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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습기차고 자갈돌 많은 다람살라로의 여행. 그 여정은 가장 긴 여운으로 남은 영적 여행이 되었습니다. 맥그로드 간즈의 길가에서 산 헐한 쿤둔의 사진액자.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습기차고 자갈돌 많은 다람살라로의 여행. 그 여정은 가장 긴 여운으로 남은 영적 여행이 되었습니다. 맥그로드 간즈의 길가에서 산 헐한 쿤둔의 사진액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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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모 톤둡, 그는 1935년 티베트 동북부의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33년 12월 6일, 13대 달라이 라마, 톱텐 갸초가 열반했습니다.

몽골어로 큰 바다를 의미하는 '달라이'와 티베트어로 영적인 스승을 의미하는 '라마'가 합쳐진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정치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로 티베트불교의 수장인 법황의 호칭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세습되거나 투표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전임 달라이 라마가 열반하면 환생자를 찾아 옹립하게 됩니다.

티베트 정부는 전임 13대 달라이 라마를 이어 그 자리를 계승할 환생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환생자 사절단은 톱텐 갸초가 열반전에 남긴 단서와 행한 기적으로 라모 톤둡이 그 환생자임을 확신했습니다.

1939년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불려간 그는 '자비의 화신, 지혜의 바다'라는 뜻의 '잠펠 나왕 롭상 예쉬 톈진 갸초'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다음 해 2월 그는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쿤둔으로 불렀습니다.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입니다.

1950년 10월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습니다. 15세의 쿤둔은 실질적인 국가수반이 되어 바람 앞 촛불을 지켜내야 하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1951년 10월 중국정부가 내민 조약을 승인하는 것으로 티베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갖은 박해에 대항에 1959년 정부수립식을 열고 인도로 옮겨 망명정부를 이끌며 비폭력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쿤둔은 뛰어난 지도력으로 티베트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가 됩니다.

쿤둔은 정치와 종교, 환경과 빈부 등 개인과 인류가 직면한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성찰로 혜안을 제시합니다. 모든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개구쟁이 웃음을 잃지 않는 분이기도 합니다.  

#2

제 지인이 인도로 언어연수를 떠났습니다. 뉴델리의 어학원에서 공부 중일 때 달라이 라마 생일 기념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달라이 라마를 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아 즉시 배낭을 꾸렸습니다. 13시간의 덜컹거리는 버스가 그녀를 어퍼 다람살라(Upper Dharamsala)에 내려놓았습니다. 인도인들이 살고 있는 로우어 다람살라((Lower Dharamsala)와 달리 어퍼 다람살라는 6천 명이 넘는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는 티베트인 집단 거주촌(Tibetan Refugees Colony)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망명정부가 그곳에 있습니다.

"티베트 망명자들은 오직 쿤둔만 믿고 에베레스트를 넘어온 자들이에요. 동상에 걸려 팔다리를 절단한 거지들도 거의 도인들입니다. 축축한 산기슭의 게스트하우스라고 하는 곳은 판자집들이에요. 침낭을 준비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음식들도 소박하고 무지 값이 싸요. 국수는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딱 우리 맛이었어요. 집값과 음식값도 바가지를 쒸우거나 높이 못 받게 되어있어요. 값을 높게 받으면 처벌받는대요, 국수가 10원이었어요."

해발고도 1700m의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를 걸어 남걀 곰파로 갔습니다.

"궁은 소박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했습니다. 궁에 들어가려면 먼저 신청서를 작성해내야 하고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추첨에 뽑혀야 해요. 제게도 그런 행운이 오기를 빌었지요."

2010년 7월 6일, 세수 75세의 생신날,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신 달라이 라마는 남걀 곰파 쫄라캉에서 5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생일 축하행사와 법회를 진행했습니다.

