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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관 큰스님 영결식 중 이운행렬은 가야산 자락에 범람하는 물줄기 만큼이나 엄청났습니다.
 지관 큰스님 영결식 중 이운행렬은 가야산 자락에 범람하는 물줄기 만큼이나 엄청났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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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고개로 올라서 차창 밖 온도를 알려주는 지시계를 바라보니 -10℃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살갗이 따끔하도록 춥습니다.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춥고 졸립니다. 춥고 졸리다는 투정조차도 살아있기에 누릴 수 있는 자각이려니 하고 생각하니 피식하며 웃음을 짓게 됩니다.

걸핏하면 차가 막히는 답답한 세상이지만 새벽길만큼은 시원스레 달릴 수 있어 좋습니다. 산사를 찾아가는 오솔길만큼이나 한적한 고속도로를 느긋한 마음으로 달리며 생전에 뵙던 지관 스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백색 한지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어느 달필가의 필체처럼 지관 스님을 생각하면 두 가지 모습이 거침없이 연상됩니다.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항상 뭔가를 보고 계시던 모습입니다.

학승 지관 스님, 항상 뭔가를 읽고 계시던 모습

총무원장이 되시기 전 모습이야 뵌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2006년 이후, 종단의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뵙던 지관 스님은 행사장에서 배포되는 안내 책자 일지라도 정말 열심히 읽고 계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려 한 눈으로 건성건성 훑는 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읽고 계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관 스님 생전 (2007년 10월 7일)의 모습
 지관 스님 생전 (2007년 10월 7일)의 모습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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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스님께서는 항상 뭔가를 읽고 계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관 스님께서는 항상 뭔가를 읽고 계시는 모습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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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붙는 '학승'이라는 첨언이 꾸밈말이 아니라 항상 공부하던 스님의 일상을 단박에 대변할 수 있는 함축어 임을 실감합니다. 항상 뭔가를 읽고 계시던 학승의 모습에 이어 두 번째로 떠오르는 모습은 '권력무상'입니다.

아주 주관적이고 두루 보지 못함에서 오는 섣부른 편견일지 모르지만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와 총무원장 임기를 마치고 난 후 행사장에서 뵙는 지관스님의 모습에서 떠올릴 수 있는 연상 단어는 '권력무상'이었습니다.

조계종단에서 총무원장의 권한과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세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관 스님께서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 주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대단했습니다. 노소를 가리지 않는 스님들이 여기저기서 인사를 올리고, 법랍 높은 노승들조차 깍듯한 모습으로 합장배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을 훤하게 밝히고 있는 보경당으로 들어서니 밤샘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30여명의 신도들과 상주가 된 예닐곱 분 정도의 스님들이 조문객들을 접객하고 있었습니다.
 불을 훤하게 밝히고 있는 보경당으로 들어서니 밤샘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30여명의 신도들과 상주가 된 예닐곱 분 정도의 스님들이 조문객들을 접객하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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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행사장이면  햇살조차도 일산(햇빛을 가리는 우산)으로 가려주니 조선시대의 왕가 행렬이라도 보는 듯한 대단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총무원장 임기를 마치고 난 이후 행사장에서 뵙는 스님은 단지 법랍이 오래된 노승 한 명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그냥 노승에 걸 맞는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읽고 있는 노승의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어쩜 아주 당연한 변화, 달라진 위상에 따른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달라진 지관 스님의 주변 분위기와 모습에서 권력무상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건 흔들리는 깃발을 보며 바람과 깃발 중 어느 것이 흔들리는가를 보려고 하는 속세인의 어리석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해인사의 아침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해인사의 아침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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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집을 나서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를 2시간 남짓 달려 해인사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서 있는 공터에 주차를 하고 의자를 젖혀 누웠습니다. 차 안의 온기를 즐기며 생전에 뵙던 지관 스님의 모습을 캄캄한 어둠에 이렇게 저렇게 그리다 보니 어느새 6시가 되었습니다. 까만 허공에 마음의 붓으로 그려보는 지관 스님의 모습은 여전히 뭔가를 읽고 계시는 학승의 모습입니다.

오늘 해인사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의 마음 '왕생극락'

소복을 한 조등, 전구 없이 내걸린 하얀 조등에 쓰인 '왕생극락'이라는 네 글자가 오늘 해인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일 것으로 짐작하며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일주문에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얼마 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다져진 눈길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에 고요한 아침 공기가 흔들립니다.     

