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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와 이순신
 향로와 이순신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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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곳에 처음 가보았어요. 어느 모임에서 "부담 갖지 말고 같이 가보자"고 제안해서 부담 없이 함께 가본 곳이랍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지난 8일 금요일 오후 1박 2일 일정으로 출발한 후, 제가 처음 가본 그곳은 통영이란 곳이에요. 멋지더군요. 잔잔한 바다와 즐비한 섬들, 제가 사는 울산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들... 볼것이 많았습니다. 지인들과 들른 곳은 세 곳입니다. 저녁에 도착하여 팬션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그곳을 여행했어요.

아침 먹고 먼저 들른 데가 케이블카 타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모두 여행객들이었습니다. 케이블카 한쪽에 너댓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양쪽으로 있었습니다. 케이블카 타고 공중에 떠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좀 무서웠습니다. 옆에 탄 중학교 2학년 남학생도 무서운지 주먹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케이블카로 올라간 산은 해발 461미터인 미륵산이라 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통영, 거제, 한산도는 그야말로 진풍경이었습니다. 수많은 섬들이 바다에 그림처럼 떠있었습니다. 돈있는 사람들이 여행 많이 다니는게 이유가 있나봅니다. 저야 간혹 지인들의 모임에 여행경비를 많이 내지 않고 빈대 붙어 여행하는 처지라 울산 말고는 외지로 벗어난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묘미를 잘 몰랐었습니다.

무슨 행사가 진행되는지 배들이 많았습니다.
▲ 거북선 무슨 행사가 진행되는지 배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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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산꼭대기에 올라가 산 아래 풍경을 보는 것도 처음이어서 좋았습니다. 배를 타고 '제승당'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2시간 코스였는데 배멀미 걱정을 하고 유람선에 올랐으나 다행히 배멀미는 하지 않았습니다. 크고 작은 섬을 지나다니는 유람선도 처음 타봤습니다. 통영엔 거북선도 떠있었고 많은 종류의 배들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걸 처음보는 저로서는 고개 돌리며 구경하느라 바빴습니다.

"잠시후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400여년 전 이순신 장군이 3년 8개월 머물면서 왜적과 싸운 제승당입니다. 1시간 정도 둘러 보시고 다시 이곳 선착장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통영엔 유람선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관광지라 그런 거 같았습니다. 배에 함께 탄 여행객들은 모두 내려 제승당으로 갔습니다. 통영엔 충열사,세병관,제승당 이란 곳이 있었습니다. 모두 이순신 장군과 관계된 유적지였습니다. 함께 간 분들이 하루 일정으로 가서 다 돌아보진 못하고 그날은 제승당만 찾았습니다.

울산과는 달리 통영은 온통 섬으로 뒤덮혀 있었다.
▲ 산꼭대기에서 본 통영 울산과는 달리 통영은 온통 섬으로 뒤덮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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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 옆으로 길을 널찍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닷길임에도 물살이 세지 않아 잔잔한 호숫가 같았습니다. 얼마쯤 걸어 들어가니 우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400년 전 이순신 장군과 그 부하들이 마셨던 우물이라 했습니다. 안을 확인해 보니 지금은 매말라 있었습니다. 입구엔 당시 복장을 한 보초 인형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가족과 함께 와보고 싶었습니다.

입구 간판에 설명된 내용을 보았습니다. '한산도 이충무공유적'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세계 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루신후 운주당을 지으시고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으시어 제해권을 장학하시고 국난을 극복하신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웅장한 제승당이 섬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 제승당 안내도 웅장한 제승당이 섬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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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올라가니 숲 한가운데 커다란 한옥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간판엔 제승당에 대한 설명으로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승당은 제107대 조경 통제사가 운주당 자리에 현 건물을 복원하면서 제승당이라 이름한 이곳은 현대의 해군작전사령관실과 같은 곳이다. 충무공은 1593년 7월 15일부터 1597년 2월 26일 한양으로 붙잡혀 가기까지 3년 8개월 동안 진영을 여기에 설치하였다. 승리를 만드는 건물의 이름과 같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작전도 짜고, 총통과 같은 신무기의 제작과 보급에 힘쓰는 등 모든 군무를 관장하던 곳이었다. 총 1491일 분의 난중일기 중 1029일의 일기가 여기에서 쓰여졌고 많은 시를 남기기도 했었던 곳이다. 현재의 제승당은 충무공이 떠난 뒤 폐허가 되었다가 1739년에 통제사 조경이 중건한 것을 1976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400년전 혼신의 힘을 다해 왜군에 맞서 싸운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그가 머물렀다는 유적지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병들이 활쏘기 연습 장소로 쓰였던 곳도 보았고, 그가 나라를 걱정하며 전쟁중에 썼다는 유명한 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 호가는 / 남의 애를 끊나니/ 를 쓴 장소도 보았습니다. 이순신 그는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자 무사였었나 봅니다.

