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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23일 오후 10시 30분]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 측이 불법적으로 전화 홍보원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벌인 게 드러나면서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엄 후보는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 행동"이라는 입장이지만 파장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불법 콜센터'가 운영된 펜션에서 엄 후보의 명함을 찾아내는 등 불법 선거운동과 엄 후보의 연관성을 명확히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건이 터진 지 하루가 지난 23일, 양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사무실은 어떤 모습일까. 직격탄을 맞은 한 쪽에서는 당황해 하고, 직격탄을 날린 한 쪽에서는 환호를 지르고 있을까. 양 후보의 춘천 선거사무실을 찾았다. 더불어, 전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강원도지사 선거에 대한 춘천 시민들의 속마음도 살짝 엿봤다.

 

[엄기영 선대위] "지지자들 결집" 자신... 당혹감 감추지 못해

 

23일 오후에 찾은 엄 후보의 춘천 선거대책위원회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30여 명이 단체로 '엄 후보 지지방문'을 온 터였다. 그 덕에 '불법 선거운동 사건'의 여파를 크게 느낄 수 없을 정도의 활기가 감돌았다.

 

엄 후보의 정군기 특보는 "최 후보 쪽에서 너무 세게 나오니까 우리 쪽 지지자들이 오히려 결집이 될 수 있다"며 "어르신들의 방문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이 꼭 악재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다.

 

언론·홍보를 담당하는 최수영 특보 역시 "이번 사건이 우리와 무관하기 때문에 우리가 영향을 받을 일이 없다"며 "우리는 지금까지 포지티브 선거를 치러오면서 도민들로부터 체감한 지지가 있기 때문에 이 기조대로 가면 선택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그는 "명백한 정치 공세이기에 유권자가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 후보 쪽 캠프에서는 '대가성 없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벌인 일'일 뿐이니 사안 자체가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정 특보는 "(선거 운동원에게) 일당을 줬다는 물적 증거 즉, 일당 5만원이 담긴 흰 봉투가 발견됐다면 모르겠는데, 일당을 줬다는 게 (경찰에서) 밝혀진 것도 아니고 사안이 큰 게 아니"라며 "금품 수수도 아니고, 매수 행위도 아니고 허위 사실 유포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원을 모집한 것으로 드러난 한나라당 당원 김아무개씨에 대해서도 정 특보는 "과잉 충성 지지자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엄 후보가 회장으로 있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지원 민간단체협의회'가 이번 사건에 깊게 연루돼있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경찰이 판단할 일"이라고 함구한 정 특보는 "민주당 소속 화천군 군의회 이재원 부의장이 지역주민의 동의 없이 부재자 신고서 8장을 작성해 제출해 화천군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조치한 건 등 민주당이 걸린 것도 세 건이나 된다"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파장은 크다고 봤다. 정 특보는 "솔직히 당혹스럽다, 어떻게 극복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며 "어제 펜션 현장에서 아주머니들이 나오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와서 마치 주부 도박단같아 보였다, 사진이 너무 자극적이라서 유권자가 봤을 때 그림이 안 좋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엄 후보는 남은 선거기간 어떤 전략으로 임할까. 최 특보는 "일, 월, 화 3일 동안에는 철저하게 포지티브 선거·정책 선거로 나가 새로운 공약도 내놓으며 흔들림 없이 갈 것"이라고 전했다.

 

엄 후보는 내일(24일), 오전 4시 40분부터 '원주 부활절 기념예배'를 시작으로 춘천과 원주 곳곳을 돌며 빼곡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불법선거운동' 파장에 소극적으로 임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최문순 선대위] "흥분할 때 아냐" 조심하지만, '막판역전' 기대감 새어나와

 

최문순 후보측 선거대책위원회 사무실은 오전에 치러진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 불법·부정선거 진상조사단' 기자회견을 준비하느라, 오후에 있을 생방송 TV 토론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달뜬 모습은 아니었다.  