봉황문과 해탈문을 지나 들어선 영결식장, 보경당 주변은 적막하리만큼 조용하기만 합니다. 조명을 받고 있는 영결식단, 위패와 향로향합, 촛대와 청수그릇, 두 개의 청잣빛 항아리 그리고 조화의 연꽃만으로 치장을 하였을 뿐 어떤 제물도 차려지지 않은 영결식단만이 까만 어둠을 바탕으로 총천연색으로 도드라집니다. 떡 한 조각, 대추 하나 보이지 않지만 계율 청정한 수도승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식단입니다.

미리 찾아가 본 해인사 다비장과 연화대
 미리 찾아가 본 해인사 다비장과 연화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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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훤하게 밝히고 있는 보경당으로 들어서니 밤샘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30여명의 신도들과 상주가 된 예닐곱 분 정도의 스님들이 조문객들을 접객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을 밝히고 있는 조명을 따라 해인사 경내를 한 바퀴 더 돌았지만 인적 드물게 조용하기만 합니다.

한 시간쯤을 그렇게 머물며 영결식장에 놓인 의자 수를 셉니다. 하나, 둘, 셋… 행사장에 놓인 의자는 500개 남짓합니다. 참석 인파를 셈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주변이 훤하게 밝은 7시에는 일주문으로 나와 가야산과 해인사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원당암으로 올라갔습니다. 시간이 이르기도 하지만 가야산 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거스르는 역광 조망이라서 그런지 해인사의 전경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7시가 조금 넘으니 사람들이 밀려듭니다. 정차를 하는 버스마다 수십 명 씩의 사람들을 내려 놉니다. 몰려드는 인파로 해인사 경내가 조금씩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8시 40분경 연화대가 마련된 다비장을 향해 출발합니다.

3000여명의 추모객 속에 진행된 영결식
 3000여명의 추모객 속에 진행된 영결식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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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다비장은 해인사에서 나와 남서쪽으로 오리(약 2.5Km)가 넘게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산 속, 해인사 공용주차장을 지나 진주여관에서 건너편 쪽으로 올라가는 산비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연화대는 일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철골을 세우고 비닐을 덮어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비닐에 가려진 연화대 너머, 산 위쪽으로 펼쳐진 병풍과 차려진 제물이 보입니다. 연화대를 만들기 전에 연화대를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들 것을 산신께 고하는 산신제를 지낸 흔적입니다. 

연화대는 원형으로 지름 10m은 돼 보이는 시멘트불록로 바닥 가운데 투박한 모습으로 꾸려져있었습니다. 이미 만들어져 그 안쪽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다비를 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해인사 영선과장 성계웅(54)씨로부터 자세하게 설명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인사 보경당 앞마당에서 봉행 된 지관 스님 영결식
 해인사 보경당 앞마당에서 봉행 된 지관 스님 영결식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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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큰스님 영결식
 지관 큰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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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큰스님 영결식
 지관 큰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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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큰스님 영결식
 지관 큰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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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로 법구를 올려놓을 철상을 만들어 그 위에 법구를 올려놓을 공간을 만들어 놓고, 주변으로 참나무를 쌓고 숯을 위쪽에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후 그 주위를 통나무를 켜고 남은 조각을 둘러 철사로 매고, 다시 그 위를 흰 천으로 두르고 색종이로 연꽃 문양이 나도록 장식을 한 상태였습니다. 

다비장을 둘러보고 30분쯤을 터덜터덜 걸어 다시 영결식장인 보경당 앞마당으로 돌아오니 몰려든 인파들로 북적댑니다.

3000여 명의 인파, 300여 개의 만장

오전 11시, 보경당 앞마당에 마련된 영결식에서는 종단장 식순에 따라 지관 스님의 영결식이 시작됩니다. 범종을 다섯 번 울리는 명종에 이어 삼귀의, 영결법요(헌다, 헌향) 후 지관 스님의 영전에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금관문화훈장을 올렸습니다.

지관 큰스님 영결식
 지관 큰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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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사를 하고 있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
 영결사를 하고 있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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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객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심상정 공동대표, 송영길 인천시장, 한나라당 주호영, 최병국, 권영세 의원과 같은 정치인 등도 보입니다.
 조문객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심상정 공동대표, 송영길 인천시장, 한나라당 주호영, 최병국, 권영세 의원과 같은 정치인 등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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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큰스님 영결식
 지관 큰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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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어를 하고 있는 조계종정 도림법전 대종사
 법어를 하고 있는 조계종정 도림법전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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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큰스님 영결식
 지관 큰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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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인파와 영결식장을 에두르고 있는 만장 수를 무더기 무더기로 뭉툭뭉툭 셈해 보니 3000여 인파에 넉넉잡아 300여 개의 만장으로 어림됩니다. 조문객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심상정 공동대표, 송영길 인천시장, 한나라당 주호영, 최병국, 권영세 의원과 같은 정치인, 김해 봉화산에 있는 정토사 선진규 법사 등도 보입니다.

