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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는 못갔어도
▲ 당당한 그의 발걸음 5.18 광주는 못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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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종북주의라는 유령이. 보수신문들은 이와 관련하여 연일 야당을 맹비난 중이며, 보수단체들 역시 호국의 달 6월을 맞아 적극적으로 빨갱이 사냥에 가담하고 있다. 주거니 받거니, 두 주체가 서로 도와가며 뉴스를 만들고 배포하는 꼴이란.

종북주의라는 유령

더욱 가관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이다. 지난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식에 참석은커녕 기념사마저 생략했었던 MB는 최근 종북주의 논란과 관련해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라디오 연설에서는 "북한의 주장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 세력은 더 큰 문제"라더니,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어떤 자들도 국민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종북주의에 대한 추상같은 비판과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밝히신 우리 가카.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로 보아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발언을 대통령 자신이 했다는 것이다. 과연 MB는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는가?

우선 종북주의를 보자. 종북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그 종(從)의 대상이 우리의 '주적' 북한이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지금은 휴전 중이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은 포용의 대상이요, 대화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주적'이란 개념은 변할 수밖에 없다. 90년대 이후 역사의 방향이 바로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종북주의의 문제는 종북의 '북(北)'이 아니라 '종(從)'이다. 무비판적으로 대상을 따르되,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세. 물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생각은 자유겠으나, 이를 남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곧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는 종북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대놓고 미국을 추종하는 종미 세력이기 때문이다. 뼛속 깊이(To the core) 친미라 자칭하는 이들이 어찌 종북과 자유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하물며 안보 문제다. MB정부는 최소한 안보와 관련해서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어쨌든 현 정부 들어서서 한반도의 위기는 가장 고조되었고,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대응도 가장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짓이라면서 정작 응징은 하지 못한 채 연평도를 포격 당하고, 그래 놓고서는 사과해달라며 돈 봉투를 바치는 정부. 그뿐인가. 그들은 롯데그룹의 특혜를 위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남 공군기지마저 무력화시켰던 세력이다.

따라서 MB는 현재 사태에 대해 부디 조용하길 바란다. 현 정부는 이번 사태에 있어서 왈가왈부 할 자격이 없다. 물론 최근 MB의 발언들은 차기 정부를 의식한 립 서비스의 성격이 짙지만 어쨌든 그마저도 부끄러울 뿐이다.

박근혜의 프레임

그래도 현 정부는 자격이 없다
▲ 순국선열을 위해 그래도 현 정부는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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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MB의 호소와 달리 이번 종북주의 사태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현재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대응이다. 결국, 그것이 박근혜의 관점이요, 향후 대선까지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당의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국민들이 MB에 대한 심판의 주체로 박근혜를 인정하는만큼, 그녀의 시각은 MB의 시각과 그 급을 달리한다.

현재 새누리당은 종북주의와 관련하여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겉으로는 종북주의 논란을 확대재생산하며 정국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지만, 박근혜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언제든지 정국이 변한다 싶으면 쉽게 발 뺄 준비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통합진보당 일부 위원의 제명 건에 방점을 찍음으로서 보수언론과 그 결을 조금 달리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종북주의에다 모든 걸 올인하며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보수언론들과 달리, 새누리당은 '국가관, 자유' 등과 같은 개념어를 써가며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12월 총선에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종북주의 논란을 즐기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는 결국 현재 박근혜를 둘러싼 세력들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현재 박근혜 주위에는 소위 7인회라 불리는 3공, 5공 출신의 올드보이들이 포진되어 빨갱이 사냥을 주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복지를 중요한 시대적 요구로 인식할 수 있는 세력들 역시 공존하며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상돈 교수와 같이, 박근혜가 색깔론의 선봉에 서서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얻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세력 역시 존재한다.

야권의 새로운 프레임

종북주의 척결, 자유민주주의 수호
▲ 대통령의 결단 종북주의 척결, 자유민주주의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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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새누리당의 투트랙 전략에 맞서서 야권은 무엇을 해야 될까? 지금과 같이 색깔론에 맞불을 놓아야 할까?

아니다. 해묵은 색깔론 논쟁은 불리하다. 정작 그 논쟁에서 박근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일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이념전쟁은 사람들을 피곤하게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여당으로서는 대선의 승리를 위해 투표율을 낮춰야 하는데, 계속되는 색깔론은 의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듦으로써 국민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키우는 가장 좋은 기제인 것이다.

예컨대 이해찬 전 총리는 북한 인권이나 종북주의 관련하여 신매카시즘을 운운하고 나섰는데, 그것은 정확한 인식이나 적절한 대응은 아니다. 어차피 흘러간 색깔론은 더이상 국민에게 약효가 없다. 천안함 침몰에도 야당이 승리한 6·4 지방선거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야권은 여당이 짜놓은 색깔론 프레임에 걸려들지 말고 오히려 다른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새로운 프레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킨 뒤 역으로 여당을 압박함으로써 대선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해찬 후보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북한 인권법'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이 종북 용공을 조장하고 사상검증이니 자격심사니 하며 대대적인 이념공세를 자행하고 있다"고 색깔 공세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해찬 후보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북한 인권법'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이 종북 용공을 조장하고 사상검증이니 자격심사니 하며 대대적인 이념공세를 자행하고 있다"고 색깔 공세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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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총선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프레임이었던 MB정권 심판론이 동력을 잃었다고 실망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하나의 정치 프레임이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 즉 복지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무너진 민주주의의 복원은 야권에게 결코 불리한 요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야권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당권파 문제를 종북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로 접근하여 하루빨리 털고 가야 한다. 비록 보수언론들과 여당은 이를 빌미로 빨갱이 사냥을 하고자 하지만, 국민들이 색깔론 자체를 지긋지긋하게 바라보는 이상 종북주의 논란 역시 마냥 길어지기는 어렵다.

대신 야권은 향후 대선의 관심사를 먹고 사는 문제로 귀결시켜야 한다.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서야 한다. 지금이야 6월 호국의 달을 맞이하여 보수세력들이 마녀사냥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도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수그러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취업이 안 되어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빨갱이 타령인가. 정의 자체도 애매한 종북주의자를 모두 퇴출시킨다고 각자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현재 국민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쌍팔년도식 색깔론은 통하지 않는다. 보수언론의 준동에 동의하는 자들은 어차피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을 사람일 뿐,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색깔론을 정면에 내세워 시대정신을 거론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국민은 원한다. 과거의 단죄가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태그:#종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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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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