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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사람과 말 잘하는 사람의 대결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상대후보와의 차별성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신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언변을 의식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 말에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잘 녹아있는 것 같다. 2년차가 되어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보노라면 말이다.

대통령은 긴 말하지 않는다. '긴 말'은 '여의도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대통령은 자신의 '여의도 정치'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곤 했다. 양복대신 점퍼입고 현장을 누비는 현장소장같은 모습을 보이길 즐긴다. 실로, 말 대신 일하는 모습으로 승부하고자 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이러한 리더십은 전형적인 CEO 형 리더십이다. 기업의 CEO는 말을(대화를)많이 하지 않는다. '지시'하기 때문이다. 현장을 누비며 스스로 모든 것을 챙기고 지시한다. 사주인 자신이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는가. 초단위로 움직이는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긴 말 할 시간이 없다. 지시하고, 움직이는 거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대통령은 (주)대한민국의 CEO를 자처한다.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킨다. 방송법, 세종시, 4대강사업,,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안의 민감성에 비해, 너무나도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참여정부때 과거사, 대연정, 언론문제 등등 시끄럽지 않은 일이 없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능력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주)대한민국은 무한경쟁의 세계 흐름에 발맞춰, 빠르게 순항하고 있는 것일까?

방송법 이슈가 한창일 때, 한나라당의 관련 간사를 맡고 있던 나경원의원이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의 도마위에 올랐다.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방송법 관련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말 때문이었다. 나 또한'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지적수준을 무시하는 듯한 그의 말이 유감스러웠다. 하지만 더욱 유감스러웠던 것은, 과로와 잠, 소시와 카라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다. 방송법, 어렵다. 언론과 언론 시장에 대한 이해 뿐만이 아니라, 미디어 산업에 대한 이해 까지 필요한 이슈였다.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잣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거다. 갑자기 방송법 얘기는 왜..?

나경원 의원의 한마디는 요즘 정책이슈들의 한 특성을 드러낸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과거,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었던 시대와 달리,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는 사회상 만큼이나 정책들 또한 쉽게 판단하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어떤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세심하게 다듬어 나가야 한다.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과 같은 국가적 이슈들에서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정답이 없기에 가능한 모든 문제점들에 대해 하나하나 점검하고 토론해야 하는 거다.  토론하기보다 먼저 움직이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불안해 보이는 이유이다.

아호(我呼)를 '청계'로 했다는 대통령. 반듯한, 직선적인 인상 그대로, 청계천은 대통령을 쏙 빼닮았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청계' '이명박'이다. 청계천 복원은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나 또한 청계천 복원을 지지했다. 그러나 복원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재가 훼손되었다는 이야기, '도심속 거대한 어항'에 불과하다는 환경주의자들의 비판을 들을 때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한번 '공구리 친' 청계천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할 때, 좀더 세심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너무나도 반듯한 지금의 모습 말고, 문화재와 환경이 살아있는 청계천을 볼 수는 없었을까? 대통령을 쏙 빼닮은, '이명박의 작품'이 되어버린 청계천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청계천은 이명박 대통령의 CEO형 리더십의 장점과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대선에서 지지했던 대통령은 아니나, 청계천 복원을 지지했듯, 4대상 사업을 지지할 용의가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한 편에 서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별로 판단하여 지지를 보낼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는 정책 방향이 아닌,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절차의 문제이다. 꼴로 보아 하니, 4대강 사업 또한 '이명박의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4대강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이명박의 너무나도 '효율적인' 그 철학에 반대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룬 바탕에는 '권리장전'과 같은 위대한 시스템이 있었으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증기기관차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한 저차원적 철학 말이다.

민주적정치와, 사회시스템은 뒷걸음치고, 편법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CEO 형 리더십. 너무나도 빠른 그 속도감이 불안하다. 국민의, 대한민국의 작품이 아닌, 또하나의 '이명박의 작품'이 나올 것이 불안하다. 앞으로 남은 3년동안, 정치와 민주주의 따위, '일'에 묻혀버릴 것이 불안하다. 한가지 더욱 불안한 것.

여기 이 신성한 참정권을 가진 한 국민의 충고,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일개 대리 쯤이 하는 말로 생각한다면, 더이상 할 말도 없는 거다.


태그:#4대강사업, #대통령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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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기쁨을 느끼고자 합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을 형성해 왔다고 믿는데 이제는 저의 작은 의견을 개시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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