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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역시 '헬조선' 아닐까.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빈부 격차, 세대 갈등, 취업난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만과 조롱이 헬조선이라는 한 단어로 응축됐다. 한국이 '지옥'이라고 일컫는 젊은이들의 말에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언론 매체에서는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실제 청년들이 '헬조선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에 3회에 걸쳐 젊은이들이 직접 체감하는 '헬조선'에 대해 칼럼, 좌담회, 인터뷰 등을 통해 다룬다. -기자 말

헬조선
 헬조선
ⓒ 구스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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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노오오오오오력'을 신으로 삼는 신정국가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노력하면 된다'라는 신이 모든 일을 관장했다. 그 신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는, 말 그대로 영적인 힘을 가졌고, 그 나라 국민은 그 신만을 믿었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라는 무법지대에서 그 신정국가를 열심히 매도하던 이들이 하던 이야기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그리고 서기 2015년, 신을 믿지 않는 불순한 이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노오오오오오력'이라는 신을 따르는 행위를 거부하며 자신들의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노오오오오오력'이라는 통념을 거부하고, 대신 '죽창'을 찬양했다. 그들이 늘 외치는 구호는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었으며 이는 "노력하면 된다"는 신과 그 추종자들도 '죽창 앞에서는 공평'하다며, 신정국가의 교리를 통째로 무시하는 아주 지독한 행위였다. 게다가 그들은 신과 그 추종자들을 '노력충'이나 '꼰대'라고 부르며 신성모독을 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그들은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완전한 신성국가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망한민국'이나 '지옥불반도'라는 불경스러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일컬어 '흙수저'라고 지칭했다.

본 기자는 신성한 존재에 '죽창'을 들고 봉기한 이들과 어렵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는 태초에 금수저가 아니었으므로 우리의 이름은 없다. 때때로 상황에 변할 뿐이다. 이를테면 '알바생', '비정규직', '노예'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그들과의 일문일답.

1. 당신들은 '일베' 출신인가?

우리는 하나의 커뮤니티로 규정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국가의 교리와 따르는 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일베'에 있을 수도 있지만, '일베'가 아닌 커뮤니티에서 왔을 수도 있다. 어디 한 곳의 출신으로 국한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흙수저'임을 인지하고 있다면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2. 당신들이 세력을 넓힐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들은 '꼰대'처럼 '진지충'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슨 말만 하면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해"라거나 "우리 때는..."라면서 훈계하기 바쁜 사람들이고.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공감 가도록, 유머 있게 그 현실을 표현할 뿐이다. 우리가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많은 청년들이 헬조선 드립이 웃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될 일이 아니다. '노오오오오력'하기 바쁜 청년들에게는 유머, 드립이 있어야 한다. 꼰대들의 '유모우우우우우' 말고.
이런 유우머 말고.
 이런 유우머 말고.
ⓒ 인터넷 커뮤니티 T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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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들은 국가가 무너지길 바라는 것인가?

차라리 '탈조선'을 바라지, 무너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무너지길 바란다면 '연대'라고 흔히 이야기하는(꼰대들이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여어어어언대라고 부르고 싶다) 것을 하려 했거나 실제로 무엇을 바꾸려 했을 거다. 하지만 '헬조선'은 노력한다고 바뀔만한 곳이 아니다. 헬조선이라라고 떠드는 우리 역시 그간 수많은 노력을 했다. 긴 시간 수능 공부부터 시작해서 대학 들어가서 토익, 봉사활동, 대외활동, 공모전... 모든 노력을 다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해서 알바를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알바를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 나아질 거란 희망이 없다.

또한 헬조선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부정부패, 정경유착 등이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헬조선의 변화를 위해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탈조선'을 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탈조선을 하려면 금수저여야 하거나 돈이 있어야 하는데, '헬조선'은 금수저나 돈 있는 이들에겐 '헬조선'이 아니다. 탈출할 수 없는 지옥의 굴레인 셈이다.

4. 당신들은 최근에야 모인 것인가?

OECD통계로 본 한국. 헬조선의 상황을 요약한다.
 OECD통계로 본 한국. 헬조선의 상황을 요약한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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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전부터 '헬조선'과 비슷한 말들은 있었다. 이를테면 '개한민국'이라든지...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은 갈수록 더 지옥 같은 나라가 되어 가고 있고, 예전보다 많은 이들이 한국이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세월호, 메르스, 그리고 재벌들의 모습 등에서 사람들은 '헬조선'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수능 공부 열심히 하고 학점 열심히 따고 직장 생활 열심히 하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힘들 때마다 '원래 아픈 거니까'라고 힐링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EBS 붙잡고 파봤자 유학 보내주고 어릴 때부터 강남 학원가 돌린 애들은 못 이기더라. 알바하고 있는 시간에 스펙 쌓고 어학연수 다녀온 애들 못 이기더라. 못 이기는 것까진 그렇다 치는데 우리보고 "노력이 부족하느니라" 탓하더라. 그래서 깨달았다. 아, 여기가 지옥이구나.

