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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배변에 이르는 일상의 모든 생활이 얼마나 감사한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나? 걷기도, 뛰기도, 숨을 쉬기도, 배설하기도, 생각을 하기도 하는 모든 기능을 조금도 상실치 않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이 큰 감사를 쉽게 잊고 내 힘인 양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이가 제 힘으로 배변할 수 없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해맑은 얼굴로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동시에 속옷에 하루에도 수십 번 배변을 해대는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힘들며 슬픈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하리리.

만일 내 아이가 선천성 기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기도 싫지만 이런 일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 대부분 부모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넋을 놓기 십상일 것이다. 특히 임신 중 아이가 평생장애나 기형을 안고 태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 그 정도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생명을 지우려고 하지는 않을까.

배변 주머니 단 아이 감추는 엄마의 심정

태어날 때부터 항문이 없어, 배에 구멍을 연결해 옆구리로 배변하고 있는 생후 8개월 된 민지(가명). 민지는 항문만 없는 것이 아니라 질과 요도에까지 누공이 있는 '총배설강동'(Anorectal malforamtion with persistent cloaca)이라는 심각한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총배설강동'은 배변과 관련된 선천성기형(쇄항) 중 여자아이에서 가장 치료가 힘들고 예후가 나쁜 병이다.

민지는 일시적으로 장을 절제해 장루(체외로 대변을 배설하기 위해 만든 인공항문)를 만들고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배변 주머니를 매달아 놓았다. 장루는 용변 조절능력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배설을 하게 돼 냄새와 가스배출로 인한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또 복부주위 피부 트러블 등 후유증도 많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부작용이 나타난다.

하지만, 민지의 이런 아픔은 친가와 외가 식구들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혹시라도 민지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주위에서 수군대며 손가락질이라도 당할까 봐 숨기며 전전긍긍할 뿐이다.

오늘은 옆집 새댁이 집에 놀러 왔다. 별로 반갑지 않다. 이럴 땐 오히려 부담스럽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려고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민지에게서 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부시럭부시럭'하는 배변 주머니 소리가 새어 나온 것이다. 속 모르는 새댁은 무슨 소리가 난다며, 민지에게 다가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내 예쁜 아기를 한번 안아보자고 한다. 순간 놀란 엄마는 민지를 재빨리 포대기에 들쳐 업고 만다.

엄마의 고민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예방접종이나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은 민지에게 간호사의 문진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싫은 순간 중의 하나이다.

"예방접종하는데 필요한 문진 몇가지 할게요. 혹시, 예전에 아이가 어디 아프거나 치료받은 적이 있었어요?"
"저기…… '쇄항'으로 수술받았어요."
"예? 쇄… 뭐라고요?"
"선천성기형으로 수술받았다구요…."
"정확히 무슨병이죠?"
"……."

민지는 돌을 전후하여 2~3차례의 교정수술을 기다리고 있지만 민지 가족은 닥쳐올 불투명한 미래가 암울하기만 하다. '학교생활은커녕 제대로 사람 구실이라도 할 수 있을까? 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틈만 나면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 일이 이젠 엄마의 주요 일상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다. 노오란 가방을 매고 어린이집 차에 오르는 옆집 아이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정상적인 배변은 꿈도 꾸지 못한다. 수술을 다 마친다 해도 선천적으로 괄약근이 없는지라 자라면서 심한 변실금이나 변비로 고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민지와 같은 직장항문기형은 5000명 중에 한 명꼴로 나타나는 선천성기형으로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국내에서 이를 앓고 있는 환자의 수가 대략 1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숨쉬며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고마움을 느끼세요"

보육시설에 있는 아이를 수술하고 나서 간병인 할머님들이 베풀어준 100일 잔치에서... '좋은 양부모를 만나야 하는데 걱정이다'
▲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한석주진료부장 보육시설에 있는 아이를 수술하고 나서 간병인 할머님들이 베풀어준 100일 잔치에서... '좋은 양부모를 만나야 하는데 걱정이다'
ⓒ 한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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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선천성기형 치료의 권위자인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한석주 진료부장은 "생후 3년이 지나도 배변패턴을 기대할 수 없을 때에는 미련없이 인공적으로 변실금을 조절할지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민지와 같은 아기의 예후는 모든 수술이 끝난 후에 아기가 얼마나 '정상인과 비슷하게' 배변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서 '정상인과 비슷하게'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미 출생 전부터 항문괄약근의 미성숙 문제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수술이 잘되어도 100% 정상인과 같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변을 혼자 힘으로 하지 못할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해지고 이로 인해 아이가 정신적인 상처를 받게 되어 성격형성에도 문제가 생기는 등 영구적인 문제가 남는다. 예후가 나쁜 아이의 경우에는 미련없이 예방프로그램(Bowel management program)을 시행하는것이 좋다." (한석주 교수)

예방프로그램
(BOWEL MANAGEMENT PROGRAM)
1) 예후가 나쁠 것이 충분히 예측 되면 변실금으로 하는 고생을 하지 말고 (항문이 헐고 기저귀를 차는 등)
2) 관장을 2일 간격으로 하여서
3) 대장의 대변을 모두 씻어 내고,
4) 새로운 대변이 대장을 통과하여 항문에 다다르는 기간 동안(약2일 이상)은 변실금 없이 정상 생활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내용이다.
5) 여기에 더하여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자신이 관장을 하여 변실금을 막을 수 있게
6) 선행성 관장술(항문으로 하는 관장이 후행성 관장술)이 가능하도록
7) 배에 충수를 이용하여 관장을 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주는 수술을 더하게 된다.
(도움말 : 한석주교수)

20년 전에 쇄항으로 태어나 장루수술까지 받았지만 경제적인 형편으로 병원에 가지 못해 지금까지 평생 장루를 통해 배변하고 있다는 청년, 고아원에서 두 돌이 지나도록 1차 장루수술 후 장루주머니는커녕 헝겊으로 둘둘 싸서 지낸 아이, 수술이 잘못되어 장을 거의 다 잘라내고 콩팥까지 기능을 상실한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 불행은 아니다'(헬렌 켈러)

누구나 쉽게 장애는 불편일 뿐 불가능의 이유가 될 순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장애가 불행은 아닐지라도 그 불편함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변비로 고생한다고요? 변비,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변을 한번 보려면 죽을 고생을 다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변비'마저도 부러운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숨 쉬며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고마움을 느끼세요. 기본적인 육체순환도 불가능하여 고통을 참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루었다'고 포장하기 전에 우리 민지가 눈치 보지 않고 학교를 다니고 선천성기형이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요?" (민지 엄마)


태그:#쇄항, #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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