바다 임에도 꼭 큰 호수처럼 물이 고요했다.
▲ 제승당 가는 길 바다 임에도 꼭 큰 호수처럼 물이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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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한옥 안에는 400년 전 치열했던 전투장면을 담은 대형 걸게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고, 포도 전시해 두었습니다. 위쪽으로 더 올라가니 이순신 장군 영정 그림과 그의 정신이 적힌 안내문도 있었습니다. 안내문엔 충무공의 일생이 간략하게 나열되어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1545년 3월 한양에서 태어났고 1576년 32세에 과거시험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에서 관직생활 했었다고 합니다. 1592년 48세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5월 7일 제 1차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14차례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왜군이 쏜 흉탄에 맞아 전사했다 합니다. 그의 나이 54세 때였다 합니다. 충무공의 묘는 충남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에 있다고 합니다.

충무공은 3가지 정신으로 나라를 지켰다고 합니다. 첫째는 나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멸사봉공의 정신, 둘째로 거북선과 조총을 새로이 만든 창의개혁 정신, 셋째로 미리 전쟁에 대비해 적을 물리쳤던 유비무환의 정신이 그것이라고 안내문에 쓰여 있었습니다. 유적지를 둘러보다 재미난 안내문을 발견 했습니다. 저는 그 안내문을 보고서야 그 유적지가 그렇게 멋지게 꾸며진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산도 이충무공유적' 이란 제목의 안내문중 이런 부분이 보였습니다.

'제승당은 1597년 폐진되어 142년 후인 1739년(영조 15)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운 이래 1959년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여러차례 보수하여 왔으나 민족의 성웅을 모시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을 둘러보신 후 공의 위업을 기리고 살신구국의 높으신 뜻을 후손만대에 전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경역을 확장하고 보수하여 1976년 오늘의 모습으로 전화되었다.'

이순신 군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상상도
▲ 포와 전쟁 그림 이순신 군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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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모습이 된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에 좀 찜찜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않는나요? 그의 행적을. 그의 행적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서적을 굳이 밝힐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이 발행되어 판매되고 있지 않은가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지난해 말 18대 대선후보 방송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한 말만 기억해도 저는 사지가 뒤틀립니다.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말했었지요.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까끼 마사오. 한국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군사쿠테타로 집권하고 4대매국 한일협정 밀어붙인 장본인 입니다. 대대로 나라 주권 팔아 먹는 이들이야말로 애국가 부를 자격이 없는 사람들 입니다."

'이정희 돌직구'라는 동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라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그렇게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현재 진보당은 현 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마저 심각하게 훼손될 정도로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그런 박정희가 어째서 왜군과 싸워 나라를 지키려 애썼던 충무공을 추켜 세우는 작업을 했을까요? 저는 그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곳 제승당은 해마다 해군들이 와서 대규모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흔히 운동권에서 말하는 군부독재 시절에 다시 재건된 충무공 유적지. 충무공 유적지를 재건하라고 지시한지 4년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하직원에 살해 되고 말았지요.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라는 국가관료만 드나들 수 있었던 비밀요정. 거기서 지금 유명 가수가 된 심수봉 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이 쏜 총에 맞아 살해된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역사의 진실은 왜곡되고 있는거 같습니다.

일본군 장교의 딸, 쿠데타로 18년간 독재를 한 딸이 지금은 대통령이 되어 있습니다.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오고도 있지만 산속에서 메아리가 울리는 거 같습니다. 통영 충무공의 역사도 영웅화 작업으로 본질이 왜곡 당하는 거 같아 씁쓸했습니다. 충무공만의 공이었을까요? 충무공과 함께 왜군과 맞서다 장열하게 전사한 이름모를 수많은 군사들은 왜 그곳에 없을까요? 왜군과 싸우려고 나선 의병들과 민초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2시간 통영 제승당 유적지를 보고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구에 있었다.
▲ 거북선 모형 입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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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통영, #이순신 장군, #충무공, #한산도,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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