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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20여 명의 오지마을 사람들이 타고 있다.
▲ 민경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20여 명의 오지마을 사람들이 타고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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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바다라고 불리는 파로호(강원 화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호수) 주변에는 수십 가구가 산다. 이곳 주민이 읍내로 나오는 길은 유일하게 뱃길뿐이다. 차량이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없기 때문이다.

읍내에 나오는 날은 5일장이 열리는 매월 3일과 8일. 장을 보기 위해 나오려면 1시간여 배를 타고 구만리 배터에서 내려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그곳 사람들은 읍내에 나올 기회가 있으면 한꺼번에 많은 생활용품을 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기온이 내려가 파로호가 얼어버리면 이듬해 봄까지 고립되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배를 탄다는 것은 고역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난방이나 천막이 없는 (자가용인) 농선을 타고 배가 움직이면 체감 온도는 영하20도가 훨씬 넘는다.

투표를 위해 2시간여 배를 타고 나오는 사람들

민경호에내 내리는 오지마을 주민들, 소중한 한표 행사를 위해 2시간여 배를 타고 왔다.
 민경호에내 내리는 오지마을 주민들, 소중한 한표 행사를 위해 2시간여 배를 타고 왔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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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그곳 사람들의 요즘 인사는 투표를 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김씨! 이번 대선 때 투표할 거요?"
"그날 날씨를 봐야 알겠지만, 추우면 힘들지 뭐. 민경호가 들어오면 모를까?"

민경호는 신인섭(60)씨가 15년째 오지마을 사람들을 위해 운항하는 여객선이다. 평소에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닷새마다 찾아오는 5일 장날에만 배를 띄운다. 따라서 선거일인 19일에는 배가 들어올 리가 없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 다행히 화천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오지마을 사람들을 위해 민경호에 유류대를 지원한다. 선장 신씨 입장에서는 무료 봉사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 추위에 내가 조금만 고생하면 오지 주민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 씨는 선거 전날인 18일 오지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배가 들어간다고 말해주세요."

19일 아침 8시, 구만리 배터에서 민경호가 서둘러 출발했다. 드문드문 강변 산기슭에 있는 집들을 돌아 나오려면 4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서 이번 투표는 기권하려고 했는데, 신 선장님 성의 때문에 나왔어요."

그렇게 말하며 배에서 내리는 오지 마을 주민의 표정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자긍심에 들 떠있다. 바쁘다는 선장에게 간단하게 몇 마디 물었다.

민경호 선장 신인섭씨(60세), 15년간 이 배를 운항한 파로호의 산 증인이다.
 민경호 선장 신인섭씨(60세), 15년간 이 배를 운항한 파로호의 산 증인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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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배로 모시고 나오신 분들이 몇 명이나 되세요?
"내가 알기에는 선거 인수가 5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배를 타고 나오신 분들과 몸이 편찮으신 분들도 계신 분들 빼고, 20여 명 모시고 나왔습니다."

- 도움이 없으면 거동을 못하실 정도로 연세가 드신 분도 계신 것 같던데요.
"8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도 몇 분 계십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어려운 여건임에도 투표에 참여하는데, 요즘 젊은이들 보면 선거일이 휴일로 생각하는지 전날 유명 관광지의 콘도 등이 매진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참 씁쓸해요."


태그:#민경호, #오지마을, #파로호,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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