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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기, G경찰서입니다. S학생의 아버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S학생이 무면허 운전에 단속됐습니다."
"네! 아니, 지금, 걔가 거기 왜!, S가 왜 거기에…."
"……."

"S가 맞는지 확인 좀 하게 아들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아빠, 죄송해요…."
"너! 아니, 왜, 거기에 있어!"
"확인 되셨습니까!"
"네…."

"큰일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S학생이 세뱃돈으로 스쿠터를 샀다는데, 작년까지는 면허 없이도 스쿠터를 운전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 법이 개정돼서 무면허 운전으로 단속된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에다, 미성년자이고 하니 몇 가지만 조사한 뒤에 곧 바로 귀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네! 저, 저, 정말 죄송합니다. 찾아뵙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네! 굳이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귀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구정 연휴가 끝난 28일이었습니다. 예측불허의 사건 전화를 끊고 나니 숨이 턱 막혔습니다. 보충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아이가 경찰서에 잡혀 있다니…. 사건을 추려보려고 했지만 머릿속이 헝클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말도 없었는데 웬 스쿠터를 샀다고?, 그것도 무면허 운전에다 단속에까지 걸렸다고?

숨이 가빠지고 혈압이 올랐습니다. 아내에게 일단의 내용을 급히 알렸습니다. 사건 내용보다는 경찰서라는 곳에 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 이제 고등학교 1학년 놈이 벌써 경찰서 잡혀갔단 말이야!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학원 가려고 산 건데 할 말이 없습니다. 저 집에 못 가겠어요. 죄송해요.'

2~3시간 지나 숨이 고른 뒤에 작은아들이 걱정돼 전화를 걸었지만 곧 바로 끊었습니다. 그리곤 핸드폰이 꺼져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이런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 것입니다. 또, 혈압이 솟았습니다.

'아니, 이놈 봐라! 지가 뭘 잘했다고 집에 안 들어오겠다고….'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알려준 뒤 작은아들과 통화해 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초지종을 파악한 큰아들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빠, S이는 조사받은 뒤 풀려났고 현재는 동대문역이래요. S가 그러는데 학원 갈 때 버스비를 아끼려고 스쿠터를 샀대요. 그리고, 오늘 집에 안 들어오면 아빠한테 더 혼나니까 일단 집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형도 아빠에게 같이 혼날 테니까 꼭 들어오라고 했더니 들어온다고 했어요. 정말, 실망이에요. 저에게 스쿠터를 산다는 말 한 마디도 없었는데…."

"그래 알았다. 만약 오늘 집에 안 들어오면 아예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 말라고 해라! 너도 이놈아 형이 돼 가지고 도대체 뭐했기에 동생이 저런 일이 벌어지도록 전혀 모르고 있었어!"

큰아들에게 연대책임을 물은 뒤 전화를 끓었습니다.

'충정로CSI' 수사반장, 사건 수습에 나서다!

문제의 고물 스쿠터. 앞 밤바는 궤매져 있었고, 백밀러는 아예 없고, 엔진소리는 털털거렸습니다.
 문제의 고물 스쿠터. 앞 밤바는 궤매져 있었고, 백밀러는 아예 없고, 엔진소리는 털털거렸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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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사극 'CSI' 광팬인 아내는 '충정로CSI' 수사반장입니다. 눈치가 빠를 뿐 아니라 추리력이 워낙 빠른 엄마 앞에선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차례 깨닫게 된 큰아들이 붙인 별칭입니다. 저는 큰일이 닥치면 혈압이 오르락내리락, 머릿속이 헝클어져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느라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결국 아내의 사건수습이 시작됐습니다.

"막내와 통화를 했는데, 아빠에게 혼이 날까봐 혼자서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겠대요. 교회 끝나는 대로 얘를 데리고 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혼냈으니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알았죠!"

"아니, 어떻게 그냥 놔둬! 집에 안 들어오기만 해봐라! 그냥 이놈을…."

"여보,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내가 막내를 야단치면서 '엄마는 스쿠터를 산 것보다, 경찰에 단속된 것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엄마, 아빠와 상의하지 않고 스쿠터를 산 것, 그리고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한 것에 화가 난단다.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면 아예 나가 살 생각을 해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요. 아주 혼을 냈으니 당신은 차분하게 타이르세요."

밤 10시 무렵, 아내가 두 아들과 딸을 대동하고 집에 들어섰습니다. 고개도 들지 못한 작은아들이 현관에서 벌벌 떨자 아내가 일부러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막내야! 너 어서 빨리 들어가서 샤워 하거라! 어서! 어서!"