지관 스님이 살아 온 길인 행장을 해인사 주지인 선각 스님이 소개하고, 추도 입정,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영결사,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의 추도사, 호계원장 법등 스님과 금산사 주지 원행 스님의 조사가 이어집니다.

대통령 조의문을 최광식 문화체육부 장관이 대독하고, 일곱 명의 합창단이 조가로 '지관스님'이란 곡을 합창하고 각계 대표의 헌화와 분향, 조의 및 조전 소개, 문도대표의 인사말과 사홍서원으로 영결식을 마치고 이운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관 스님 법구 이운 행열
 지관 스님 법구 이운 행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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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앞에서 영결종천을 고하는 운구행렬
 일주문 앞에서 영결종천을 고하는 운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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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스님의 법구를 캐딜락으로 옮겨 모신 이운 행렬
 지관 스님의 법구를 캐딜락으로 옮겨 모신 이운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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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시작 전에 영결식장 뒤, 10명이 멜 수 있도록 각목으로 만들어진 상여 틀에 가사만으로 갈무리 해 모셔져 있었습니다. 만장이 영결식장 뒤로 나가는 길 양옆으로 도열하고 그 가운데로 10명의 스님들이 멘 지관스님의 법구가 일주문 밖까지 이운됩니다.

대만 불광산사 방장 성운 스님 친필 만장이 제일 앞?

일주문 앞에서 해인사를 쪽을 행해 영결종천의 예를 갖춘 스님의 법구는 장의차량인 캐딜락으로 모셔집니다. 부도전 앞에서 잠시 멈춰 선조 고승들께 하직인사를 올린 운구행렬이 가야산 자락으로 흘러내립니다. 

범람하는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듯이 엄청난 인파가 비탈진 산길을 내려 걸으니 위압적이라 할 만큼 웅장하고도 장엄합니다. 알록달록한 만장이 다가오는 모습은 어떤 절벽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대만 불광산사 방장 성운 스님이 보내 왔다는 친필 만장 “慧燈西去”(지혜로운 등이 서방정토로 갔다)
 대만 불광산사 방장 성운 스님이 보내 왔다는 친필 만장 “慧燈西去”(지혜로운 등이 서방정토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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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하는 물처럼 가야산 길을 내려 걷는 운구 행렬
 범람하는 물처럼 가야산 길을 내려 걷는 운구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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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 큰스님 이운행렬
 지관 큰스님 이운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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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 행렬
 이운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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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 행렬은 대만 불광산사 방장 성운 스님이 보내 왔다는 친필 만장 "慧燈西去"(지혜로운 등이 서방정토로 갔다)가 제일 앞서고 인로왕번과 명정, 삼신불, 그리고 오방번, 무상게, 법성게 등의 순서였습니다. 오방번 순서도 예전의 종단장에서 보았던 순서와 달랐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있을 수 없겠지만 지금껏 봐왔던 종단장과는 그 행렬 순서가 영 다릅니다. 대만 불광산사 방장 성운 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세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 스님이 써 보낸 친필 만장이 지관 스님 운구행렬의 상징으로 인식 될지도 모를 만큼 제일 우선 순위가 되어 있으니 한국불교는 물론 대한불교 조계종단이 왜소해지는 느낌입니다. 좀 더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불교계조차도 사대적이고 대외 의존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니 운구행렬을 따르는 발걸음은 무거워 지고 바라보는 눈길이 껄끄럽습니다.  