5. 당신들은 교리인 '노력'을 따라본 적은 있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게임맵을 패러디해, 헬조선의 현실을 빗대고 있다.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게임맵을 패러디해, 헬조선의 현실을 빗대고 있다.
ⓒ 트위터 이카무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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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말하지 않았나? 노력했는데 안 됐기 때문에 헬조선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죽어라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고, 금수저는 훨씬 노력하기 좋은 환경이고 심지어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노력해야 얻는 것을 얻을 수 있다니까!

요새 청년들 대학 가서도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 따위 1학년부터 접고 스펙 따고 영어 공부하고 학점 관리한다. 게다가 그 정도면 양반이다. 최저 시급으로 월~금 풀타임 알바를 3달 뛰어나온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그대로 모아야 한 학기 등록금이 나오는 마당이다.

5학년 다니고, 취준 1년 해서 운 좋게 취직이라도 되면 온종일 야근에 시달리면서 집 살 돈 꼬박 모아야 한다. 이래도 노력이 부족한가? 아니면 금수저로 태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가? 결국 필요한 건 노오오오오력이 아니라 죽창이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6. 하지만 한국은 좋은 나라 아닌가? 눈부신 성장을 이루기도 했고.

노력이 부족해서 이런 진로가 나오나 보다.
 노력이 부족해서 이런 진로가 나오나 보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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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나라들 중에서 잘 사는 편이고 특히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한 건 잘 안다. 그런 사실이나 그간의 노력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금수저들을 없애자고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점들이나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적들을 하면
"네가 노오오오오력하면 되지 않느냐~~~~" "나 때는 더 안 좋았다. 하여간 배가 불러 가지고"라고 하거나 "꼬우면 북한 가시던지(참고 페이지: '꼬북이')" "빨갱이"라고 하는 꼰대들 덕분에 헬조선인 거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노력을 무진장 해도 흙수저를 벗어나기가 어렵지 않나. 어려운 걸 어렵다고 얘기하는 데, 그렇게 말하니 말 그대로 지옥이 따로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7. 당신들을 보고 여러 언론이나 기성세대들이 "불평만 해서는 안된 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혹시 봤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흙수저 빙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흙수저 빙고
ⓒ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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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함부로 욕할 만큼 나쁜 나라가 아니다, 우리보다 능력도 뒤떨어지고 노력도 안 하는 주제에 자꾸 자기를 건들면 화산처럼 폭발한다"고 하시더라. 뭐 그 외에도 다 비슷한 이야기들. 빌딩 갖고 있으면서 욕심 덜 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글도 있었다.

노오오오오력 많이 하시고 수저를 잘 골라 쥔 높으신 분들이 쓰신 글들이 넘친다. 그만큼 똑똑하니까 우리가 왜 헬조선이라고 부르는지 직접 글로 보여주지 않았나. 자신들의 글과 이야기 자체, 그러니까 그 꼰대질이 우리가 헬조선이라고 하는 이유이지 않나. 결국 '요새 청년들은 바로 이런 글 때문에 헬조선이라고 부른다더라!'라고 보여주신 셈이다.

8.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헬조선이 있으니 다른 곳은 엄살부리지 않아도 된다
 헬조선이 있으니 다른 곳은 엄살부리지 않아도 된다
ⓒ 이말년 서유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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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게임 해본 적 있나? 거기엔 직접 싸우는 전사도 있고 힐링 해주는 힐러도 있다. 우리도 몇 년 전에는 '힐링' 좀 받으면 다시 일어나서 맞서 싸울 수 있고,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힐링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현질'해서 캐시 아이템을 끼지 않으면 안 되는 거더라. 캐시 아이템 끼면 힐링 따위 없어도 깨는 '노말' 모드지만 캐시템이 없으면 자동 '불지옥' 모드였다는 얘기다. 나는 한 번 깨보겠다고 별 시도 다 하고 밤새 해도 안 되는데 누가 와서 캐시템으로 그냥 깨고 가면 빡치지 않겠나? 그래서 "아 불지옥 모드 어렵네"라고 떠들고 노는데 '깰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지"라고 하고 있으니 참말로 불지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고함20(http://goham20.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헬조선, #노오오오력, #죽창, #금수저, #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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