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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교과서 발행제도는 제2차 교육과정(1963~1972)까지 국정과 검정 시스템이 병행되었다. 제2차 교육과정 당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는 각각 11종이었다. 그러다가 교과서 발행제도를 국정 체제로 통일한 것은 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 때였다.

1973년 2월, 교육과정 본격적인 개정을 앞두고 학교 교육을 진단한 평가교수단의 건의가 나온다. 주요 내용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국·검정 병행 제도를 국정제도로 바꾸어 단일화하는 것이었다. 그간 발행된 검·인정 교과서의 상이한 내용에 따른 혼란과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잡음, 종이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전에 문교부는 이미 국사 교과서 개편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한 박정희 정부의 국사교육 강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1973년 2월 16일, 정부는 국사 교과서 11종에 대해, 유신정신의 반영, 새마을·수출 증대·교육재료 보강, 급변하는 국제사회 적응, 변동된 교재 및 통계 보완, 국사교육 강화 내용을 반영하라며 개편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한 달 뒤인 3월 16일, 한국검인정교과서 대표이사가 11종의 발행자와 저자 연서로 합의서를 첨부하여 단일본 발행을 건의한다. 문교부는 이 건의를 받아들이면서 발행자 전원의 연서로 다짐장을 제출할 것을 지시한다. 3월 29일, 교과서 발행자 전원은 11종 개별 발행 중지, 원고에 대한 본부 심사 등의 내용을 담은 다짐장을 제출한다. 이후 김철준, 이원순, 강우철 등이 시기를 분담하여 일사천리로 단일본 교과서를 완성토록 한다.

그렇게 해서 두 달만에 만들어진 단일본 국사 교과서는 실질적으로 국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교과서 내용 개편의 방향과 체제도 문교부가 모두 정해 주었다. 심지어 문교부는 원고 심의와 삽화 및 사전 선정까지 관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문교부는 갑작스럽게 정책을 바꾸어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다. 그런 점에서 국사 교과서 단일본 추진 조치는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위한 위한 '간 보기'였던 셈이다.

현장 교사들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했지만...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1973년 6월 9일 자로 나온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이라는 청와대 보고서로 그 전모를 드러낸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공식적으로 6월 23일 발표되었다. 주체적 민족사관 정립, 새 한국인 형성, 한국 민주주의 토착화 등이 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주요 목적으로 제시되었다.

역사학자와 현장 교사들은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했다. 하지만 문교부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반대 여론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서슬 퍼렇던 박정희 유신 체제 아래서 모든 반대 의견은 묵살되었다.

결국 국사교육강화위원회는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받아들인다. 이후 중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는 1974년 1학기부터 학교에서 사용된다. 그 사이 우여곡절이 있었다. 1977년 2월에 터진 '검인정교과서 사건'이 그것이다. 국정과 검정교과서의 발행과 공급을 독점하는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가 문교부 관계자와 국세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뿌리고, 출판사들이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를 통해 교과서 판매 이익을 극대화하여 수익을 나누어 가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사건이었다.

1977년 8월, 문교부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여 교과서 제도를 개편한다. 종래의 국정과 검정을 각각 1종과 2종으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교과서는 1종, 2종, 인정도서 등의 세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문교부는 1종 도서에 '연구개발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민간 연구기관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국정교과서의 단점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1종과 국정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역사학자나 역사교사 등 관련 전문가들도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했다. 1종 국사 교과서의 저작자는 국사편찬위원회와 1종도서연구개발위원회였다. 발행권은 국정교과서주식회사가 가지고 있었다. 그 모두가 정부 손으로 만들어진 기관이었다. 1정 도서는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 국가기관이 모든 것을 총괄한 국정 교과서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37년간 이어진 국정제가 마무리 되었건만, 또

국정 국사 교과서는 1980년대에 커다란 위기를 맞는다. 그동안 국정 국사 교과서의 문제로 제기되었던 지배층 위주의 서술, 지나친 반공 이데올로기, 정권의 홍보 역할 등이 격렬한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 국사 교과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제7차 교육과정(1997년 고시, 2000년부터 초1학년 적용 시작)에 따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발행된 것은 2003년이었다. 고등학교의 모든 선택과목을 검정도서로 발행한다는 원칙에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필수과목인 <국사>는 국정제를 고수하고 있었다.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바뀐 것은 각각 2010년과 2011년이었다. 국정 국사 교과서가 1974년부터 시작되었으니,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하면 37년이나 되는 셈이다.

