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개인의 취향> 포스터
 <개인의 취향> 포스터
ⓒ MBC

관련사진보기


<개인의 취향>은 MBC에서 수목 미니시리즈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다.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는데, 지난 4월 21일 방영된 7회분을 보고는 기사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시나브로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 <필라델피아>를 처음 본 것은 대학생 때였다. 영화는 충격적이었다. 야한 장면이 있어 그 노출 수위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전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1980년 대에 에이즈라는 신종 질병이 처음 알려졌고, 그 질병의 원인은 동성연애를 하는 동성연애자들 때문이라고 들었다(동성애자들이 모두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동성연애자'라 부르는 건 틀린 말이지만, 그때는 동성연애자라는 용어를 썼다). 단편적으로 귀에 들어온 정보를 통해 어린 나는 동성연애자들은 변태적인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인공 앤드류 베킷(톰 행크스)과 그의 동성 연인 미구엘 알바레즈(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전혀 변태적인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성별만 같을 뿐 보통 연인들처럼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앤드류의 가족들도 미구엘을 가족의 일원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내가 가진 동성애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게이에 대한 편견을 살짝 걷어낸 <개인의 취향>

그 후 난 동성애 성향은 정신병이나 변태적 성욕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들었다. 동성애자라고 스스로를 밝힌 이가 동성애에 관해 쓴 글도 읽어 보았다. 트랜스젠더인 하리수씨가 연예인으로 활동을 했고, 홍석천씨는 커밍아웃을 한 뒤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우선 우울했고, 사회성이 짙은 경우가 많았다. <후회하지 않아>가 그랬고, <로드무비>가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안방극장에서도 큰 무리 없이 게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와 MBC <개인의 취향>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진 것이다.

전진호(이민호 분)와 커플로 오해를 받고 있는 노상준(정성화 분)이 게이인 척 하기 위해 오버 연기를 하는 모습은 많은 이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게이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보여주지만, 주인공인 전진호는 그냥 평범하게 행동한다.

최도빈 관장(류승룡)
▲ 드라마 <개인의 취향> 최도빈 관장(류승룡)
ⓒ MBC

관련사진보기


7화에서 처음 커밍아웃을 한 최도빈(류승룡 분)은 아주 멋있었다. 예전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최도빈은 심하게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인물로만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는 중후한 목소리에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남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멋진 인물이다. 그가 7화에서 전진호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없었다면, 눈치가 느린 나는 그가 게이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드라마가 동성애자들은 성적 취향만 다를 뿐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백을 듣고 전진호가 당황하기는 하지만, 과거처럼 '저 변태가 나를 덮치지는 않을까'하는 식의 편견에 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드라마 속 전진호는 자신을 게이로 오해해서 심사숙고 후 고백을 한 그에게 미안해할 뿐이었다.

최도빈도 전진호가 게이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그에게 다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서서히 그에게 마음이 갔기에 오랜 기간 심사숙고하고 나서 어렵게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사랑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왔다.

든든함과 세심함을 동시에 갖춘 그들

<개인의 취향>의 여성 등장 인물들이 전진호가 게이라는 말을 듣고도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면도 반가웠다. 그들은 참 힘들겠다면서 위로를 하며 도와주지, 변태라든가 더럽다든가 하는 기존의 편견에 찬 시선은 보내지 않는다.

예전에 홍석천씨의 인터뷰 내용 중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커밍아웃을 한 후 남자들은 홍석천씨에게 조금 거리감을 갖는 것 같지만, 오히려 여성들은 편안하게 행동한다는 내용이었다. 여자들은 홍석천씨에게 뽀뽀도 하고 껴안기도 하며, 고민도 털어놓는 등 아주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필라델피아> 포스터
 <필라델피아> 포스터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관련사진보기

<개인의 취향>에 등장하는 게이는 사실 로맨틱 코미디가 발굴한 신선한 소재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전진호는 진짜 게이가 아니라 사정이 있어서 게이인 척 하는 남성이다. 박개인은 전진호가 게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점차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가고 있다.

전진호를 가짜 게이로 설정한 것은 두 청춘 남녀가 현실적으로, 도덕적으로 전혀 죄책감 없이, 어색하지 않게 한 집안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이라고 생각했기에 박개인은 샤워하다가 수건만 두른 모습으로도 편하게 전진호를 바라보았고, 생리통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으며, 배를 쓸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한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잠들 수도 있었다.

시한부 게이 남자 친구는 부담스럽게 성적으로 집적대지 않고, 든든하게 옆에서 지켜주며, 편한 모습으로 한 집안에서 함께 있어 준다. 내가 아프면 달려 나가 약도 사다 준다. 즉, 남편의 장점인 든든한 면과 여자 친구의 장점인 세심하게 보살펴 주는 면을 한 몸에 갖춘 존재인 것이다.

또, 시한부 게이 남자 친구는 집에서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기에 박개인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비록 박개인이 김인희(왕지혜)처럼 예쁘고 세련되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김인희는 거부하지만 박개인은 점차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사실 이 부분은 매우 거슬린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손예진이 예쁘지 않고 여자답지 않다고 말하지만, 제발 못생긴 배우를 쓰고 그런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손예진처럼 하늘에서 강림하신 듯한 선녀를 그리 말하니 누가 믿겠는가!).

성소수자들 보듬어주는 드라마 됐으면...

이런 면에서 <개인의 취향>은 게이라는 존재를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소재로 썼을 뿐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시사 프로그램에나 나오던 소재가 로맨스의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변화다. 물론 진짜 동성애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일상적인 소재가 되는 것이 편견을 없애고 사회가 성소수자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 정서상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 미국 영화 <인 앤 아웃>처럼 전진호를 진짜 게이가 되는 남자로 그릴 것 같지는 않다. 우여곡절 후 박개인과 서로 사랑하게 되는 설정으로 그릴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 바람으로는 전진호가 최도빈과 사랑하게 하면 어떨까 싶다.

7화에서 서로를 알아가자며 어렵게 고백을 했을 때 최관장의 진심에 가슴이 아렸고, 한창렬(김지석 분)이 최관장을 이용한 것이냐며 전진호를 다그칠 때 그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최도빈 관장의 눈빛이 너무나 슬펐기 때문이었다. 마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는 듯 가슴이 아파왔다.

이 드라마는 그저 게이를 하나의 소재로 쓴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드라마의 힘으로 우리 사회의 성적 소수자들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역할도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개인의 취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