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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내일 휴가야."

 

지난 13일, 아내의 뜬금없는 휴가 선언이다. 아내는 요양병원 간호사다. 한 달 중에 하루휴가를 낸다. 평일에 급한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한 휴가제도인 듯하다. 그때 아내는 관공서일, 은행업무 등을 보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르다. 전혀 그럴 일이 없는데 말이다.

 

"여보, 내가 왜 휴가 낸 줄 알아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건 말이야........ 냉이 캐려고. 호호호호호"

 

헉, 이거 무슨 소리. 병원도 요즘 바쁠 텐데. 물론 휴가는 반드시 사용하게 되어 있으니 뭐라 할 거야 없다지만. 유쾌하게 웃는 아내를 보며 황당한 건 나였다.

 

그렇다. 요즘 아내는 지독한 '냉이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겨울 냉이에.

 

겨울에 무슨 냉이냐고. 요즘 날씨가 많이 춥지 않으니 우리 마을 들에 가면 냉이가 피어 있다. 11월 중순쯤 아내와 처형이 우리 마을 '냉이 캐기 작전'에 돌입했다. 처형이 우리 마을에 와서 아내를 부추겼다. 요즘 냉이가 봄 냉이보다 좋으니 캐러가자고. 두 사람은 '쿵짝'이 잘 맞아 들어갔다. 그날 아내와 처형이 많이도 냉이를 캤다. 내가 무거운 냉이 두 자루를 들고 오느라 식겁했다.

 

12월 초순에 또 아내 혼자서 들에 나갔다. 이날은 저녁 무렵이었다. 물론 나는 짐꾼으로 따라 붙었다. 아내가 냉이를 캐면 나는 옆에서 흙을 털어 자루에 담는 역할을 했다. 이 날도 거의 반 자루를 캤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워낙 냉이가 모여 있어서다. 바야흐로 냉이 밭이다.

 

그리고 오늘 14일, 아내와 오전에 산행을 하고 왔다. 산행을 하면서도 아내의 몸은 산에 있지만, 마음은 냉이 밭에 가 있었다. 산행하면서도 빨리하고 내려가자는 아내의 속이 다 들여다 보였다. 부리나케 산행을 하고 마을로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보야. 우리 냉이 밭에 가자. 당신이 같이 가 줘야지~"

 

아내가 평소 안 하던 코맹맹이소리까지 내면서 부탁한다. 여자의 애교에 안 넘어갈 남자 있던가. 따라나섰다. 오늘도 아내는 냉이를 캐고, 나는 따라다니며 냉이 흙을 털어 자루에 담는다. 아내는 캐고 또 캐고. 나는 털고 또 담고. 이렇게 1시간가량 하니 냉이가 많이 보이질 않는다. 소위 끝물인 셈이다. 하기야 12월 중순에 냉이가 있는 것도 신기한 일 아니었던가.  

 

이렇게 신나게 캔 냉이를 한 자루 등에 지고 집으로 간다. 아내는 가자마자 야외 수돗가에서 냉이를 씻는다. 수도를 틀어 씻고 또 씻고. 흙이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십수 번을 반복한다. 날씨도 찬데 아내는 그저 신났다. 그게 다가 아니다. 씻은 냉이를 대야에 담아 안방으로 가져간다. 그 냉이를 일일이 다듬고 가려낸다. 잡초가 군데군데 섞여 있다. 마른 잎은 떼 내어야 한다. 그런 냉이를 봉지 봉지에 담는다.

 

아내가 이렇게 이 일을 즐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나누는 기쁨 때문이다.

 

아내는 그 다음날 그 봉지를 누구도 주고, 누구도 주고, 누구도 줬다며 내게 보고한다. 아니 자랑이 맞겠지. 심지어 딸아이(고2)에게도 봉지를 건네준다. 딸아이 담임선생님과 미술선생님에게도 전해주라고. 그걸 딸아이는 또 받아서 자랑스레 학교로 가져간다. 모전여전 아니랄까 봐. 사실 지난 번 냉이를 캐서도 아내는 그랬다.

 

오늘 아내와 컴퓨터로 채팅하면서 아내가 또 한마디 건네 왔다.

 

"병원의 누구누구도 전해줬어 여보. 그리고 냉이가 간에 그렇게 좋대. 냉이가 보약이야 보약."

 

누가 내 아내 좀 말려줘요. ㅋㅋㅋㅋ

 


태그:#냉이, #송상호, #송상호목사, #더아모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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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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