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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전문지 등 몇 가지 구독하는 월간지들이 있다. 대부분 내가 보는 월간지이지만 유독 하나는 내가 아니라 아내가 받아 읽는 책이다. <전원생활>이 그것인데, 삭막한 도회지를 떠나 농촌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음직한 꿈일 것이다. 아내는 반농반도(半農半都)에 속하는 김천 외곽에 살면서도 내용 있는 전원생활을 늘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몇 달 전, 한 지인으로부터 1년 구독의 선물로 받은 것이 <전원생활>이다. 매달 말 경 도착하는 이 월간지를 내가 읽은 경우는 딱 한 번밖에 없다. 아내와 알고 지내는 사람이 전원생활 기사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글을 아내가 권해서이다. 그리고 오늘, 9월하고도 첫째 날 이 <전원생활>로 인해 다소 곤혹스런 일을 당해야만 했다. 이 책으로 인해 예정에 없던 시간을 많이 빼앗겼기 때문이다.

농촌 목회를 하면서 토요일은 나에게도 예외 없이 바쁜 날에 속한다. 주일 준비로 다른 것에 시간을 할애하기 힘든 날이 이 날이다. 아침 일찍 혼자 사시는 한 할머니 집 청소 봉사를 하고 돌아와서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빵과 음료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식탁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어제 도착한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주간 신문과 월간지 그리고 소식을 알리는 간단 우편물 등이었다.

그 중 월간 <전원생활>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의식에서 나오는 습관처럼, 아내의 전유물인 이 잡지를 뜯어 목차를 훑어보았다. 웬 떡인가 싶었다. 전원생활 전문 잡지에 책에 대한 기사가 실리다니! 그것도 특집으로! 이럴 땐 나의 생각이 흐트러졌다가 즉석에서 재빠르게 모자이크된다. 책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선순위가 되는 것이다. 설교 등 주일 준비에 바쁜 토요일 날 이런 책에 대한 기사나 도서를 발견한다면 그래서 당혹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전원생활>에 실려 있는 특집의 타이틀이 '책방 나들이'로 되어 있었다. 사진을 곁들인 기사는 농촌 생활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전원을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나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당장 향기 그윽한 커피라도 한 잔 들면서 읽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책방 나들이' 특집은 다섯 개의 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기사 선자(選者)의 기지가 돋보이는 글들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차례대로 명기하면, 1.책방, 내 인생의 궤적이 담긴 그릇 2.꿈을 담은 작은 책방 3.이야기가 있는 책방, 밝맑도서관과 새한서점 4.부산 보수동, 인천 배다리 헌책방의 변신 5.예술작품 속의 책방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눈을 뗄 수 없는 기사이다. 나는 책에 대한 글들도 사실적인 글을 좋아한다. 철학적인 관념적 글 보다는 내가 당장 실행에 옮겨볼 수 있는 것에 마음이 간다. 특집에 실린 글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첫 번째 글, '책방, 내 인생의 궤적이 담긴 그곳'은 김열규 교수의 책방 순례기이다. 해방 직후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책을 공짜로 모아 횡재를 한 이야기에서부터 헌책방을 다니면서 귀한 책들을 모아 학문 탐구에 많은 도움을 받은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김 교수는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로 그 방면에 많은 논문을 발표한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들이 책을 탐색하는 데서 시작해서 각고의 연구 끝에 나온 결정물(結晶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글, '꿈을 담은 작은 책방'에는 시골 마을버스 종점에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컨테이너 채방 '배꼽마당'과 책방은 작지만 책을 들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제일 넓은 '한강 열린 책방'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꼭 한 번 방문해서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서울 왕십리 분수 광장에 설치된 '책뜨락'은 휴대폰의 대중화로 천덕꾸러기가 된 공중전화 부스가 화려한 책방으로 변신한 것이고, 남이섬에 가면 공중 화장실에 책을 비치해둔 특별한 책방이 있는데, 이름하여 '화장실 책방'이라 했다. 책에 대한 사랑이 이와 같은 깜찍한 책방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세 번째 글, 두 개의 특별한 공간이 소개되고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밝맑도서관'과 충북 단양군 적성면에 있는 '새한서점'이 그 주인공들이다. 밝맑도서관은 이름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좀 특별한 도서관이다. 이름은 밝고 맑은 도서관이란 뜻이고 문화의 혜택에서 소외 받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힘을 합해 만든 도서관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글을 쓴 기자도 부제를 '사람 냄새 폴폴 나는 밝맑도서관, 책 보러 가서 사람 만나고 오죠'라고 달았다.

