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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정말일까? 정말이지. 오연호 기자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보면서도 이미 현실이 된 그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았다.

세 살, 다섯 살 두 딸을 데리고 덕수궁 시민 분향소에 조문을 다녀왔고, 어렵게 시간을 내 가족이 봉하마을도 다녀왔다. 육아휴직 중 잠시 자원 교사 활동을 하고 있는 대안초등학교 아이들과 영결식장과 추모식에도 다녀왔고, 용산 참사 현장도 다녀왔다. 그래도 무엇일까, 내 마음 속의 죄의식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 마음 속 죄의식은 왜 지워지지 않을까

밤새 달려서 내려간 봉하마을, 도착시간 오전 8시, 헝크러진 머리로 그렇게 조문했다.
▲ 봉하마을에서 조문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 가족 밤새 달려서 내려간 봉하마을, 도착시간 오전 8시, 헝크러진 머리로 그렇게 조문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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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나름 양심적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시민단체 후원하고, <한겨레>와 <시사인> 보면서, 삼성제품 쓰지 않으면서 양심적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면서, 제도 교육이 넘지 못하는 벽을 넘어, 대안을 오늘로 실현하기 위해 공동육아 어린이집, 방과후 공부방, 대안초등학교를 친구들과 함께 세우고, 주말이며 방학에는 자원활동교사로 일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의 이 현실은 나의 이런 자부심을 마구 두들기고 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의 반쪽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다. 고문으로 노쇠한 몸을 이끌고 오열하는 그 분의 모습은 지금도 나의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반쪽을 잃은 슬픔, 그렇다면 나는 노무현을 잃으면서 무엇을 잃었는가?

잃은 것이 없다. 너무나 평온한 오늘의 일상이 바로 그 죄책감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평온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용산에서 사람이 불타 죽어도, 쌍용차 직원들이 죽음을 무릅쓴 싸움을 하고 있어도, 미디어법 처리가 코  앞에 있어도 너무나 평온한 오늘, 그것이 내 죄책감의 진원지였던 것이다.

이 시대의 화두는 무엇일까? 고민했다. 내가 내 일상을 휘저으면서 파고를 만들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러면서 언론소비자주권운동(이하 언소주) 카페에 가입했다. 다들 알겠지만 언소주는 우리 사회 왜곡의 뿌리인 언론 권력을 바로 잡기 위한 단체다. 삼성 불매 운동으로 지금은 더 유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삼성제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 일가가 하는 이마트, CGV 정도는 가끔 이용했지만 주 소비처는 아니었다.

지난 5월 친구들과 옥천신문 창간자인 오한응 선생님을 뵈러 간 적이 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바로 내 안의 <조선일보>와의 싸움이라는 것이었다.

내 안의 적으로 롯데를 지목하다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자본주의 최후의 보루는 윤리적 소비자의 조직된 힘입니다. 나는 윤리적 소비자가 될 것이다.
▲ 언소주 카페 메인 화면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자본주의 최후의 보루는 윤리적 소비자의 조직된 힘입니다. 나는 윤리적 소비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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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모든 싸움은, 모든 적은 내 안에 있다. 나는 삼성제품을 내 돈 주고 산 적(즉, 선물이나 공짜폰 빼고, 삼성이 무노조경영 신화를 자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대학 시절부터 삼성은 거리두기의 대상이었다. 나는 정치적 이유로 엘지 제품을 구매한다)이 없다. 그런데 내 안에는 '삼성'이 있다.

'삼성'은 바로 내가 가진 기득권이었다. 내 평온한 일상을 그대로 유지할 것 같은 착각 속에 있게 하는 그런 기득권이었다. 언소주가 삼성을 지목했다면 나는 그 기득권의 1호로 롯데그룹을 꼽았다. 굳이 제2롯데월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권과 롯데 그룹 사이의 밀월 관계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회원 탈회를 하기 전에 1000원짜리 커튼핀을 하나 주문하고 캡쳐해 놓은 화면이다. 1000원짜리 하나를 구매하도 배송비가 무료이다. 이 기득권은 누군가 정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으며 갖게 된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내가 나도 모르게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게 했다.
▲ 플래티넘 회원 배송비 무료 회원 탈회를 하기 전에 1000원짜리 커튼핀을 하나 주문하고 캡쳐해 놓은 화면이다. 1000원짜리 하나를 구매하도 배송비가 무료이다. 이 기득권은 누군가 정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으며 갖게 된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내가 나도 모르게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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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롯데닷컴, 롯데카드, 롯데시네마, 롯데리아, 롯데마트, 롯데월드, 롯데칠성, 엔제너리스, 롯데제과, 롯데건설 모든 제품을 불매하겠다는 '나홀로 선언'을 했다. 롯데백화점은 처음 발령받은 학교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백화점이어서 드나들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롯데카드를 만들고, 롯데백화점에 대한 맹목적 신뢰로 인터넷 쇼핑몰 롯데닷컴을 애용했다.

특히 롯데닷컴은 기간별 구매 실적 상위 3%에 주는 '플래티넘 회원'이라는 것이 있다. 500원짜리 물건 하나만 주문해도 배송비가 붙지 않는 아주 파격적인 회원 우대 혜택이다. 롯데닷컴의 초반부터 모든 인터넷 쇼핑을 롯데에서 한 나는, 몇년째 플래티넘 회원이다.

배송비 2500원을 아끼려고 무료배송 금액에 맞추려고 무리를 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혜택이었다. 그런데 나는 늘, 아이들에게 "얘들아, 이 세상에 나눌 수 있는 부는 한정되어 있단다. 그런데 10%의 사람들이 부의 90%를 가져가 버리면, 나머지 90%의 사람은 10%로 어렵게 살아야 한단다. 그런 것을 나눌 줄 알아야 우리 사회가 따뜻해지는 거란다" 하고 가르쳐왔다.

배송비 2500원 지불할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조중동에만 광고하는 삼성제품을 불매하는 것은, 이런 운동을 하는 것은 윤리적 소비의 첫 걸음이다.
 조중동에만 광고하는 삼성제품을 불매하는 것은, 이런 운동을 하는 것은 윤리적 소비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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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이율배반인가? 롯데는 자선 그룹이 아니다. 구매 실적이 높은 회원에게 배송비를 무료로 해주는 만큼 이 세상 어디에는 그로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원리를 '기득권'을 갖게 되면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은 영세 납품업자일 수도, 택배기사일 수도, 또 롯데닷컴의 수많은 회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오늘, 나는 롯데카드를 해지했다. 롯데닷컴도 탈회했다. 무슨 불편 때문이냐 묻는 상담원에게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6월 초부터 생각하던 것을 오늘에야 실행했다. 49재를 넘기지 않겠다는 것은 나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꼭 기사로 써서 '나홀로의  선언'이 갖을 수 있는 무책임의 가능성을 차단하리라 마음 먹었었다. 반쪽을 잃은 것 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나는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하면서 2500원 배송비를 지불할 때마다 그의 말을, 그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태그:#노무현 49재, #언소주, #삼성불매, #제2롯데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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