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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동쪽>이라는 드라마에서 시종일관 유지되는 핏줄주의를 경계하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 글을 씁니다. 누군가 이미 썼겠지 하고 <오마이뉴스>를 검색해봤는데, 그런 얘기가 아직 안 나오네요. 이미 지겹도록 핏줄주의가 방송에 등장했지만, 앞으로라도 줄여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도에서 만난 이스라엘 친구

몇 년전 인도 북부에 있는 리시케시라는 도시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여러 나라 여행객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그 중 이스라엘 친구들도 있었는데, 어느 날 여러 친구들이 저녁에 밥을 같이 먹으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공통으로 궁금해 하면서 이스라엘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근데, 니네 나라에서 팔레스타인이랑 싸우는 거 있잖아? 거, 정치지도자들만 하는 거니 아니면 국민들도 공감하니?’ 그러자 그 이스라엘 친구는 화가 난 얼굴로 답했습니다. ‘너희들은 니네 가족이 폭력을 당해도 가만 있겠니?’ 같이 요가를 배우면서 용서와 평화에 대해 고민하던 친구들은 무척 당황했습니다.

가족애가 타 가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드라마 <에덴의동쪽>의 전체 줄거리를 차지하는 내용은 가족 간 갈등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만한 휴머니즘이 빠져 있습니다. 휴머니즘이란 내 가족이니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남의 가족일망정, 남의 민족일망정 사랑하고 아껴주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예수가 말한 것처럼 원수마저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런 휴머니즘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신태환이 악인이고, 우리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그를 증오하고 파멸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동철 가족의 인생 사명처럼 되어 버립니다. 세상에 이런 가족이 있을 수가 있나요?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다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정서는 결코 아닙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명작들은 가족들이 서로 원수처럼 살더라도 그 중 한 두 명은 서로 화해하도록 노력하는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덴의동쪽>에서는 이동철 가족 전부가 신태환을 향한 끝없는 증오를 표현합니다. 게다가, 원수에 대한 복수를 인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니!

두 아들이 바뀐 것이 확인된 이후의 전개는 더더욱 비현실적입니다. 이들은 핏줄, 핏줄을 외치며, 갑자기 원수의 아들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30년 살아온 정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상대 아들이 나의 핏줄이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현실적이지도 않고, 공감할 수도 없으며, 결코 교훈적이지도 않은 내용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드라마가 공영방송에서 몇 달 동안 방송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민족애가 타민족에 대한 공격이 되지 말기를

처음에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이스라엘 사람 얘기를 꺼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 전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 얘기를 한 이유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다른 가족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에덴의동쪽>처럼 계속해서 핏줄을 외쳐대면서 원수를 복수하려는 것은, 결국 계속해서 폭력을 낳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듯이, 우리가 우리 가족만 사랑한다면, 이는 또 누군가를 향한 증오와 폭력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타민족에 대한 공격심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닐 것입니다.

핏줄주의를 경계한다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몹시 두려웠습니다. 과격한 민족주의는 과거 경제가 무척 힘들 때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다른 민족이 인구의 1%정도를 차지하는 다민족국가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국민들이 핏줄, 핏줄을 외친다면, 지금의 힘든 경제에 대한 원망을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민족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공격으로 변질시킬 것 같아 두렵습니다. 드라마 <에덴의동쪽>이 제발 건전한 사고방식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태그:#에덴의동쪽, #민족주의,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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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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