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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난 1월 2일이었다. 열네 살과 열일곱 살 학생 둘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제까지는 부모의 보살핌과 잔소리를 얻어먹고 살아왔지만 지금부터는 누군가를 돕고 살겠다는 거였다.

이날부터 일 주일 동안 이들은 나무도 패고 계곡물도 길어 왔다. '이타행' 수업을 하는 '100일 학교' 학생이었다.

내가 물었다. 이타행이 뭐냐고.

한 놈은 말하기를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기보다 남을 도우며 참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이타행 아니겠냐고 했고 다른 녀석은 사람뿐 아니라 세상 만물에 이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같은 학교의 여자애 둘은 교육청 앞으로 가서 일제고사 사건으로 쫓겨난 선생님들의 징계를 철회해 달라는 1인 시위를 교대로 한다고 했다. 청소년을 위하다 희생되는 어른을 청소년들이 지키기 위해서란다.

23일이 그 100일 학교의 졸업식이었다.
여느 졸업식과는 자못 달랐다. 졸업장도 없고 그 흔한 지역 유지들의 격려사도 없었다.
진학률이 어떻네 어느 학교를 몇 명이 들어갔네 하는 얘기도 없는 졸업식이었다. 대신 가정과 공동체를 상징하는 밥그릇과 초, 실타래를 제상에 올리고 굿을 했다.

원주 광대패 정대호 선생과 부산의 남산놀이마당 이우창 선생에게서 배운 대로다. 학생들은 중앙대 최태현 교수의 곡, '수심정기'에 맞춰 장틀과 양의자세 공연을 했다. 신라 화랑들이 추었다는 본국검을 이수한 부산의 이상운 선생에게서 배운 검무도 췄다.

100일학교 교장 윤중 선생님은 이 학생들이 국가 및 자본, 기타 여러 제도적 억압으로부터 몸이나 영혼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직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며, 세상을 살리는 지혜를 배웠다며 이를 더욱 익히고 널리 알려 갈 수 있는 모임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졸업식에 모인 사람들은 더이상 그럴듯한 직장이나 일류 상급학교 진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100일 동안 집을 떠나 살았던 자녀들을 바라보는 학부모들도 자급과 자립, 마을과 공동체간의 연대가 화두였다.

100일 학교는 먹을 것과 입을 것, 침구까지 바리바리 싸 짊어지고 100일 동안 전국을 돌며 스물다섯 분의 스승을 찾아가서 공부했다.

크게 네 분야다.

자신을 밝히는 마음공부가 첫째였다. 자운선가수련, 의암 손병희 선생이 가르친 무체법경 강론, 동학주문수련 등이다. 생태 집짓기나 발효식품 만들기, 생명살이 농사일 등 정직한 노동을 통해 사물의 이치와 기술을 익힌 것이 둘째며, 풍물과 탈춤공연, 붓 그림 그리기 등 문화예술이 셋째였다. 넷째는 본성에 따라 몸을 다스리는 공부였다. 수연건강법과 장틀 배우기, 물 수련, 몸 살림운동 등이 그것이었다.

더 큰 공부는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생 연애와 돈 봉투 분실사건, 학부모들의 이해충돌 등 100일 동안 일어난 뭇 사건들을 모두 배움의 교재로 삼았고 개성 강한 구성원들이 상대를 다 스승으로 모시며 자기 자신을 키워나간 일이다.

북미 원주민의 원탁회의와 상고시대 우리 선조의 화백회의를 통해 그것이 가능했다. 끊임없이 순환하며 우주와 통하는 생태원리가 '학육'(학생과 선생이 서로 배우는 교육을 뜻함) 현장에서 싹튼 눈길 끄는 졸업식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1월 2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100일학교, #백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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