엄마의 쇼맨십에 용기를 얻은 작은아들이 엉거주춤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샤워를 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여보! 내가 막내를 반쯤 죽여 났으니! 당신은 가만히 계세요. 얘가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겁을 먹고 떨었는지 아주 사색이 됐어요. 오늘 낮부터 지금까지 밥을 못 먹었대요."

못 이긴 채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말마따나 잘못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는데…. 아내가 작은아들에게 곰국을 끓여주고, 그것도 부족하다고 하자 라면까지 끓여주었습니다. 의기소침해진 막내아들을 위로하는 아내의 잔잔한 목소리가 방문 사이로 새어 들어왔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경찰서까지 끌려가는 등 세상에 태어나 가장 큰 위기를 경험한 작은아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사건수습을 해주는 엄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을 겁니다.

'장물' 아닌 '고물' 스쿠터 보고 또, 혈압 오르다!

세뱃돈을 털어 산 고물 스쿠터, 찢겨진 밤바 등 한 눈에도 '고물'입니다.
 세뱃돈을 털어 산 고물 스쿠터, 찢겨진 밤바 등 한 눈에도 '고물'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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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월 31일), J지구대를 어렵게 찾아갔습니다. 경찰에게 아버지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신분증을 제시한 뒤 물품 인수서를 작성했습니다. 경찰에게 아들이 산 스쿠터가 혹시 장물은 아닌지 물었습니다. 스쿠터는 행정기관에 등록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서류를 작성하곤 지구대 밖으로 나왔습니다. 지구대 앞에 세워진 문제의 스쿠터(49cc, 제품명 '비너스')를 천천히 살펴보던 아내와 전 어이가 없었습니다. 앞 밤바는 꿰매져 있고, 양쪽 백미러는 아예 없고, 엔진소리는 털털거리고…. 어이도 없고, 화도 나고…. 어떻게 저런 스쿠터를 26만원이나 주고 샀는지 이해되질 않았습니다.

지구대를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스쿠터를 '장물', 판매자는 '학생 절도범'으로 잠정 결론 내렸습니다. 스쿠터 판매자는 18세의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작은아들이 말했습니다. 판매자에게 수십 차례 전화를 했지만 판매자는 전화를 받지 않더니 전원을 아예 꺼놓은 상태였습니다.

"스쿠터를 26만원에 샀다면 틀림없이 장물일 거야!"
"훔친 물건을 판 뒤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전화를 꺼놓은 거야!"
"그런데 장물이라는 게 확인되면 어떻게 처리해야 되지?"

스쿠터를 '장물', 판매자를 '절도범'으로 잠정 결론 내린 것은 좋은 물건을 너무 싸게 샀다는 추정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스쿠터를 세심히 살핀 저희 부부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강남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는데, 물건을 보니 강남 애들이 타고다닐 스쿠터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물건을 살 생각을 하다니! 물건 볼 줄 모르는 작은아들의 안목이 한심했습니다.

애초엔 제가 직접 스쿠터를 몰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만류하더군요. "자칫 사고 나면 더 큰일!" 이라고 걱정하면서 "중국제 싸구려 스쿠터!"라며 형편없는 물건임을 알려주더군요.

스쿠터를 버리고 갈 것인가,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아내와 실랑이를 하다가 용달차를 불렀습니다. 잠실에서 충정로까지 스쿠터 달랑 한 대 옮기는데 '5만원'이라고 하더군요. 결국 생돈 '5만원'을 날리면서 집까지 모셔왔습니다. 제 혈압을 상승시킨 주범 '스쿠터'는 지하 주차장에 모셔져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스쿠터를 훔치다 잡힌 게 아니라 단순히 무면허 운전으로 걸렸다는 점입니다. 법규를 몰랐다는 점은 학생으로서의 정상참작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스쿠터를 타다 사고 난 게 아니라 사고 나기 전에 경찰로 하여금 운전을 중단시킨 점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홀아비로 아들을 키우다 이런 사건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사건'을 '사건' 자체로 보기보다는 '사건이 미치는 영향과 또 다른 주변으로까지 확대해석'하는 제 성격으로 봐서 참담했을 것입니다. '아빠가 어떻게 해서 너희를 키우는데 이런 일을 일으켜!', 실망감뿐 아니라 좌절감마저 엄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보다 몸은 작지만 저보다 더 큰 마음과 사건처리 능력이 뛰어난 아내 덕분에 '사건' 자체로 수습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tajin.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스쿠터, #장물, #세뱃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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