 

최 후보측 이영환 보좌관은 "새옹지마"라며 "이 쪽에서 호재라고 생각하는 게 꼭 상대편에게 악재로 작용하란 법이 없어서 흥분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무된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우리 페이스대로 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늘 오후 치러질 토론회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예정이다. 이 보좌관은 "난타전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원도에서 이렇게 대형 사건이 터진 적이 없어 도민들이 이 사안을 부끄러워한다, 자꾸 끄집어 낸다고 해서 강원도민이 좋아하는 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것이지만,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상호 민주당 강원지사 선거대책위 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강릉을 흔들 것"이라고 봤다. 우 대변인은 "경찰서에 잡혀간 선거홍보원 30여 명의 아주머니들과 가족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은 한나라당에 분노하고 있을 것"이라며 "강릉 곳곳에 포진돼 있는 30여 명의 아주머니들이 '동네 민심'을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 대변인은 "이번 주말을 거치면 판세가 뒤집힐 것"이라며 "강원도에 만연한 반한나라당 정서와 이광재 동정론에 이 건까지 발생했으니 상당히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엄 후보 측의 대응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보좌관은 "얼추 추산만 해도 억대의 비용이 들어간 선거운동인데 후보는 몰랐다, 자원봉사자의 일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손으로 해를 가리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하나로 해를 가리는 짓"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보좌관은 "엄 후보 측에서는 민주당에서도 이런 위반 사례가 있다며 물타기를 하려고 하지만 잘 먹히지 않을 것"이라며 "경찰 조사하면 다 밝혀질 것이고 최종 책임은 엄 후보가 질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남은 선거 기간 동안의 전략에 대해 이 보좌관은 "선거 전 날인 26일에는 전 당직자들이 강원도를 뛰며 최대한 많은 이들을 만나고 호소드릴 예정이다, 아직은 추격자 아닌가"라며 "할 수 있는 건 다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 후보 역시 남은 토론회 준비에 올인한다는 계획이지만 그 이후에는 대면 접촉 범위를 최대한 넓혀 많은 도민을 만날 예정이다.

 

[시민들] "엄기영에 실망"...."사람들 쉽게 바뀌지 않아, 뚜껑 열어봐야"

 

"엄기영씨는 언론인으로서 자존심을 버렸어요."

 

강원도지사 선거에 대해 묻자 김명수(53)씨는 엄 후보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냈다. 김씨는 "엄기영씨에 대해 존경할 만한 점이 있다고 봤다, 강원도 개천에서 용난 격 아니냐"며 "그런데 한나라당으로 옮기고, 이번 일도 터지고 많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르신들이야 얼굴만 보고 뽑으니 엄 후보가 유리하겠지만 젊은 층들에게는 이번 사건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엄 후보의 불법선거운동의 파장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직접 만나 본 춘천 민심은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사건이 유권자들에게 '재고의 여지'를 준 것은 읽혔다. 춘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이아무개(53)씨는 "앵커로서 엄 후보에 대한 느낌이 좋았는데 이번에 다시 봤다"며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 누굴 찍을지 정하진 않았는데 생각이 많아졌다'고 하더라"며 주변 여론을 전했다.

 

아예 투표를 않겠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등산복 차림으로 버스를 기다리던 서아무개(65)씨는 "부정한 짓들을 하는 걸 보면 믿음이 안 간다"며 "관심이 완전히 사라져 투표하러 가기도 싫다"고 잘라 말했다. 김 아무개(26)씨 역시 "엄기영 후보를 좀 좋아했는데 실망했다"며 "그동안 꼬박꼬박 투표했는데 이번에는 투표할 마음이 안 난다"고 말했다.

 

김상갑(67)씨는 이 같은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것이다. 김씨는 "엄 후보의 부정선거 사건은 강릉에서야 영향을 주겠지만 춘천에서는 그렇게까지 크게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리는 여론 전달처'인 택시를 운영하는 이종표(55)씨는 역시 "사람들이 그런 사건 하나로 쉽게 성향을 바꾸진 않을 것"이라며 "부동층에는 약간의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태그:#엄기영 , #최문순, #강원도지사, #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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