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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각)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29살의 전 NSA 외주업체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 영국 정부는 알았을까. 영국 언론을 통해 미국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의 '비밀'을 잇따라 폭로하고 있는 이 미국인 청년이 불과 일주일 후, 영국의 '검은 비밀'도 드러내리라는 것을. 스노든의 '날갯짓'이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스노든이 미국 언론이 아닌 영국 언론 <가디언>을 '내부고발'의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에는 미국 언론의 애국주의 성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스노든은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2004년 <뉴욕타임즈>가 부시 행정부가 9·11 이후 NSA에게 미국 시민들을 무분별하게 감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도 1년 동안 보도하지 않았던 것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미국 언론 <워싱턴 포스트>에서도 스노든의 폭로를 바탕으로 '프리즘'에 관한 특종을 하기는 했지만, 이는 단발성에 불과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스노든이 제공한 정보가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정부 당국자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화·이메일 실시간 감시... '가짜 인터넷 카페' 개설해 해킹 

지난 16일(현지시각) <가디언>을 통해 또 하나의 놀라운 진실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영국의 NSA라고 할 수 있는 영국정보통신본부(GCHQ)의 '사찰' 활동과 관련된 NSA 기밀문서다. 대상은 2009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그리고 같은 해 9월 역시 런던에서 열린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각 나라 정상을 비롯한 대표단. 2009년 4월 G20 정상회담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스노든이 폭로한 NSA 기밀문서에 따르면, GCHQ는 "획기적인 첩보 능력"을 이용해 회의에 참석한 대표단의 전화·컴퓨터를 실시간으로 도·감청했다. 국제회의에서 첩보활동이 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문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CHQ는 대표단의 이메일 메시지, 전화통화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기 위해 대표단의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도·감청했다. 45명의 분석가들은 회의기간 중 누가 누구에게 전화를 했는지,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우방국인 터키, 남아프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가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로그인 기록을 빼낸 뒤, 이메일을 해킹했다. <가디언>은 GCHQ가 전화와 이메일을 도·감청 하면서 NSA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2009년 1월 20일자 GCHQ 내부보고서에는 "우리의 목표는 G20 정상회담과 관련된 정보를 적시에, 충분히 활용 가능한 형태로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적혀있다. <가디언>은 이 '고객'을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 그리고 또 다른 영국정보기관인 M15, M16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가디언>이 입수한 복수의 내부문서에는 '사찰 결과물'이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에게 보고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9월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사용되었다. 대표단들의 통화기록을 그래픽으로 만든 화면이 GCHQ 센터에 실시간으로 떴다. 45명의 분석가들은 이를 감시했다. 그리고 이는 영국 대표단에게 발빠르게 전달됐다. 분석가 그룹은 이를 "매우 성공적인 활동"이었다고 자평했다. 

영국 ISA, '경제복지'-'국가안보' 명목으로 첩보활동 보장

영국이 정상회담에 참석한 '귀빈'들을 상대로 이러한 첩보활동을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가디언>은 영국 정부가 국제회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러한 활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이 법으로 보장돼있다는 것. 1994년 만들어진 정보 서비스법(Intelligence Services Act·ISA)이 그것이다. 이 법은 국가보안과 경제복지를 위해 광범위한 방식으로 첩보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허용한다. 특히 '경제복지'의 경우, 영국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두 용인된다. G20 정상회담에서의 첩보활동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간다. 문서에 따르면, 영국은 2009년 정상회담의 목적을 '세계 경제위기 극복'에서 찾았다.

<가디언>은 "1961년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서는 외교사절들의 대화를 보호한다고 돼있지만, 이것이 감시를 포함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가짜 인터넷 카페'가 등장하는 등 첨단을 달리는 21세기 첩보활동을 감당하기엔 1960년대에 제정된 협약이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추가로 공개된 문서에는 미국이 4월 G20 정상회담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도청을 시도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있다. NSA는 영국 주재 요원들을 동원해 메드메데프 전 대통령과 러시아 대표단이 모스크바에 건 위성전화 신호를 가로채 해독을 시도했다.

앞서 스노든은 미국 정부가 2009년 이후 중국 사이버 공간을 해킹했다는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이후 중국의 '사이버 해킹'을 문제 삼으려고 벼르던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우리도 사이버 해킹 피해자"라는 항변을 들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전 대통령 도청 시도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은 또 다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스노든 <가디언> 독자와 라이브 채팅 "진실은 온다"

한편, 에드워드 스노든은 17일(현지시각) 가디언 독자들과 2시간 동안 실시간 채팅을 하며 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가디언>은 그가 홍콩의 모처에서 안전하게 있다고 전했다. 스노든은 그가 중국정부에게 기밀문서를 넘기고 안전한 피난처를 약속받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는 "내가 중국 스파이라면 왜 베이징으로 바로 가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스노든은 "대중의 반응에 큰 용기를 얻었다"면서도 "주류 언론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감시 프로그램보다 내가 17살 때 무슨 말을 했는지, 내 여자 친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스노든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도 나타냈다. 그는 "그는 권력을 잡은 지 얼마 안 돼, 조직적인 위법을 조사하는 것을 포기했고 권한을 남용하는 프로그램들을 심화·확대시켰다"면서 "관타나모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인권 침해를 끝내기 위해 정치적 자본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스노든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미국을 떠났다고 전했다.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정부는 나를 감옥에 보내거나 죽이는 것으로 이것을 덮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진실은 온다. 이를 막을 수는 없다."


태그:#G20, #스노든, #도청, #GCHQ,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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