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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계 미국인 웨인 왕은 거대한 스케일과 영웅주의 블록버스터가 지배하는 할리우드 영화시장에서 잔잔한 드라마로 신선한 충격을 준 영화감독이다. 1995년 연출한 <스모크>는 브루클린의 한 담배가게 주인인 오기와 동네에 사는 소설가 폴의 개인과 소소한 주변이야기를 서정적인 영상으로 담아내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기도 했다.

오기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프레임으로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어느 날 그 사진이 궁금했던 폴은 오기가 10여 년 동안 만들었던 앨범을 펼쳐보다가 몇 장을 넘기고 "다 똑같은 사진인데……"라며 앨범을 덮는다.

"똑같은 사진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지. 날씨가 맑은 날, 흐린 날, 여름햇빛, 가을햇빛, 코트를 입은 사람, 반바지를 입은 사람... 천천히 다시 보게."

그렇게 천천히 앨범을 넘기던 폴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죽은 아내가 오기의 사진 속에 스쳐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나 다시 오지 않을 단 하나의 순간' 그 영화를 보면서 사진이 인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적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울룰루에 비치는 아침여명에 죽은 나무도 부활하는 듯 하다.
▲ 울룰루의 여명 오스트레일리아 울룰루에 비치는 아침여명에 죽은 나무도 부활하는 듯 하다.
ⓒ 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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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늦여름 대학교 연구실에서 서상호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서 '사진은 인생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영화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계공학과 교수님과 사진이라, 좀 어울리지 않는 교집합이다.

"은퇴 후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고민을 좀 했어요. 기계공학과 교수를 하면서 수치적인 것, 공학적인 것을 가르치면서 '이성'적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감성'적인 것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지요."
사진과의 만남은 등산을 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힘들게 오른 산에서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은 백두대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는 서 교수는 그때부터 학자의 학구열을 발휘해 사진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화가인 아내덕분에 색과 구도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고, 당시 같은 대학의 교수에게서 산악회 사진 동호회에 가입을 권유받아 본격적인 사진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랜드 캐년의 새벽 빛과 사람들
▲ 새벽 안개 속의 대협곡 그랜드 캐년의 새벽 빛과 사람들
ⓒ 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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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력과 학구열로 3년 과정의 중앙대학교 사진아카데미 1, 2년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포토마이스터 과정으로 들어가서 수료를 했다. 어떤 일이든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도 10년이 되어 간다. 

창의적 질문

어쩌면 그는 편한 길을 갈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굴지의 기업 연구원으로 취직해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독일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약간의 적금과 퇴직금으로 유학 생활을 하기에는 녹록치 않았다.

벤츠자동차에서 아르바이트, 대학에서는 연구조교를 거쳐 정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학업을 마쳤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이미 탄탄한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그는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것, 편한 것을 찾지요. 변화를 두려워해요. 하지만 이런 변화가 없으면 발전이 없잖아요. 인생도 큰 재미가 없지요. 변화는 창의적인 변화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질문하는 데서 나온다고 봅니다. 스스로에 대한, 삶에 대한, 진리에 대한 질문... 저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창의적 질문의 필요성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 줍니다."  
고성으로 지나가는 연인들이 정겹다
▲ 잘즈부르크의 연인들 고성으로 지나가는 연인들이 정겹다
ⓒ 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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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도 대학교 수업 두 과목, 대학원 수업 한 과목, 그리고 실험 한 과목 등 일주일에 11시간 강의를 맡고 있다. 그의 열정으로 미루어 볼 때 5년, 10년, 심지어 20년도 훨씬 지난 강의노트로 수업을 하는 '철밥통 교수'와는 다를 것이라는 짐작이다.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해변 두르로브니크에서 순간을 담았다.
▲ 두브로브니크의 기억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해변 두르로브니크에서 순간을 담았다.
ⓒ 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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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의 학생들과 매년 의식처럼 치르는 것이 '지리산 종주'다. 학자가 될 제자들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육체의 한계에 도달하면서 얻는 성취감, 곧 등산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제자와의 산행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학생들 강의, 학회, 세미나, 논문발표, 또 사진.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만들어가는 그의 삶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잠을 줄이고 좀 바쁘게 살면 됩니다."

그의 제자들이 갑자기 부러워지면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과 학생들이 책상에 올라서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찰나의 영감

사진은 미와 추, 선과 악, 자연과 사람, 진실과 거짓, 실용성과 창의성,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 등의 대비적인 오브제들에 대해 작가만의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차별화하여 이미지로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독자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작품들을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고민하고 회의하며, 의심과 질문을 통해 사진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신선하고 창의적인 모색을 시도 중이다. 하지만 나는 미술과 사진 예술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진예술의 방향을 리드하기에는 박학다재하지 못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저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세상과 사람 속으로 빠져 들어가 세상사를 조금이라도 더 보듬고 싶은 것이 나의 지향점이다 - 작가노트 중에서.


"감성과 이미지가 일치할 때 셔터를 누릅니다. 영혼이 있는 사진, 보는 사람이 감동할 수 있고 감성이 이끌어 나와 힐링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영겁의 시간을 쌓아 온 미국 서부와 호주의 광활한 대자연, 중국과 유럽의 고성, 동유럽의 어느 골목, 서울에 한 귀퉁이에서 서상호 사진가는 자연과 사람을 조화롭게 배치도 하고 어떤 경우는 익살스럽게 포함시키기도 한다.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의 인물이 되어보는 상상을 하면 즐거워진다. 

세계 여러 곳에서 감성의 눈으로 다가가 찰나의 영감으로 포착한 그의 작품을 영종도 을왕리 언덕에 있는 갤러리카페 그리다썸에서 10월 16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기계공항과 교수이자 사진가인 서상호 개인전이 갤러리카페 그리다썸에서 열린다.
▲ 찰나의 영감. 서상호 展 기계공항과 교수이자 사진가인 서상호 개인전이 갤러리카페 그리다썸에서 열린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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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과 교수에서 사진가로. 이성적인 삶에서 감성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그는 사진가의 길을 택했다.
▲ 작가 프로필 기계공학과 교수에서 사진가로. 이성적인 삶에서 감성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그는 사진가의 길을 택했다.
ⓒ 김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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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상호사진가, #서상호교수, #그리다썸, #을왕리카페, #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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