새한서점 이금석 대표는 평생을 책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이다. 살아도 책과 함께 살고, 망해도 책과 함께 망하는 인생 역정을 60여 년 이어왔다. 그는 서울 중심가에서 헌책방 '새한서점'을 운영하다가 여느 직장인이면 은퇴를 해야 할 나이에 시골 산속으로 책방을 이전해 여전히 책과 더불어 즐기며 먹고 사는 사람이다. 인터넷이 고도로 발달해서 인쇄 문화가 맥을 못 추는 때에 이 대표는 산속으로 책방을 옮겨 인터넷 판매로 사업을 하고 있으니 기발한 시대의 역린(逆鱗)이 아닐 수 없다.

네 번째 글은 두 곳의 책방 관련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과 인천 배다리 헌책방이 그것인데, 책을 통해 지역 문화의 수준을 높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부산 보수동은 헌책방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곳도 시대의 흐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편승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굴종과 타협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보수동 책방골목 축제, 북 카페가 있는 헌책방, 북 리펀드 운동 등은 책방 나름의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생존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인천 배다리 책방 골목은 헌책방 주인들이 지역 살리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시작된 헌책방의 좋은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사회는 거대자본의 경쟁논리에 결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것은 도태되고 큰 것만이 살아남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천 배다리 책방 골목은 그것에 과감히 반기를 든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인간의 취향에 더 적합하다고 확신이라도 하는 듯. 그 중심에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와 '나비날다' 대표 권은숙씨가 있다. 이들은 책방을 책을 팔고 사는 공간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시회 시 낭송회 등을 열어 지역 문화의 격을 높이고 있다.

다섯 째 글은 예술 작품 속의 책방을 적어내고 있다. 책방은 다양한 소통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인이 만나 사건이 시작되는 곳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와 그림 그리고 책을 각각 대표할 수 있는 몇 개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방을 영화 속 소재로 취하고 있는 것으로는 <노 팅힐>(Notting Hill, 로저 미첼 감독)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노라 에프론 감독) <러브 레터>(The Love Letter, 진가신 감독)를 꼽고 있다. 또 책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는 '책벌레'(카를 슈피츠베크 작)와 '책방에서'(빅토르 바스네초프 작)를, 그리고 책방을 사건의 해결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책으로, 소설 <해리 포터>(조앤 K. 롤링), <마법의 도서관>(요슈타인 가이더) <책들의 전쟁>(조나단 스위프트) 등이 있으니 읽어보라고 무언(無言)으로 권하고 있다.

아름다운 전원의 꿈을 일궈가는 생활 정보지 <전원생활>에 '책방 나들이'를 특집으로 꾸민 것은 언뜻 생각하기에 규범의 틀을 깬 것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원생활이나 책방 나들이 모두 순수한 인간 감성의 발산이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일진대 관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일 하루 전, 바쁜 와중에도 내가 <전원생활>의 특집 '책방 나들이'를 꼼꼼히 읽은 이유도 여기에서 멀리 있지 않다. 사람에게 동경하는 세계가 없다는 것은 꿈이 없다는 말과 같고, 꿈이 없는 삶은 그 의미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주일 하루 전날, 책에 대한 글을 읽은 나의 일탈은 당혹스러움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 삶의 에너지 보충도 되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mj0691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전원생활 2019.2

전원생활 편집부 지음, 농민신문사(2019)


태그:#전원생활, #책방나들이, #책벌레, #농촌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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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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