교학사 발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아래 '교학사 교과서')에서 비롯된 역사교과서 파문이 여전히 거세다. 어찌 보면 안타까운 노릇이다. 37년간 이어진 '지긋지긋한' 국정제가 마무리되었다. 틀에 박힌 국정 교과서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니 역사학자나 역사 교사들로선 얼마나 환영할 만한 일인가. 비록 검정 체제이긴 하지만 다채로운 역사 해석과 역사 교육이 가능한 교과서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파문으로 이런 기대는 무망한 것이 돼버렸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념적 편향이나 역사의식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사실 왜곡과 오류의 문제만으로도 검정 심사를 통과해서는 안 되는 책이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검정팀은 이 교과서를 합격시켰다.

어제(21일)는 교육부가 올해 검정 심사를 통과한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보완 권고 내용을 발표했다. 한켠에서는 교육부의 이번 조치가 교학사 교과서를 살리기 위한 물타기의 일환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7종의 교과서에 대해 수정·보완 권고를 내린 내용 중 무리한 흠잡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예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교학사 교과서 이외의 7종 교과서 집필진은 교육부의 수정 권고에 무조건 따르지 않겠다고 거부 선언을 했다. 교육부는 수정 권고를 따르지 않는 출판사를 상대로 수정명령 등 행정권을 발동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교과서 논란의 한복판에서 갈등과 혼란의 중재자 노릇을 하는 교육부가 판관 구실을 하려는 것이다.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의 구원군을 자처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교육부가 보이는 행태를 보면 그들을 교학사 교과서의 구원군으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수정·보완 권고 건수를 보면, 미래엔 교과서가 62건으로 가장 적다. 교학사 교과서가 251건이나 된다. 최대 4배를 넘는 차이가 난다. 이정도면 교육부의 직권으로 발행 취소를 하는 게 상식이지 않을까. 그런데도 교육부는 오히려 다른 출판사를 을러댄다.

'붕어빵' 역사교과서, 아이들 역사 인식 좁힌다

교육부의 이런 행태는 여러 가지 의혹을 자아낸다. 단순히 교학사 교과서를 구하려는 측면만 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왜 역사학계의 '막말 종결자' 유영익을 국편 위원장으로 앉혔을까. 교육부는 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를 집중적으로 채근하지 않았을까. 교육부가 나머지 7종의 교과서를 물고 늘어지면서까지 논란의 한복판에 나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울신문>에 따르면, 심은석 교육부 교육정책실장은 어제 "2014학년도 고교 신입생부터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공부하게 된다"면서 "사실 오류, 표현·표기 오류, 서술상 불균형, 국가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이 실린 교과서를 수정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기 위해 (전체 교과서에 대한 수정·보완 권고가-기자)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국가정체성'이나 '올바른 역사인식'은 어떤 것일까. 혹시 교육부는 앞으로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인 혼란과 소모적인 비용을 핑계로 한국사 교과서 발행을 국정제로 전환하려고 하지 않을까. 나는 박 대통령이 역사의 '막말 종결자'인 유영익을 국편 위원장을 앉힌 저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 국정제가 아니라면, 적어도 속은 영락없는 '국정'이지만 무늬만큼은 '1종'인 체제로 바꾸지 않을까.

하지만 국정이나 1종 체제는 시대착오적이다. 현재의 검정 시스템도 문제가 많다. 국가가 교육과정을 기본으로 교과서 집필기준과 편찬상의 유의점 등 갖가지 준거안을 통해 교과서 서술의 방향이나 주요 용어, 개념 등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상 검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준국정 시스템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가 교과서의 전체 체제나 내용을 강제하는 국정이나 1종, 검정 체제에서는 다양한 역사 해석과 창의적인 역사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붕어빵'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좁히고 고정시키는 문제도 있다. 교과서의 역사 해석이 '권위'가 되어 학생들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화가 되면 이런 점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진정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겠지만 말이다.

우수한 교과서는 여러 종이 자유롭게 발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 과정에서 우려되는 함량 미달의 교과서는 심사 과정에서 국가교육과정의 총론과, 각론에 해당하는 역사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걸러내면 된다. 교과서 자유발행제로 가야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최근의 역사 논쟁을 놓고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는 말들이 오간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 논쟁의 핵심은 사실 왜곡과 오류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걸러낼 수 없는 것들은 상식적인 역사 인식이나 역사교육의 철학 등에 따르면 된다. 협소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세계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같은 것을 통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정 교과서 제도 변천 및 국사 교육의 역사에 관한 내용은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의 최근작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11장을 참조했습니다.



태그:#교과서 자유발행제, #국정 교과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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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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