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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 최초가람 마을 절 남원 실상사는 지난 19일 오전 10시 150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여 철조여래좌불 점안법회를 봉행했다.

실상사 약사전 보수 공사는 2010년 문화재청 사업으로 보호각 노후화와 흰개미 피해로 기울어진 곳의 보수 정비와 함께 약사전에 모셔진 철조여래좌불도 부식 예방을 위한 보존처리작업을 함께 실시하였다. 실상사 약사전(藥師殿)에 봉안되어 있는 철조여래좌상은 보물 제41호이다.

사적  제309호 실상사의 문화재
단일 사찰 중 최다 보유

국보
∙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 (신라말)

보물
∙ 제33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신라말)
∙ 제34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 (신라말)
∙ 제35호 실상사 석등 (신라말)
∙ 제36호 실상사 부도 (고려시대)
∙ 제37호 실상사삼층석탑(쌍탑) (신라말)
∙ 제38호 증각홍척국사 응료탑 (신라말)
∙ 제39호 증각홍척국사 응료탑비 (신라말)
∙ 제40호 백장암 석등 (신라말)
∙ 제41호 철조 여래좌상 (신라말)
∙ 제420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 (1584)
∙ 제421호 약수암 목조탱화 (1782)

지방유형문화재
∙ 제45호 극락전 (1684)
∙ 제88호 위토개량성책 (조선시대토지대장)
∙ 제137호 보광전 범종 (1694)

중요민속자료
∙ 제15호 석장승 3기
이 불상은 수철화상이 4천근이나 되는 철을 들여 주조한 높이 2.7미터의 신라시대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여러 번의 화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은 까닭은 이것이 청동 제품이 아니라 무쇠로 주조 되었기 때문이다.

육중한 규모의 이 무쇠로 만든 철불은 그러나 밑을 받치는 좌대가 없다. 그냥 땅위에 그대로 세워져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일본을 겨냥한 비보풍수 때문이다.

이 무쇠 철불은 그 시선을 지리산의 정상 주봉인 천왕봉으로 두고 있다. 거기서 그대로 그 시선을 직선으로 연장시키면 일본인들이 그들 민족의 성산으로 받드는 후지산에 연결이 된다. 즉 실상사 철불-지리산 천왕봉-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대륙의 지령(地靈) 원기(元氣)는 곤륜산에서 발원하여 세 개의 가지를 뻗으며 동진(東進)한다.

그중 북쪽의 북룡(北龍)이 그 지기가 가장 좋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 기맥이 흘러와 마루(宗山)를 만든 것이 바로 백두산이다. 그러니까 백두산의 자손인 한반도는 대륙 최고의 명당이 되는 것이다.

이 훌륭한 땅기운이 백두대간을 관류하며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그 최후의 힘을 뭉친 절맥처가 바로 지리산(智異山)이다. 여기서 바다를 건너 대륙의 기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본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하여 땅에 거대한 무쇠 부처를 조성해 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이 철조 여래 좌불인 것이다. 철불의 역활은 그대로 맨땅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좌대를 놓지 않은 것이다. 유사 이래 우리는 일본 땅을 넘본 적이 없다. 고려 때의 동정(東征)은 원나라의 강압에 의한 것이지 자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국력이 좀 펴지기만 하면 우리 땅에 욕심을 낸다.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 된다. 그래서 실상사 무쇠 철불과 같은 풍수 비방을 하게 된 것이다.

실상사는 대웅전이 없으며, 대신 삼층석탑이 2기가 있으며, 삼층석탑은 불국사 석탑을 복원하는 데 기초를 제공했다. 대웅전에 해당되는 보광전(普光殿)에 조석예불용 소종이 하나 있다. 이 종 표면에 일본 열도가 새겨져있다. 예불 때마다 매일 두들김으로써 역시 일본의 침략야욕을 경계하고 있다.

남원지역 구전중에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락한다는 이야기가 있듯, 실상사 경내의 지기를 잘 간수할 필요가 있다.


태그:#실상사 마을절 , #지리산 산내면, #철조여래좌상, #비보풍수, #사부대중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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