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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대중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 <광장> 서문 중

작가 최인훈은 1960년 4․19 이후 첫 출간된 장편소설 <광장>을 통해 '인간은 광장과 밀실이 모두 필요하다'는 요지의 문제의식을 던졌다.

지난 1997년 여름 무렵, 나는 전공이던 국어국문학과 졸업논문 소재로 <광장>을 선택했다. 이미 고등학교 때 읽은 적이 있고 내용도 알만큼 안다는 생각에 큰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여름 내내 <광장>을 들여다볼수록 논문쓰기의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나는 고작(?) 한 편의 학사논문을 쓰느라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장편소설치고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광장>에는 광장과 밀실, 남한과 북한, 분단, 사랑, 이념 등 생각할 개념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또한 <광장>과 관련한 글들은 수많은 석․박사 논문들을 비롯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광장의 의미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광장의 의미를, 광장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인간을 밀실에 가둘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른다

<광장>의 문제의식은 유효했다. 논문을 어떻게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논문을 갈무리하며 분명히 못 박았던 건 "우리에게는 '여전히' 광장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1990년대 초중반 대학생 시절을 보낸 내가 광장이라 부를 수 있던 곳은 대학 교정이 거의 유일했다. 그 외,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정권에 맞서 집회와 시위를 위해 다녔던 서울 종로 거리 정도가 있긴 했지만, 이는 물리력을 동원해 잠시 점거했던 곳에 지나지 않았다. 닫힌 교문을 열고 너른 광장으로 나가기 위해 싸워야 했으며, 차단된 인도가 아니라 광장인 도로로 들어가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런데 <광장>은 놀랍게도 일찍이 '광장'의 문제를 이렇게 적은 것이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대중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나는 출간된 지 근 40여 년이 다 지난 <광장>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놀랐다. 정확하게 "(밀실에 가두어 버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 나는 다시금 <광장>이 던져놓은 문제의식을 떠올리고 있다. '왜 우리에게 여전히 광장은 없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광장에서는 열린 사회적 존재, 밀실에서는 닫힌 개인적 존재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의 체제를 동시에 겪는다. 작가 최인훈은 이명준의 시각을 통해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는 북한체제'와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는 남한체제'를 모두 비판했다. 결국,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한 뒤 인민군 장교로 6․25에 참전한 이명준은 남한에 포로로 붙잡힌 이후 남북한 체제에 모두 환멸을 느끼며 포로 석방 과정에서 중립국인 인도행 배에 올라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내가 보기에 이명준은 광장에서는 열린 사회적 존재로, 밀실에서는 닫힌 개인적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며 '광장과 밀실, 두 가지 공간이 모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목숨으로 설명한 것이다.

서울 00, 광화문 00, 용산 00, 평택 00….

최인훈 작가의 시각을 빌리면 00에는 당연히 '광장'이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2009년 대한민국에서 이곳은 '광장'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오랜 기간 동안 노동자의 광장이 아닌 사용자 측과 공권력을 앞세운 정부의 밀실로써 기능했다. 철거민들을 가둔 채 공권력으로 여러 목숨을 앗아 간 용산 현장도 광장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광화문 광장 역시도 대중의 광장이 아닌 서울시와 정부의 밀실이고, 늘 전경버스로 둘러싸이느라 분주한 서울 광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명준의 자살은 광장과 밀실의 소통 단절 의미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명박'은 군사독재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겪었다. 군사독재는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던 시절이었고, 민주주의는 광장과 밀실이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년 간 그나마 열려 있던 민주주의의 광장을 틀어막아 버렸다. 서울 광장을 만든 주인공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광장을 대중들에게 내어주길 한사코 꺼렸다. 청와대 목전에 공개된 광화문 광장도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칼에서 느껴지듯 퍼런 서슬을 앞세우기만 할 뿐 대중들에게 한껏 열지 않았다.

'이명준'이 꿈꾸던 '광장'은 소설 속에서 구현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가 목숨을 던져 '광장과 밀실이 모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남긴 것은. 그 문제의식은 50여 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가슴이 아프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유효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명준의 죽음은 광장과 밀실의 소통이 단절됐음을 의미한다. 광장과 밀실이 공존하지 못해 죽은 이들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여럿 존재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 마을에 가둬진 채 광장에서 소통하지 못함으로써 자살을 선택했다. 마치 이명준이 자살을 한 것처럼. 또 용산 현장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철거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든 '광장'은 서울 광장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애초 서울 광장에 담으려던 그 꿈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시민들에게 열려던 광장이었는지, 서울시와 그들만을 위하려던 밀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의 서울 광장은 후자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장과 밀실의 소통을 단절하고 있다. 서울 광장과 광화문 광장 등을 정부와 서울시, 한나라당의 밀실로 만들었다. 또한 국회를 미디어법 밀어붙이기와 부정투표로 그들만의 밀실로 만들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장>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1960년, 밀실에서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며 오랜 독재를 이어온 정부를 규탄하며 들풀처럼 타오른 4․19혁명을 기억해야 한다. 광장이 닫혔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 당시 대통령을 빗댄, 지난 5월 31일 CBS 시사자키 김용민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관련 기사 : "이 대통령은 권좌에서 쫓겨난 비참한 최후를...").

갑자기 이 대통령 생각이 납니다.

이 대통령은 교회 장로입니다.
이 대통령은 대표적인 친미주의자입니다.
이 대통령은 친일파와 손잡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정적을 정치적 타살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해 결국 도발하도록 조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야당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치는 날마다 꼬였습니다.
이 대통령 주변에는 아첨꾼들로 들끓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니까 경찰을 앞세워서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러다가 권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하더니 그곳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 대통령은 결국 국민들의 외면으로 국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쓸쓸하게 세상과 작별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광장에서 합창하고, 밀실에서 광장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 글을 쓰며 <광장>을 인용한 것은 긴 소설 내용 중 아래 문단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명준이 전해 준 '광장과 밀실은 모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이 문단에 모두 드러나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대중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산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 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광장'을 닫느라 여념이 없으신 이명박 대통령께 <광장>을 반드시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읽으셨다면, 1960년 바다에 몸을 던졌던 이명준이 지금 살아온다면 이명박 대통령께 2009년 대한민국의 '광장'에 대해 어떤 말씀을 드릴지 답을 좀 주시길 부탁드린다. 

해답에 도움을 드리는 뜻에서, 내가 이명준의 말을 빌리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남한은)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정부․서울시․한나라당의) 밀실만 푸짐하고 (대중의) 광장은 죽었습니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국민을 향한 정부․서울시․한나라당의)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태그:#광장, #최인훈, #이명준, #이명박, #서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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