"각 나라별로 멍석이 깔리면 그곳에 앉아서 법문을 듣는데 어느 영국 여인은 3번째 친견이라고 하더군요. 법문은 쉽지 않았습니다. 성하께서 불법을 설하면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으로 통역하고 특별히 한국인들이 어디에 앉았는지 애정을 보여주셔서 저는 무지 기뻤지요. 성하는 유머가 많고 긍정적인 분이에요. 자학이란 말이 티베트어에는 없대요. 그 말이 한국어에 있다는 게 놀랐대요. 종종 강론 중에 사람들을 우습게 했는데 뭔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마를 마이크에 부딪힌 것 같은... 한마디하고 길게들 각 나라말로 통역하니 지루하셨겠죠. 연세도 많으시고... 잠시 조신 것 같아요. 성하가 이어서 말씀하셨어요. 마이크에 부딪혔지 결코 졸았던 게 아니라는 것을 부디 알아달라고... 하하하... 성하의 귀여운 거짓말. 그렇게 순진하세요."

4시간이 넘게 진행된 행사의 말미에 특별한 행운이 그녀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녀의 소원대로 질문이 뽑힌 것입니다.

"'성하!, 마음의 평화는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어요. 왜 제가 그런 거창한 걸 물었을까요? 지금 같으면 '성하! 여인이 그리울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라든지 실질적인 걸 물었을 텐데 말이지요."

쿤둔은 3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 일어나서 30~60분 명상하고 기도하기, 둘째 남을 돕되 화나지 않을 만큼만 돕기. 셋째 오늘 생존할 만큼만 일하기, 두 번째와 세 번째를 하지 못해도 첫 번째는 매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생일 축제는 일주일간 계속되었어요.

"쿤둔은 385명의 개인 스승들이 가르치고 훈련한 성인이지요. 성인도 훈련하면 될 수 있어요. 스승들이 겸손을 가르쳐 그는 곧게 허리가 펴지지 않아요. 구부정해져버렸어요. 늘 경청하는 자세, 인사하는 습관 때문에..."

그녀는 맥그로드 간즈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티베트박물관에도 가고...

"그 거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박물관이었어요. 아주 허름한 건물에 입장료가 3루피 정돈가? 값나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전시품이라고는 티베트인들의 옷가지 정도... 아무것도 없는 게 놀라웠어요. 전부 약탈당하고 전쟁 중에 파괴되어 내놓을게 없었나 보죠. 헐한 TV가 한 대 있어요. 버튼을 누르면 그간 투쟁의 역사가 나와요. 처음에는 이 박물관에 실망했지만 기왕 왔으니 보자 하고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요소요소에서 발길이 머물게 돼요. 마지막엔 털썩 주저앉아 울고 말았어요. 아무것도 없는 박물관이 펑펑 울게 하더라고요."

그곳은 모순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다 있었습니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저는 길가 가게에서 성하의 작은 사진 액자를 샀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쿤둔의 사진을 품고 있어요. 수호자로 여기거든요."

그녀도 그 작은 액자를 품고 귀국했습니다.

"저는 이 액자를 제 책상 앞에 두고 7년간을 동행했습니다. 제 마음의 평화를 지켜준 액자이지요. 제게 가벼움 속의 실천을 격려해주셨어요. 액자가 낡아서 테이프를 붙였습니다. 오래된 사진이지만 쿤둔은 변함없이 정겹고 사랑스러워요. 장난기가 흐르는 미소와 표정. 누구에게나 허리를 굽히고, 호기심으로 귀를 쫑긋 세우시는 성하의 액자를 제 마음이 가있는 모티프원으로 보냅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전해주세요.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남에게 선을 베풀되 화나지 않을 만큼만, 그리고 너무 많이 일을 하느라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지는 말라고 해주세요."

택배로 보내온 한 지인의 영적 선물
 택배로 보내온 한 지인의 영적 선물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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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3월 10일은 중국군 사령부에서 쿤둔을 베이징으로 납치하려는 시도로 의심되는 초청에 반발해 민중봉기가 일어난 날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항거였습니다. 중국은 군중을 무차별 공격하고 저우언라이(周恩來)는 티베트 정부가 해체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이 봉기의 실패로 달라이 라마는 다람살라로 망명해 민주 망명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중국은 5년 후 티베트를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했습니다.

오늘(3월 10일)은 8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만장일치로 박근혜에 대한 탄핵 인용이 결정된 날이며 '티베트 민족 봉기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중국정부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위험한 분리주의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달라이라마, #티베트 민족 봉기 기념일, #쿤둔,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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