 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시민 미디어의 진정한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참조기사: '오마이 라이프'에 쓰고 싶은 기사

-그리고 이번 '꿈.동네.넷'의 기사가 계기로 텔레비전에의 방송이 된 것을 들으신 소감은?

"우선,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이 활동 을 하고 있는 와타나베씨 부부가 "TV로 전국 방영된 후 몹시 큰 반향이 있어 전국으로부터의 문의가 쇄도했다." 라고 몹시 기뻐해 주신 일입니다.
그 다음에 나와 같은 아마추어 기자가 쓴 아마추어 기사에 대미디어가 조금에서도 움직여 주고 사회에 무엇인가를 전하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 활동을 알았을 때 자신의 어릴 때와 비교해서 지금의 아이들은 조금 과보호에 자라질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일본에서는 옛 같게 장난 꾸러기 대장 등이라는 말이 듣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모나 사회의 어른이 '말 잘 듣는 아이가 좋은 아이'라고 기르려고 하는 기분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픔을 참을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좌절 하면 극복하는 것은 매우 곤란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 자신의 아픔과 사람의 아픔을 알고 좌절을 경험하는 일로 어른이 되었을 때에 강해지면서 해도 되는 일 안되는 일의 판단이 하며 사람들에게의 배려의 마음이 싹트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한 경험이 없는 일부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 좌절로부터 기지 못하고  그 기분을 흉악한 범죄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금년 일본에서 일어난 '아키하바라 무차별 연속 살상 사건' 이였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의 자라난 내력이 완전히 말 그 대로 그런 청년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저 일례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등교거부 등의 문제들 가지고 학교에 못나간 아이들을 위한 학교로서 옛 폭주족의 족장 였던 교장선생님이 만들었던 이토학교의 학생들이 주변의 바다에서 쓰레기들 주우면서 청소 하고 있는 모습. 그들은'꿈.동네.넷'과 같이 행사 등도 하고 있단다.
▲ '꿈.동네.넷'주변의 이토학교의 학생들 등교거부 등의 문제들 가지고 학교에 못나간 아이들을 위한 학교로서 옛 폭주족의 족장 였던 교장선생님이 만들었던 이토학교의 학생들이 주변의 바다에서 쓰레기들 주우면서 청소 하고 있는 모습. 그들은'꿈.동네.넷'과 같이 행사 등도 하고 있단다.
ⓒ 와타나베 타츠야(渡部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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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학교 학생들은 '꿈.동네.넷'의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돌아봐주게 된다.
▲ '꿈.동네.넷'에서의 이토학교 학생들 이토학교 학생들은 '꿈.동네.넷'의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돌아봐주게 된다.
ⓒ 와타나베 타츠야(渡部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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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기자로서 활동될 때에 모토로 되어 있는 것은?

"대미디어는 물론 일반의 사람들에게도 친밀한 사건이나 사회의 사건으로서도 누구나가 눈에 띌 것 같지만 깨닫지 않은 것을 발신해 나가고 싶습니다."

-향후 취재해 보고 싶은 것이나 소개 해보고 싶은 소재등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저를 본적이 있는 분들은 아시는 대로 저는 중증의 장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신체가 되어 24년이 되었습니다만, 겨우 장애자라고 하는 것도 반드시 그렇게 약점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장해를 가지면서 입에 붓을 입에 물어 그림이나 시 등을 창작하고 있는 호시노 토미히로씨는 "나는 장애자가 되어 좋았다" 라고 이전부터 말하고 왔습니다."

"그것은 정상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들 이해 할 수 없는 것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등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의사들과 접해 왔습니다만 지금도 가장 존경해 신뢰하고 있는 의사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분의 성함은 오타 히토시 라고 합니다.  그 선생님에게는 생명이 소중한다는 것이나, "장애자에게는 정상인에는 안보이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정상인에게 전해 가는 것이 아오야기군 자네들의 역할이야 " 등 많은 일들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로 장애자의 시선으로 보며 생각난 일을 써 가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의료, 복지, 개호, 바리어 프리, 노멀라이제이션"이 주요합니다만 별로 분야 에는 구애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규칙을 붙이고 복잡하게 되는 것이 싫기 때문에입니다."

'꿈.동네.넷'내에 있는 추억의 옛날의 일본 막과자 판매소에서
▲ '꿈.동네.넷'에서 취재중인 아오야기 시게오 기자 '꿈.동네.넷'내에 있는 추억의 옛날의 일본 막과자 판매소에서
ⓒ 와타나베 타츠야(渡部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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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마이뉴스'에 메세지가 있으면 부탁합니다.

"일본의 보도로는 '한국의 연예인의 블로그나 HP에 참기 어려운 비방 중상이 쓰여지고 쓰여진 사람이 자살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오마이뉴스'의 '한일 친구 만들기' 에 참가했을 때 어떤 한국의 시민 기자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한국의 시민 기자의 어떤 분이 심한 비방 중상의 뎃글 쓰여져 고민한 결과 자살한 사람도 있습니다." 라고. 이것은 한국 '오 마이뉴스'의 편집부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언론의 자유는 지키며 거기에 소용없는 규제를 걸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 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어쩔수 없이 규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제대로 규제해 주셨으면 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나와 시게오 씨 그리고 노리꼬 부인과 직접 만났던 것은 작년의 강화도의 '오마이스클'에서의 '한일 친구 만들기 2007'때가 처음였다. 그 때도 아마 '오마이스클'이 내 시댁이 있는 불은면에 있지 않으면 나와 같은 결혼이민자의 입장에서는 참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시게오씨도 사고후에  전신이 마비되며 절망의 마음을 돌이킨 후에 신체마비 전문 간병인인 노리꼬씨 만나 이듬해 상상도 할 수 없던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번에 전국 방송이 된 '꿈.동네.넷'의 활동에게 시게오씨가 관심이 가지게 된 계기도 지역 방송에서 와타나베씨를 "전에는 현청에 근무해 오셨지만 현재는 시즈오카현 후지시에 있어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주는 것을 주로 한, '꿈.동네.넷' 라는 NPO 법인을 시작하셨던 분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현청 직원 시대는 연수입이 700만엔 정도였지만 현재는 180만엔로 격감. 그런데도 와타나베씨 가족은 4명의 힘을 합치며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준다는 꿈을 쫓고 있다." 라는 이야기도 듣고 나서 시게오씨의 자댁에서부터 차 타고 10분정도의 거리라는 것도 알고 나중에 취재하러 나갔단다.

그런 일들을 알고 보면 그런 만남이 하나 하나가 얼마나 소중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번의 이런 뉴스를 통해서 전 '오마이뉴스 재팬'의 같은 시민기자로서도 기쁨을 공감 될수 있고 이런 일이 생길 것만 생각해도 '오마이뉴스 재팬'이 있었어 좋았다고 할수도 있다.

앞으로도 우리 시민기자로서 자랑스러운 시게오씨 부부가 보기 좋게 힘을 합치면서 시게오씨 부부만 쓸수 있는 기사들을 보내주실 것을 기대한다.


태그:#일본, #오마이뉴스 재팬, #시민기자, #아오야기 시게오, #장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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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이주민영화제(MWFF) 프로그래머 참여 2015~ 인천시민명예외교관협회운영위원 2016~ 이주민영화제 실행위원 2017.3월~2019 이주민방송(MWTV) 운영위원 2023 3월~ JK DAILY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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