어쩜 "慧燈西去"이 지관 스님의 원적을 상징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고 할지라도 아름아름 유지되는 의례절차를 거스르는 것은 삼갔어야 할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유도 설명 못하고, 원칙도 없이 지내는 세속의 상제례에 대한 가장 속편한 대답이 '가가례家家禮'이듯이 대한불교 종단장 또한 처처시시례(處處時時禮 : 곳과 때에 따라서 달라지는 예)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다비장으로 가는 비탈길을 치솟아 오르고 있는 운구행렬
 다비장으로 가는 비탈길을 치솟아 오르고 있는 운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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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 그리고 거화와 함께 울려퍼진 '스님, 블 둘어갑니다."
 연화대 그리고 거화와 함께 울려퍼진 '스님, 블 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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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관 스님 영정
 연화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관 스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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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자락을 뒤덮은 연화연
 가야산 자락을 뒤덮은 연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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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재화 되어가는 연화대
 점차 재화 되어가는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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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끝이 불미스러웠지만 얼마 전인 2011년 9월,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편찬으로 재가신도를 위한 상례와 제례를 지내는 법 <불교 상제례 석안내>가 출간되었습니다. 불가에는 '석문의범(釋門儀範)'이라는 의례요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단장 대상의 폭이 넓혀진 만큼 종단장를 치러야 할 기회도 그만큼 늘어날 것입니다. 이에 석문의범을 실질적으로 적용 운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확인해 매뉴얼 화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범람하는 물처럼 가야산 자락을 구비 친 운구행렬이 다비장으로 가기위해 가풀막진 비탈길로 들어섭니다. 맨몸으로 걸어도 숨이 차오를 만큼 비탈길이지만 솟아오르는 용오름처럼 걸릴 것 없이 올라갑니다. 스님의 법구만 캐딜락으로 이운할 뿐 위패를 모신 영여, 영정, 향로는 물론 모든 추모객들이 뒤따르기에 자칫 힘겨워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연화대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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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을 내뿜기 시작하는 연화대
 불길을 내뿜기 시작하는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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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장에 도착한 스님의 법구를 연화대에 모십니다. 사람들이 연꽃잎처럼 연화대 주변을 겹겹이 둘러쌉니다.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는 동안 거화를 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전강제자인 승원 스님의 선창으로 모든 대중들이 불·법·승을 연호하니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종단 주요 소임자, 해인사를 대표해 주지 선각 스님, 본사를 대표해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 문도 대표 등 25명의 스님들이 연화대에 불을 붙이는 거화를 합니다.

연화대에 거화를 하니 연화대를 에두르고 있던 수천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는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는 소리가 산천초목을 흔들고 가야산 자락을 움찔거리게 할 만큼 커다란 울림으로 맑은 하늘에 공진을 일으킵니다.

혜총 스님의 '나무아미타불' 정근소리 큰 울림 돼

거침없이 타오르는 불길을 뒤로하며 하나 둘 하산을 시작합니다. 아미타불 정근이 잠시 멈추는 가 했더니 소리만으로도 법랍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 할 수 있는 나무아미타불 정근 소리가 시작됩니다.

법랍이 57년이나 되는 노스님, 얼마 전까지 제5대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 소임을 역임한 혜총 스님이 요령을 흔들며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고 계셨습니다. 스님들이 하시는 정근(독경) 소리를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가슴을 뭉글거리게 할 만큼 감동적인 독경입니다.

혜총 스님의 나무아미타불 정근은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습니다.
 혜총 스님의 나무아미타불 정근은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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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치는 죽비소리가 느껴지는 결기, 상처 난 마음을 아우르는 푸근함, 봄바람을 희롱하고 있는 아지랑이 같은 리듬, 가을 산하를 수놓는 단풍물결 같은 구비가 한여름의 폭풍처럼 가슴을 울립니다.

혜총 스님의 아미타불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듯 연화대를 돕니다. 훨훨 불타고 있는 연화대, 연화대를 돌고 있는 사람들이 내딛으며 만들어 가고 있는 원융무애한 발걸음과 어우러진 독경소리에 왜소해졌던 마음, 껄끄러워졌던 눈길조차 시나브로 편안해지니 무의식 중에 나무아미 아미타불 정근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항상 뭔가를 읽고 계시던 학승, 권력무상을 연상하게 하던 노승으로 기억되던 지관 스님이 이젠 활활 타오르는 연화대의 불꽃과 함께 '생자필멸'이라는 네 글자가 덧대어져 기억될 것입니다.

서방정토로 간 지혜의 등불, 지관 스님이 그리울 뿐입니다.
 서방정토로 간 지혜의 등불, 지관 스님이 그리울 뿐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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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불타고 있는 연화대를 뒤로하며 헉헉거리며 걸어 올라갔던 길을 터덜터덜 내려 걷습니다. 올라가야 하는 길은 그냥 발을 들었다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힘든 길이었는데 내려 걸어야 하는 길은 앞으로 내닫으려는 몸을 자제시켜야 하니 조심스럽습니다.

오르는 길도 힘들고 내려 걷는 길도 힘들지만 힘들고 힘든 것 역시 살아있음의 자각이며, 법랍 66년, 세수 80세에 공부를 마치신 지관 스님께서는 놓고 가신 현세의 이고득락(離苦得樂)임을 알기에 오르내리는 발길이 생생할 뿐입니다.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無常肉身 開蓮花於娑婆
幻化空身 顯法身於寂滅
八十年前 渠是我
八十年後 我是渠

지관 큰스님의 임종게 역시 오르내리던 발걸음만큼 되뇌어 보지만 소리는 귀로 들리고, 사물은 눈으로만 보일 뿐이니 서방정토로 간 지혜의 등불이 그리울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해인사에서 봉행된 지관 큰스님 영결식에는 1월 6일 다녀왔습니다.



태그:#지관 큰스님, #해인사, #다비식, #혜총 스님, #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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