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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문이 요란하다. 교육부는 '꼼수'를 부려 전체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보완으로 사태를 마무리할 태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교학사 직원들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한다.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 정도면 가히 '역사전쟁'이라 부를 만하다.

대체 그 무엇이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불러오는 것일까.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뜨거운 현장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역사 교육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학교에서는 왜 역사 교육을 실시하는가. 학생들이, 아니 우리 무도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필자다. 권 교수는 문제의 교과서 '머리말'에서 역사를 '다른 무엇보다도 지적인 탐구'로 규정했다. 그는 한국사를 "한국을 무대로 하여 살아온 사람들이 세계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을 지적으로 탐구하며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한국사 이해(교육)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사를 이해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 되어 함께 번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에게 묻고 싶다. 역사가 왜 '다른 무엇보다도 지적인 탐구'인가.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카(1892~1982)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그도 역사 이해의 현재적 의의를 말하고 있다. 역사를 '거울'에 빗대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지적 탐구'다.

역사를 지적으로 탐구한다는 말은 아름답다. 여기에 더 이상 그 어떤 췌언을 덧붙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적으로 탐구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역사를 지적인 탐구라고 했으니 학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등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일까. 지적으로 탐구하기만 하면, 그의 바람처럼 현재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일까.

권 교수의 '다른 무엇보다도 지적인 탐구론'은 참 교묘하다. 왜 그런가. 그의 말은 아름답지만 실속이 없다. 지적 탐구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빠져 있다. 역사를 지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 연구에서 즐겨 쓰이는 귀납 추리를 활용해야 할까, 아니면 그것으로 현재를 비춰봐야 하니 유비 추리를 쓸까.

머리말의 다른 대목에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는 역사가 우리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거울이 거울다우려면 깨끗해서 가리는 것 없이 진실에 충실해야만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고도 했다. '깨끗해서 가리는 것 없이 진실에 충실'하다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 과거 역사의 명암을 모두 살피는 식으로 역사를 탐구해야 한다는 그의 방법론을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제야 그의 의도를 알 수 있겠다. 그는 가령 일제와 이승만과 박정희의 명암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모두 기술하고 싶은 것 아닐까. 국권을 강제 침탈한 일제는 '나쁘지만', 한국인에게 근대적인 시간 관념을 가져다준 일제는 '착하다'. 독재로 하야한 이승만도 원래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이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긴 했지만, 그것은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자, 보시라. 모든 역사는 이렇게 명과 암이 있다. 선과 악이 교차한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내 말이 틀리나. 그는 지금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가 대표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쓰였다. 전형적인 양비양시론이다. 양비양시론으로 나오는 말들은 지극히 당연하여 아름답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마나한 소리다. 세상 모든 게 옳고 그른 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일의 표면과 이면에 명과 암이 있다는 것을 그 누가 부정할까. 그의 '다른 무엇보다도 지적인 탐구론'을 교묘한 궤변으로 보는 이유다.

역사의 '진실'은 몇 개일까. 역사적인 사실은 분명 하나다. 하지만 역사적인 진실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역사적인 진실은 둘이나 셋 혹은 그 이상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역사적 진실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극렬하게 거부해야 하는 역사적 '거짓'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 '연구' 분야에만 국한된다.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역사교육'에서 역사적인 진실은 둘이나 셋이 아니라 하나다.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 역사교과서(나아가 모든 교과서)가 지배적인 견해나 학계 일반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집필되는 이유다.

역사교과서는 자신의 역사적인 주관을 설파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 연구 학회의 전문 학술지나 기관지를 통해서 자기 깜냥껏 하면 된다. 역사교과서는 한 나라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역사관의 총합이어야 한다.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이 각자의 삶의 경험에 따라 갖게 된 다양한 역사관을 수렴하면서 최고의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교과서는 하나의 사실(史實)을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었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역사교과서는 김성수가 친일파이지 민족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1947년에 일어난 일어난 제주 4·3 항쟁은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한 사건이지 좌익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 아니라고 기술해야 한다.

교학사 교과서는 그렇지 않았다. 교학사 교과서의 저자들은 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역사적인 주견을 퍼뜨리는 장으로 활용했다. 대표 저자인 권 교수를 포함해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기존 역사 교과서를 '좌파 교과서'로 매도하는 교만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들의 견해에 맞지 않으면 이념적 편향과 종북을 들먹이며 사상 공세를 펼쳤다.

교학사 교과서 파문은 어떻게 정리될까. 우리는 작금의 파문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모두가 역사교육의 진정한 이유와 목적 등을 차분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관이나 역사의식 정립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차분하게 살펴야 한다고 본다.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화를 통해 고등학생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의 역사의식이란 게 과연 어떤 것일까. 세종은 고려시대 임금이었으며, 한글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아이들이 정확한 역사적 지식을 갖는 게 올바른 역사의식일까.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니라 '북한에 의한 남침'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아는 게 역사의식을 살리는 길일까.

역사교육은 '명'을 '명'으로, '암'을 '암'으로 배우는 과정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명'이기도 하고 '암'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 절대 아니다. 역사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사람도 '회색인'이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역사교육에는 중립이 없어야 한다. 절대적인 객관도 있어서는 안 된다. 도덕과 정의가 시험을 받았던 역사를 배울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1265~1321)는 <신곡>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옥의 가장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인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역사교육,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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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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